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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본에서 확산하는 관리직 기피
버블붕괴후 기업 조직 ‘평면화’ 추진
중간관리층 감축해 의사결정 단순화
관리자당 후배·업무·책임 ↑ 눈치도 ↑
회사 “참으면 리더” 정신론으로 뒷짐
“팀장 되기 싫고, ‘프로막내’ 할래요”
서구도 Z세대 승진 기피현상 심화해
[서울경제]

송주희의 일본톡에서는 외신 속 일본의 이모저모, 국제 이슈의 요모조모를 짚어봅니다. 닮은듯 다른, 그래서 더 궁금한 이웃나라 이야기 시작합니다.



“관리직은 절대 되고 싶지 않아요.” 요즘 일본 직장인들 사이에서 자주 들리는 말이라고 합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이야기 들어본 적이 있을텐데요. “과장 달기 싫다”, “팀장 해봤자 고생만 해”, “돈은 얼마 안 느는데 일은 엄청 늘어”… 이런 말들 말입니다. 옛날 같으면 승진해서 관리직 되는 게 수많은 직장인들의 꿈이었을 테지만, 지금은 이를 기피하는 것이 주된 분위기인 듯합니다. 일본 직장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팀장 승진이 ‘賞’이라고? “요즘엔 ‘벌칙’이다”



최근 아사히신문에 흥미로운 제목의 기사가 하나 실렸습니다. ‘관리직은 벌칙 게임?’ 제목만 보면 장난 같지만, 기사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웃음기가 사라집니다. 일본 직장에서 관리직이 감당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 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인데요.

기사에 따르면, 일본의 직장 구조는 버블 붕괴 이후 ‘플랫화’를 추진해 왔습니다. 그 결과 관리직은 줄고 반대로 한 사람이 책임져야 할 부하 직원 수는 늘어났죠.

여기에 ‘일하는 방식 개혁’과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시행 이후에는 말 한마디도 조심스러워졌다고 합니다. 직원에게 무심코 건넨 말이 ‘갑질’로 오해받을 수 있다 보니, 관리자 입장에선 가벼운 말 걸기조차 주저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일하는 방식 개혁도 노동시간 단축에만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일반 직원의 근무 시간은 줄어들었지만, 그 빈틈을 채우는 건 바로 관리자입니다. 누군가는 그 일을 해야 하니까요. 목표 설정, 인사 평가, 민원 처리, 트러블 중재까지… 관리자는 ‘모든 걸 다 하는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심지어 부하 직원이 20명을 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일의 밀도는 말할 것도 없죠.

자료: 파솔종합연구소, NHK



“힘들지? 리더인데 참아야지” 쥐어짜는 기업


그런데도 대부분의 기업은 관리직 자리를 더 만들 생각이 없습니다. 이유는? 돈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더 높은 자리로의 승진'은 느려지고, ‘병목 현상’은 아래 세대의 동기부여까지 떨어뜨리고 있다고 합니다.

“관리직을 단련시키면 뭐든 해결된다”는 일본 경영진의 사고방식도 문제라고 하는데요. 연수만 잔뜩 늘려놓고 “참아야 진정한 리더가 된다”는 정신론으로만 밀어붙이는 거죠. 원래 관리자 한 명이 관리할 수 있는 부하 인원의 적정선은 약 7명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일본 직장에선 그 2배 가까이 되는 경우도 흔하다고 하네요.




“부모님 번아웃 봤어” 서구서도 Z세대 ‘승진 기피’


이런 현상이 일본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서구에서도 Z세대들을 중심으로 중간 관리자 역할을 기피하는 뚜렷한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로버트 월터스가 2000명의 화이트칼라 전문가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Z세대 응답자의 50%가 중간 관리자 역할을 거부했고, 70%가 이런 직책을 ‘스트레스는 높고 보상은 낮은’ 직무로 봤다고 합니다. 응답자의 3분의 2는 남을 관리하는 것보다 개인적 경력 성장을 선호한다고 답했고요.

Z세대들은 부모 세대가 번아웃에 시달리고, 해고 당하고, 경제 불황을 헤쳐 나가는 모습을 봐왔죠. 연금 보장이나 직업 안정성에 대한 믿음도 낮고요. FT는 이런 배경에서 Z세대들이 전통적인 경력 경로보다는 일과 삶의 균형, 자율성을 더 중시한다고 해석했습니다.



승진이 賞이 될 순 없을까


그렇다면 해결책은 없을까요? 일본 인재정보기업 파솔종합연구소의 고바야시 유지 연구원은 몇 가지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우선 관리직뿐 아니라 팀원들에게도 연수를 제공하자는 것입니다. 관리직만 이해하는 것보다 팀원들도 같은 지식을 공유하는 편이 조직 운영에 효과적입니다. 또 하나는 ‘조기 선발’입니다. 20대부터 차세대 리더를 선별해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방식인데요. 이들에게 일찌감치 특별한 경험과 연수를 제공하는 한편, 나머지 관리자들은 정기적으로 부서나 업무가 바뀌는 순환 근무의 폭을 좁혀서 임원 코스가 아닌, 전문성을 키우는 방향으로 가자는 내용입니다.

직장인이자 소설가인 이시다 카호가 쓴 ‘미스터 팀장’의 표지. 이상을 추구하는 중간 관리자의 고군분투를 그린 소설이다./아마존


기사에는 '미스터 팀장’이라는 소설의 작가이자 직장인인 이시다 카호 씨의 인터뷰가 나옵니다. 10년째 회사원으로 살고 있는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평생 ‘프로 막내’로 살고 싶어요. 관리직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부하 직원이 봐도 그 자리는 정말 힘들어 보여요.” 이시다씨의 말에 얼마나 동의하시는지요?

오늘의 일본톡을 마무리하면서 질문을 던져봅니다. 당신의 회사에서 관리직은 ‘벌칙게임’인가요, 아니면 ‘성장의 기회’인가요? 또, 당신은 리더가 되지 않기로 선택할 용기가 있나요? 저는 다음 일본톡으로 찾아오겠습니다.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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