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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가 틱톡에서 울려 퍼지고, 쇼팽이 인스타그램 릴스의 배경음악이 된다면? 고급 예술로 여겨지던 클래식 음악이 Z세대에게 ‘힙’한 콘텐츠로 재해석되고 있다. 고전 음악은 디지털 세대의 감성을 어떻게 사로잡았을까.

중장년층의 고급 취미로 여겨지던 클래식 음악이 요즘 Z세대(1990년대 중반에서 2010년대 초반 출생자)의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아재음악? 이제 Z세대의 ‘힙한 취향’으로

‘텍스트힙’ 다음은 ‘클래식힙’이 될까. 어른들의 고급 취미로 여겨지던 클래식 음악이 요즘 Z세대(1990년대 중반에서 2010년대 초반 출생자)의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유튜브 등 SNS에서 클래식 음악을 재미있게 풀어낸 콘텐츠들이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조성진, 임윤찬 등 젊은 피아니스트들이 아이돌 못지않은 인기를 끌면서 클래식 공연장을 찾는 젊은 관객도 많아졌다. 쉽고 재밌는 해설, SNS로 영상화된 클래식, 공연장 밖의 피크닉 무드까지, 클래식의 형식은 그대로지만 즐기는 방식은 달라졌다.

SNS는 젊은 세대가 클래식 음악을 만나는 통로다. 유튜브에 임윤찬과 조성진의 연주 동영상은 수백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한다. 정지윤 선임기자


“클래식에 관심이 없던 친구들도 플레이리스트에 임윤찬이나 조성진 연주곡 하나쯤은 넣어두고 듣는 분위기예요.” 평소 클래식 공연장을 자주 찾는 직장인 박지윤씨(27·가명)는 클래식 음악에 대한 또래들의 달라진 관심을 체감한다. 젊은 세대 사이에서 ‘클래식 붐’이 시작되는 장면은 곳곳에서 목격된다. 한국관광공사 한국관광데이터랩에 따르면 지난 3월 20대의 ‘세대별 핫플레이스’ 상위 10곳 중 4곳이 미술관과 공연장 등 ‘문화생활시설’이었다. 특히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의 경우 지난해보다 검색 횟수가 161.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SNS와 만난 ‘뉴’ 클래식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과 함께 자란 Z세대가 클래식 음악을 가장 쉽게 만나는 창구는 SNS다. 격식 있는 음악으로 인식되어온 클래식은 유튜브와 틱톡, 인스타그램을 통해 짧고 감각적인 콘텐츠로 변신한다. 클래식 음악이 공연장에 가거나 음반을 구매해 ‘각 잡고’ 즐기는 음악이 아닌,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 소비할 수 있는 콘텐츠가 된 것이다. 새로운 감각의 클래식 유튜브 채널들은 젊은 세대를 클래식으로 안내하는 일등 공신이다. 구독자 27만명을 보유한 ‘클래식타벅스’는 클래식에 관련된 이야기와 궁금증을 재미있게 풀어내며 최근 빠른 속도로 구독자를 늘리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많은 놀림을 받는 악기’ ‘비발디의 ‘사계’ 계절 구별하는 법’ 등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콘텐츠들을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클래식 이야기에 빠져들게 된다. 클래식 플레이리스트 채널인 ‘클래식 좀 들어라’는 구독자 11만명을 보유하고 있다.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 드보르자크 피아노 트리오, 베토벤 교향곡 7번 등을 실은 영상 ‘걍 살면 되지 않을까’는 조회수 79만회를 기록했다.

KBS교향악단이 공식 유튜브 채널에 올린 ‘강호동 협주곡’, ‘궁예 레퀴엠’ 영상은 큰 화제를 모으며 수백만 회의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다. ‘강호동 협주곡’은 KBS 예능 프로그램 <1박 2일>의 강호동 모습을 작곡가 ‘불고기버거세트’의 음악에, ‘궁예-레퀴엠’은 KBS 사극 <태조 왕건>에서 궁예(김영철)가 신하들을 처형하는 모습에 베르디의 ‘레퀴엠’을 절묘하게 결합했다. KBS교향악단 유튜브 채널 캡쳐


틱톡에서도 클래식은 새로운 방식으로 소비된다. 클래식의 강렬한 구간들은 비트로 활용하기에 딱 맞다. 예컨대 쇼팽의 ‘화려한 대왈츠’나 비발디 ‘사계’의 주요 구간을 짧은 릴스 영상 배경음악으로 삽입하는 식이다. 쇼팽의 ‘녹턴’이나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와 같은 익숙한 클래식 선율이 영상의 분위기를 살리는 감성 필터처럼 활용되고,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이나 비발디의 사계가 리믹스 형태로 바이럴된다. 40만명 이상의 틱톡 팔로어를 보유한 프랑스 바이올리니스트 에스더 아브라미는 BBC 인터뷰에서 “클래식 음악을 젊은 세대에게 알리는 데 SNS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프리랜서 디자이너인 정나래씨(25·가명)는 클래식을 ‘기능성 음악’으로 즐기는 사용자다. 아이디어를 구상할 땐 모차르트를, 집중해서 작업할 땐 멘델스존을 듣는 그는 “수험생이나 프리랜서들 사이에서 공부나 작업용 배경음악으로 클래식을 듣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새로운 장르가 된 클래식

새로운 감각의 클래식 유튜브 채널들은 젊은 세대를 클래식으로 안내하는 통로다. 클래식 플레이리스트 채널인 ‘클래식 좀 들어라’(왼쪽)는 11만 구독자를, 클래식에 관련된 이야기와 궁금증을 재미있게 풀어내는 ‘클래식타벅스’는 27만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각 유튜브 채널 캡쳐.


전문가들은 Z세대가 클래식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로 ‘아날로그적 감성에 대한 향수’와 ‘디지털 피로 해소’를 꼽는다. 빠르게 소비되고 사라지는 디지털 콘텐츠 속에서 정적인 클래식 음악은 마음을 붙잡는 ‘쉼’이 된다. 특히 감각의 과잉 속에서 사는 젊은 세대에게 차분한 자극을 원하는 심리적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장르라는 분석이다. 또 하나의 요인은 차별화된 취향에 대한 욕구다. 모두가 비슷한 음악을 소비하는 시대에 클래식은 취향을 드러내는 수단이 된다. 단, ‘텍스트힙’이 과시나 지적 허영을 당당히 전시하는 형태로 시작됐다면 오롯이 집중하는 경험과 감각을 위해 클래식을 찾는다는 점이 다르다. 유튜브에서 클래식 플레이리스트 채널을 즐겨 듣는 대학생 장유진 씨(22·가명)는 “클래식은 감성을 자극하며 신선한 장르처럼 느껴진다”며 “친구들한테 요즘 듣는 클래식을 추천하곤 하는데 대부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고 전했다.

전통을 새롭게, 클래식의 내일

지난 1일 광화문 광장 세종문화회관 야외 계단에서 열린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 서울시오페라단은 지난 2003년부터 야외 무료 오페라를 공연하며 오페라 공연의 문턱을 낮췄다. 노정연 기자


덕분에 클래식 음악계는 새로운 바람을 맞고 있다. 복장 규제를 없앤 드레스코드 프리 공연, 연주자와 관객의 거리를 좁히는 토크 콘서트, 클래식과 다양한 장르를 결합한 크로스오버 무대까지 전통을 지키되 젊은 감각을 더한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공연장에서 ‘시체관극’을 강요하던 엄숙주의에서 벗어나 공연의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한 시도들이다. 김아림 세종문화회관 제작2팀장은 최근 클래식 공연장을 찾는 젊은 관객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로 접근이 쉬운 콘텐츠와 가격, 그리고 화제성을 꼽는다.

“SNS에서 주목받은 클래식 연주자나 공연, 좋아하는 영화의 OST 음악회, 애니메이션을 활용한 클래식 콘서트 등을 통해 젊은 세대의 접근이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아직 정통 클래식 공연에 대한 참여는 제한적이지만, 오케스트라의 현장감과 음향의 입체감을 경험하려는 관객이 점차 늘고 있는 추세입니다.”

세종문화회관이 매달 진행하는 ‘누구나 클래식’ 시리즈는 관객이 1000원부터 1만원까지 원하는 가격을 직접 선택하는 관람료 선택제로 운영된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세종문화회관은 2007년부터 운영해온 ‘천원의 행복’ 클래식 콘서트 시리즈를 지난해 ‘누구나 클래식’으로 리브랜딩했다. ‘오페라와 합창’ ‘영화와 클래식’ 등 매달 다른 주제로 해설 콘서트를 선보이며, 관람료는 1000원부터 1만원까지 관객이 자율적으로 선택해 지불할 수 있다. 지난 4월부터 진행 중인 이 공연은 취소표가 나오기 무섭게 매진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김 팀장은 “경험과 취향을 중시하는 젊은 세대의 성향이 최근 클래식 공연 기획 전반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전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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