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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지도부에 '일방 처리' 우려 전달
박찬대·정청래 회동 후 법사위 취소
"'모두의 대통령', 빈말 아님 증명한 것"
이재명 대통령이 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취임 후 열린 첫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더불어민주당의 대법관 증원 '속도전'에 이재명 대통령이 우려를 직접 표하며 막아선 것으로 5일 확인됐다. '대법관 증원'은 대선 공약 사항이지만 '사법부 길들이기'라는 반발이 적지 않은 상황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야당과 협의 없는 일방통행식 국회 운영에 대한 부담도 깔렸다. 민주당은 새 정부 출범 첫날인 전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에서 관련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이 대통령의 이 같은 의견을 수용해 추가적인 절차는 올스톱시켰다. 이 대통령이 일단 제동을 걸고 나서면서 대법관 증원법 논의도 당분간 숨고르기에 들어갈 것이란 전망이다.

李 우려 수용한 박찬대 "숙의 시간을 갖자"



여권 관계자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전날 대법관 증원 문제는 여당의 일방 처리가 아닌 야당과 협상하는 방식으로 처리해야 한다는 의견을 여당 지도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애초 민주당 지도부는 대법관을 현재 14명에서 앞으로 30명으로 늘리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이 대통령 임기시작 첫날부터 일사천리로 처리할 계획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4일 국회 사랑재에서 열린 국회의장과 정당대표와의 오찬에 참석해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전날 오후 2시 제1소위 회의, 오후 4시 전체회의를 연속으로 잡아놓고 속도전을 준비했다. 실제 민주당 소속 박범계 의원이 위원장인 법사위 제1소위는 야당 의원이 퇴장한 가운데 이재명 정부 임기 동안 총 16명의 대법관을 해마다 순차적으로 증원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당시 법안소위에선 "단기간에 대법관의 절대다수를 새로 임명하면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배형원 법원행정처 차장)는 강한 우려가 제기됐고,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도 "(취임 첫날부터 이 같은 법안을 처리하는 게) 통합보다는 분열로 읽힐 수 있다"는 신중론이 제기됐지만 무위에 그쳤다.

그러나 법안 처리는 전체회의로 넘어가지 않고 돌연 중단됐다. 이 대통령의 우려가 민주당 지도부에까지 전달되면서 상황이 급반전된 것이다. 이 대통령이 제동을 걸고 나서자, 지도부가 직접 움직였다. 법사위 제1소위가 끝나자 박찬대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민주당 소속 정청래 법사위원장실을 찾아가 "법사위 전체회의를 열지 말고, 조금 더 숙의의 시간을 가지고 해당 법안을 논의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정 위원장은 오후 4시 전체회의를 전격 취소했다.

여권 관계자는 "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했다"며 "그 말이 결코 빈말이 아니라는 것을 곧장 증명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도 대선 기간 대법관 증원에 대해 “지금은 민생 대책이 급선무”라고 밝힌 바 있다.

조희대 "공론장 마련"… 에둘러 증원 반대



대법관 증원은 오래된 '사법 개혁' 과제 중 하나다. 국회 역시 과거 2010년 사법개혁특별위원회를 만들어 해당 문제를 논의한 적이 있다. 당시 사개특위 활동결과보고서에 따르면, 대법관을 6명 증원해 20명으로 대법원을 구성하고, 전원합의체를 2개로 나누는 방식의 상고심제도를 개편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다.

증원에 찬성하는 의원들의 입장도 다르지 않다. 김용민 의원은 "대법관 1인당 연간 약 5,000건에 달하는 사건을 처리해야 할 정도로 업무가 과중하다"며 "이로 인해 상당수 사건이 '심리불속행 기각'1으로 종결되는 구조 속에서 상고심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심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법관의 구성이 '서울대 법대 출신의 50대 남성 고위 법관'으로 획일화됐다는 점도 개혁의 필요성을 뒷받침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 취임선서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 대통령, 우원식 국회의장, 조희대 대법원장, 김형두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 뉴시스


그러나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당장 국민의힘에서 반대 의견이 나왔고, 민주당 내부에서도 '신중론'이 제기됐다. 법조인 출신의 한 민주당 의원은 "불필요한 상고심 재판 증가로 상고심이 오히려 대형 로펌들의 돈벌이 수단이 될 수 있다"며 "개혁이 아닌 개악이 되지 않으려면 충분한 숙의 과정은 필수"라고 말했다. 다른 법조인 출신 의원은 대법관을 100명 늘리자는 법안을 지적하며 " 마치 대법원에 대한 '분풀이'로 비칠 수 있다"며 "시기적으로도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당사자인 대법원도 에둘러 반대 의사를 밝혔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이날 대법원에서 기자들과 만나 "공론의 장이 마련되길 희망하고 있다"며 "헌법과 법률이 예정하고 있는 대법원의 본래 기능이 무엇인지, 국민을 위해 가장 바람직한 개편 방향이 무엇인지를 계속 국회에 설명하고 협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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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불속행 기각'심리불속행 기각은 본안 심리도 없이 상고를 기각하는 제도로, 재판 당사자는 구체적인 승소·패소 이유를 알 수 없다. 해당 비율은 민사소송 기준 70%에 달한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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