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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해 | 글 채지형 여행작가·사진 조성중

여행자들이 두꺼비처럼 웅크린 형상의 두꺼비바위를 지나고 있다. 자연이 만든 조형미는 트레킹의 큰 즐거움이다.


초록이 짙어지는 유월, 숲의 품이 그립다면 강원도 동해로 떠나보자. 곶자왈을 연상케 하는 원시림과 맑은 계곡, 바위와 징검다리, 그리고 야생 들꽃이 수놓은 길이 우리를 기다린다. 백두대간을 넘나들던 옛길이자, 한때는 생계를 위해 땀 흘리며 소금을 운반하던 고갯길이 오늘날 생태와 치유의 숲길로 다시 태어났다. 선조들의 발자취를 따라 걸으며 숲과 역사를 느끼고, 삶의 흔적을 새기며 걷는다.

백두대간 동해소금길은 바닷가에서 생산된 소금을 내륙 산골로 운반하던 옛길로, 동해 북평시장에서 정선 임계시장으로 이어진다. 정선은 바다가 없는 고장이기에 소금은 귀중한 생필품이었다. 반대로 바닷가 사람들은 정선의 삼베와 곡식을 얻기 위해 이 길을 오갔다. 소금과 삼베, 해산물과 산나물, 나귀와 지게꾼, 그리고 장돌뱅이가 교차하던 동해소금길은 물건뿐만이 아닌 삶의 애환과 숨결을 실어 나르던 길이었다. 도로가 뚫리고 현대화되면서 옛이야기를 품은 길은 한동안 잊혔다. 역사와 문화의 흔적을 되살리기 위해 길을 복원하고 다시 알리면서, 찾는 이들도 조금씩 늘고 있다.

감자밭, 옥수수밭 지나며 산골 마을 정취 만끽

동해소금길은 크게 세 구간으로 나뉜다. 제1코스 ‘소금 땀에 젖은 명주목이길’이라는 부제가 붙은 백두대간 생태탐방로, 제2코스 ‘바람 안고 걷는 더바지길’ 이기령 더바지길, 그리고 제3코스 ‘호수 품은 치유의 길’ 금곡동 옛길이다. 세 코스 중 과거를 상상하며 걷기 좋은 숲길은 1코스다. 푸른 잎이 샤워처럼 쏟아지는 울창한 숲에서 트레킹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이 코스는 신흥마을에서 원방재에 이르는 7.1㎞로, 왕복 약 5시간 걸린다. 여행의 시작은 42번 국도에 있는 신흥마을이다. 이곳에서 서학골 안길을 따라 2㎞ 정도 걷는다. ‘학이 살았던 마을’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고즈넉한 시골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길이다. 꽃이 흐드러지게 핀 감자밭과 키 큰 옥수수밭은 이곳이 강원도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바닷가 소금을 내륙 산골로 운반하던 옛길, 한동안 잊혔지만 역사와 문화 흔적 되살리려 복원

기우제 지내던 용소폭포 지나면 두꺼비바위가 눈길 사로잡아…선녀소 이르면 초록 뒤덮인 ‘비밀의 숲’

누군가의 삶의 흔적 따라 걷는 여정이자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짧은 거리에도 깊은 여운


서학골 감자밭과 계곡(아래).




숲이 어우러진 동해소금길은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좋다. 시장을 오가던 장돌뱅이의 든든한 쉼터가 됐을 터다.


소금 나르던 보부상들의 휴식처, 주막터

완만하게 펼쳐진 마을 길이 끝나면, 본격적인 트레킹 출발이다. 포슬포슬 흙을 밟는 기분이 포근하다. 산 아래를 졸졸 소리 내며 흐르는 계곡물도 반갑다. 길은 선조들이 기우제를 지내던 신성한 장소인 용소폭포로 이어진다. 이곳에서 용이 물속에서 승천했다는 전설도 내려온다. 맑고 시원한 물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면, 각도에 따라 무지개가 피어오르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용소폭포를 지나 왼쪽으로 접어들면 설화의 길이 펼쳐진다. 길목에는 장수공깃돌바위가 자리한다. 이 바위는 다섯 개의 공깃돌 모양을 하고 있는데, 전설에 의하면, 마을을 떠난 장수가 공깃돌을 던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 너머에는 두꺼비바위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름 그대로 두꺼비처럼 웅크린 형상으로, 자연이 만든 조형미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안으로 더 들어가면 주막터가 나타난다. 이곳은 동해와 정선을 오가던 보부상과 지게꾼이 짐을 내려놓고 막걸리 한잔 기울이던 공간으로, 단순한 휴식처를 넘어 ‘정’이 배어 있던 장소였다. 과거 주막은 사라졌지만, 동상과 조형물이 옛 분위기를 상상하게 한다. 막걸리를 마시며 웃고 있는 선비, 짐을 진 나귀를 이끄는 상인, 푸근한 표정의 주모까지, 바람결에 그들의 웃음소리가 되살아나는 듯하다.

이끼와 고사리의 향연이 펼쳐진 ‘비밀의 숲’

주막터에서 선녀소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면, 숲은 더욱더 짙어지고 초록빛은 주변을 뒤덮는다. 발밑에는 이끼가 촘촘히 깔리고, 마치 영화 <아바타>의 한 장면처럼 이질적이면서도 경이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선녀소에는 밤마다 신선들이 모여 도를 닦았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물속을 들여다보면 신비로운 연둣빛도 감돈다. 연초록 이끼로 뒤덮인 바위, 들풀 사이로 노란 꽃이 피어 있고, 고사릿과 식물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며 신비로움을 더한다. ‘비밀의 숲’에 들어온 기분이랄까. 깊은숨을 들이켜고 바닥에 앉아 가부좌를 튼다. 숲은 아무 말이 없지만 위로받고 있는 느낌이 든다.

걷다 보면 보부상들이 산신령에게 제를 지내던 산제당이 나타난다. 앞이 보이지 않는 험난한 산굽이를 돌고 돌아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 탈 없기를 이곳에서 기원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경사도 급해진다. 숨이 차올라 종종 발걸음을 멈춘다. 한 걸음 한 걸음 디딜수록, 선조들이 이 길을 넘으며 흘렸을 땀이 떠오른다. 돌길을 오르다 보면, 이끼로 덮인 쉼터가 등장한다. 풍화된 암석 위에 아름답게 깔린 이끼, 그 위에 돌탑을 쌓으며 무사함을 기원하던 옛사람들의 발자취가 남아 있다.

삶의 흔적을 따라 걷는 동해소금길

발이 푹푹 빠지는 낙엽송 숲길을 지나,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1코스의 끝 원방재에 도달한다. 해발 720m의 원방재는 ‘먼 곳’이라는 뜻의 이름처럼 옛사람들이 힘겹게 넘었던 고개다. 여기서 다시 출발지인 신흥마을로 돌아가지만, 마음속은 그 너머 정선까지 이어지는 소금길을 따라 걷고 있다.

동해소금길을 걷는 일은 단순한 트레킹이 아니다. 누구의 삶의 흔적을 따라 걷는 여정이자,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다. 짧은 거리임에도, 깊은 여운이 오래 남는다.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이끼 낀 바위를 만지며, 바람에 실린 나무들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며 우리는 시간의 층을 걷는다. 다음에도 이 숲을 다시 찾을 것이다. 초록이 보고 싶어질 때, 잊고 싶지 않은 무언가가 있을 때 다시 돌아올 것이다. 백두대간 동해소금길로.

#여행가의 Tip

동해소금길(동해소금길.kr)은 물과 간식, 등산화가 필수다. 상점이 없어 준비 없이 오르기엔 어렵다. 풀이 무성한 구간이 많아 긴바지를 추천하며, 탁족할 만한 계곡이 여럿이라 수건도 챙기면 좋다. 참고로 2코스인 이기령 더바지길은 현재 정비 중이다.동해소금길 3코스인 ‘금곡동 옛길’의 상당 구간이 무릉별유천지를 통과한다.

3코스 ‘금곡동 옛길’ 보랏빛 축제 즐겨요

동해소금길 3코스인 ‘금곡동 옛길’에는 보랏빛 라벤더 정원이 펼쳐져 또 하나의 볼거리를 전한다.


근대 산업의 흔적과 자연이 공존하는 무릉별유천지는 수명이 다한 채석장을 재생한 복합문화공간으로, 에메랄드빛 호수가 인상적이다. 스카이글라이더, 오프라인 루지 등 독특한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는 것도 장점.

6월14일부터 22일까지는 라벤더 축제가 화려하게 열려, 보랏빛 향기 속에서 힐링 트레킹이 가능하다. 6월에는 ‘도슨트와 함께 걷는 동해소금길’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쇄석장에서 출발해 금곡호와 라벤더정원, 청옥호를 거쳐 거인의 휴식으로 이어지는 구간으로, 2시간 정도 진행된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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