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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MB 서울시장 시절 처음 수면 위로
국가기관 개입에 매크로 프로그램 이용까지
"민주주의 위협" 비판... '표현 자유' 신중론도
보수 성향 단체 '리박스쿨'의 인터넷 댓글 여론 조작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 빌딩에 리박스쿨 사무실 간판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극우 성향 역사교육단체 리박스쿨의 댓글 조작 논란이 일파만파 확산하고 있다. 리박스쿨은 이승만 전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성을 각각 따 이름 붙인 단체로, 3년 전부터 인터넷 댓글 활동을 통해 보수 진영에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고 각종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 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경찰은 사건 배당 사흘 만인 지난 4일, 손효숙 리박스쿨 대표의 주거지와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등 본격 수사에 나섰다.

리박스쿨 사태와 같은 온라인 여론 조작 사건은 컴퓨터 보급이 대중화된 200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끊이지 않고 있다. 온라인 공간은 각종 이슈에 대한 여론을 특정한 방향으로 몰아가기에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곳이다. 일단 인터넷 포털 사이트나 커뮤니티는 수십만, 수백만 명이 이용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잠재적인 파급력이 어마어마하다. 더구나 온라인의 특징인 익명성은 여론 조작의 실체를 파악하는 것도 어렵게 만든다. 일부 세력이 조직적으로 게시글 또는 댓글 달기 활동을 전개하면, 마치 실제 여론의 기류도 그런 것처럼 착시 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얘기다.

피해는 실로 막대하다. 유권자들의 자유로운 의사 형성을 방해하고, 결국에는 왜곡된 선거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하고 훼손하는 게 여론 조작이다. 사전에 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과연 없을까. 그동안 정치권에서 일어났던 온라인 여론 조작 사건의 양상과 형사 처벌 사례를 짚어 보면서 적절한 대응 수단을 모색해 봤다.

보수·진보 가리지 않고 '여론 조작'

2002년 7월 서울시청 홈페이지 시민자유토론방에서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 인터넷 여론을 조작하고 있다는 누리꾼들의 항의를 보도한 KBS뉴스의 한 화면. KBS 캡처


온라인 여론 조작이 처음 수면 위로 올라온 시점은 2002년이다. 그해 7월 1일 취임한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은 얼마 되지 않아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 '친(親)이명박' 여론을 조성하려 했다는 의심을 받았다. 잇단 구설에 휩싸이던 상황에서 때마침 서울시청 홈페이지 시민자유토론방에 '이 시장 옹호글'이 며칠간 수백 건이나 게시된 탓이다. 2004년 총선을 앞두고 열린우리당 당내 경선에 나선 한 예비후보가 대학생들에게 돈을 주고 인터넷에 자신을 지지하는 글을 올리도록 한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2012년 말 불거진 국가정보원의 댓글 공작 사건은 온라인 여론 조작의 심각성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 줬다. 이명박(MB) 정부 시절 국정원이 '민간인 댓글 부대'를 직접 운영하며 여론 조작에 나선 사건이었다. 2009년 5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로 MB정부 지지율이 바닥을 치자 취임 넉 달째였던 원세훈 당시 국정원장은 국정원 대북심리전단 산하에 '사이버 외곽팀'을 설치, 정부와 보수 진영을 옹호하고 야당 및 진보 계열 시민단체 등을 비방하는 인터넷 게시글·댓글을 달도록 했다. 초창기 9개 팀으로 시작된 사이버 외곽팀의 규모는 총선과 대선이 있던 2012년에는 30개 팀(총 3,500명)까지 늘어났다. 이 사건으로 원 전 원장은 공직선거법·국가정보원법 위반 혐의로 징역 4년에 자격정지 4년의 확정 판결을 받았다.

여론 조작의 '유혹'은 좌우를 가리지 않았다. 2018년 진보 진영에 큰 상처를 준 이른바 '드루킹 사건'이 대표적이다. '드루킹'이라는 필명으로 온라인에서 활동한 남성의 일당이 2014~2018년 매크로 프로그램을 사용, 더불어민주당에 유리하도록 포털 사이트 뉴스 기사에 달린 댓글의 '공감' 또는 '비공감' 수를 조작한 사건이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 측근이었던 김경수 당시 경남지사가 이를 공모한 것으로 드러났고, 결국 그는 징역 2년형 확정과 함께 도지사직을 잃었다.

①매크로 ②조직적 ③대가성 입증해야 처벌

게티이미지뱅크


앞선 사례들처럼 여론 조작에 대한 형사처벌 자체는 가능하다. 매크로 조작 프로그램을 이용하거나(컴퓨터 등 업무방해 혐의), 공식 선거사무소가 아닌데도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 유사기관을 설치하는 등 조직적으로 활동했다면(공직선거법상 부정선거운동죄) 불법성이 인정된다. 또 대가를 약속하고 여론 조작을 지시한 경우에도 공직선거법 제230조(매수 및 이해유도죄)에 해당한다.

다만 여론 조작과 관련한 모든 행위가 사법처리되는 건 아니다. 예컨대 특정 댓글이나 커뮤니티 게시글을 공유하며 추천 클릭 또는 댓글을 달아 달라고 단순히 독려하는 행위(이른바 '좌표 찍기')는 넓은 의미에서의 '표현의 자유'를 인정받는다. 리박스쿨 측도 "댓글을 쓰고, '좋아요' 또는 '싫어요'를 누르는 것은 명백히 합법적이고 헌법에 보장된 시민의 정치 참여 행위"라고 주장한다. 안성훈 법무법인 법승 변호사는 "소수의 사람이 소규모로 댓글 관련 활동을 하는 경우엔 업무방해 혐의가 인정되지 않을 수 있다"며 "그러나 그 규모가 상당한 수준에 이르러 목표한 댓글의 순위를 상당한 시간 동안 상위권에 노출시키는 데 이르렀다면 죄가 성립할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포털 사이트도 이용자들의 '단순 좌표 찍기'식 참여는 제한하지 않는다. 자유로운 집단 의사 표현으로 보는 것이다. 네이버 관계자는 "수사 결과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 여럿이 각각 자신의 계정으로 댓글에 추천을 누르는 행위 자체를 업무방해로 보기는 쉽지 않다"고 밝혔다. 포털 다음을 운영하는 카카오의 관계자 역시 "온라인에 집단적 의견을 개진한 것만으로는 사업자 입장에서 여론 조작 여부를 판단해 선제적인 법적 대응을 하기에 힘든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이번 리박스쿨 사태에 있어 불법성 판단의 관건은 '대가성'과 '조직성'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5일 최민희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이 네이버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네이버는 "리박스쿨 회원 계정 9개의 로그인 기록을 분석했더니, 동일한 IP에서 명의가 다른 계정이 접속한 사례를 일부 확인했다"고 밝혔다. 한 대의 컴퓨터에서 여러 계정에 접속했다는 의미다.

네이버 측은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타인 명의의 계정 양도 및 대여가 이뤄졌는지에 대해선 자체적으로 확인하고 있고, 수사 기관을 통해 추가로 밝혀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동일 IP에서 여러 계정이 접속한 사실만으로는 여론 조작 여부를 특정할 수 없다"며 "다만 한 사람이 타인의 계정을 이용해 (여러) 댓글을 작성했을 경우 문제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네이버 이용약관은 "계정을 다른 사람에게 판매·양도·대여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부가 나서서 여론 조작 규제 강화를"

2월 20일 서울 중구 서울중앙우체국 앞에서 윤석열 당시 대통령 지지자들이 탄핵 반대 집회를 하고 있다. 류기찬 인턴기자


전문가들은 정부가 나서서 여론 조작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현재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을 고려하면, 이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법적 체계가 없는 상황"이라며 "여론 조작의 양태를 면밀히 검토해 국가가 선제적으로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포털 입장에서 보면 오히려 트래픽(방문자 수) 관점에선 이득이라 여론 조작 행위를 (적극적으로) 막을 유인이 크게 없다"며 "정부가 먼저 '여론 조작 시 불이익' 등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이를 포털에 요구하는 방식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신중론도 있다. 여론 조작의 의미를 폭넓게 규정하는 건 표현의 자유를 해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유재영 법무법인 대륜 변호사는 "여론 조작과 관련해 구체적인 처벌 조항을 마련한다고 하더라도, 그 구성요건을 명확히 하기에는 곤란한 측면이 있고 추후 죄형법정주의 이슈도 발생할 것"이라며 "어느 정도의 인터넷 여론 형성, 여론 주도 행위를 처벌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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