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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요약본]
마라톤 하는 정신과 의사 김세희의 ‘마인드 업’
한 여성 러너가 해지는 도로 위를 달리는 모습. 게티이미지뱅크코리아

승민씨는 입사 3개월 차에 온종일 “내가 이 일을 지속하는 게 맞는 건가?” 싶고 “너무 버겁다.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실을 찾았다. 부서에 배치된 지 한달 만에 선임이 빠지고 혼자서 업무를 진행하게 되었는데, 유관 부서나 거래처와 소통할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머리가 멍하고 퇴근 후에도 업무 생각이 가시지 않았다. 진료를 받고, 선배·동료들에게 조언을 구하며, ‘오늘 하루만 버텨보자.’ ‘한달 만 더 해보고 그래도 안되면 그 때 퇴사해도 늦지 않아.’ 마음을 다잡았다. 하루, 또 하루, 그렇게 한 주, 한 달을 넘겼다. 이제 입사 5개월 차, 승민씨는 여전히 힘들지만 그만두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고 했다. 처음엔 회사의 생리, 회사 구성원과의 관계, 맡은 업무의 성격을 파악하지 못한 채 비중있는 일을 하다 보니 견딜 수 없어 매일 그만두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게 업무에 임해야 할지, 일이 풀리지 않을 땐 어디에 도움을 요청해야 할지 이해가 되어 이전만큼 힘들지 않다고 했다.

훈련된 고통, 예측할 수 있기에 견딜 수 있다

달리기도 비슷하다. 나는 매일 하던 달리기의 연장선에서 특별한 준비 없이 첫 풀코스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다. 10km 대회를 처음 달려보고 이듬해 하프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고, 자연스레 다음 단계로 풀코스 마라톤을 나가게 되었다. ‘10km를 1시간 안에 달리고 하프 마라톤은 2시간대에 달리니까, 풀코스 마라톤도 4시간이면 달릴 수 있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했다. 2012년 경주 국제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 5시간11분54초 만에 완주했는데, 전반 하프 2시간, 후반 하프 3시간 이상이 걸렸다. 전반 하프를 지나고 나서부터는 계속 극심한 고통의 연속이었다. 숨은 가쁘고 다리는 무겁고 피니쉬까지 남은 거리가 아득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첫 마라톤을 겨우 완주하고 나서는 그야말로 녹초가 되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 번이면 족하다. 마라톤은 다시는 하지 말아야지’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마라톤을 멋모르고 얼렁뚱땅 완주한 느낌이 무척 아쉬었다. 한 번쯤은 계획적으로 운영해서 마라톤을 제대로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이듬해 봄 서울 국제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다. 대회 시작 전 광화문 광장에서 스타트 총성 소리가 울릴 때 눈물이 핑 돌았다. 첫 마라톤은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했지만 이젠 그 고통을 알기에 얼마나 힘들지 실감나기 시작하니 덜컥 겁이 났다. 막상 달리다 보니 아무것도 모르고 하프 한 번 뛰어보고 참가한 첫 번째 마라톤보다는 훨씬 나았다. 힘은 들지만, 예측했던 것이었고, 피니시까지 남은 거리를 생각하며 힘을 분배하여 달리기를 운영할 수 있었다. 이후로는 지금까지 매년 봄가을로 마라톤 완주를 반복하고 있다.

마라톤을 준비하는 과정은 단순한 신체 훈련이 아니다. 42.195km 풀코스 마라톤 실전 대회에 참가하기 전 반드시 장거리 연습을 한다. 대회 4~5주 전에는 LSD(Long slow distance)라고 하여, 실전 속도보다는 천천히 40km 정도를 달린다. 이는 신체적 기량을 훈련한다기보다 실전 대회에서 마주할 심리적 고통을 미리 경험해보는 것이다. 심리적으로 어떠한 어려움을 겪게 될지 이해하여 대비하고, 그것을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훈련이다.

일상의 어려움·극복과정, 달리기와 본질은 같다

일상에서 경험하는 심리적 갈등과 어려움, 그리고 극복 과정도 달리기를 하면서 겪는 것과 본질이 같다. 힘든 느낌을 지켜보고 넘기고 이겨내는 경험은 하루의 삶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목표를 향한 꾸준한 공부와 연구, 직장 생활, 아이를 낳고 성인이 되기까지 키우는 과정, 결혼 생활을 유지하며 함께하는 수십 년의 세월, 모두 마라톤이다.

삶에는 늘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 같고 그만두어야 할 것 같다고 마음에 느껴질 때가 있다. 새로운 일에 도전해야 하거나 한계에 부딪혀야 할 때가 있다. ‘과연 내가 해낼 수 있을까? 지속할 수 있을까?’ 내면에 의구심이 올라올 때가 있다. 다 지겹고 어느 것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될 때도 있다. 그럼에도 그만두지 않고 직접 부딪쳐 마음에 느껴지는 어려움을 마주해보면, 힘은 들지만, 힘든 그대로 넘기고 지나가진다. 그리고, 마음에 견디고 이겨내는 과정을 통해 다음에도 마주해볼 수 있겠다는 믿음이 생긴다.

전문은 한겨레 누리집 ‘오늘의 스페셜’(https://www.hani.co.kr/arti/SERIES/3322) 코너에서 이어집니다.

※이 글의 상담 사례로 등장하는 이름은 모두 가명이며, 실제 상담 경험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세계 6대 메이저 베를린·보스턴·도쿄·시카고·런던 마라톤을 포함해 50여 차례 국내외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한 김세희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 임상교수가 연재하는 ‘마라톤 하는 정신과 의사 김세희의 마인드 업’ 전문은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코너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김 교수가 20년간 달리기와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통해 깨달은 마음에 대한 이야기가 ‘마음의 회복’을 원하는 독자분들께 큰 도움이 될 것 입니다.

(※네이버, 다음 등 포털뉴스 페이지에서는 하이퍼링크가 작동하지 않습니다. 주소창에 아래 링크를 복사해 붙여넣어 읽을 수 있습니다.)

번아웃인가요? 정신과 전문의가 달리기를 권하는 이유(‘그만두고 싶은 마음’ 일으켜 세우는, 달리기의 힘) 전문 읽기

김세희 |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 임상교수·‘마음의 힘이 필요할 때 나는 달린다’ 저자


▶https://www.hani.co.kr/arti/society/health/1199311.html?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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