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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대 전 정의당 의원

이재명 정부의 출범을 맞은 백악관의 첫 논평은 외교적 관례를 벗어난, 거칠고도 낯선 언사로 시작됐다. “한국이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치렀지만, 미국은 여전히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대해 우려한다.” 축하 메시지라기엔 어색하고, 시의적절하다기엔 지나치게 노골적이었다. 동맹국의 새 정부 출범을 기념하는 메시지에서 굳이 중국을 언급하며 한국 대선 결과와 연결 짓는 듯한 발언은, 한국의 민주주의 회복에 대한 축하보다는 이재명 정부의 실용외교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내는 미숙하고 비외교적인 표현이다.

그 전조는 이미 감지된 바 있다. 지난 5월31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샹그릴라 대화에서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은 중국을 아시아의 패권 지망 세력으로 규정하며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은 악의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우리의 국방 결정을 제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헤그세스는 동맹국들에 대중국 전략에 동참하라는 요구가 스스로도 심했다고 보았는지 “때로는 거친 사랑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입니다”라며 멋쩍어했다.

그로부터 사흘 뒤인 6월3일, 대선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자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 의존을 경계해온 이재명 후보가 당선될 것”이라며, 이번 선거가 남북관계는 물론 대중 관계에도 변화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 신문은 5월에도 주한미군 4500명 감축설을 보도하면서 미국의 강경우파 목소리를 증폭하는 스피커 역할을 했다. 미국식 ‘거친 사랑법’은 이미 작동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거친 배려의 이면엔 구체적인 청구서가 숨어 있다. 첫째는 국방비 증액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들이 국내총생산(GDP)의 5%까지 방위비를 지출하겠다고 약속했다는 언급은, 한국도 그에 못지않은 ‘성의’를 보이라는 은근한 압박이다. 둘째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군사적 역할 확대다. 인도·태평양 전략의 전면화 속에서, 주한미군이 북한뿐 아니라 중국까지 감시하는 다목적 전력으로 재편될 가능성은 예상된 수순이다. 셋째는 경제적 ‘디커플링’, 즉 중국과의 전략적 거리 두기다. 미국 안보 프레임에 맞춰 경제적 선택까지도 동조하라는 요구는, 한 나라의 주권을 본질적으로 시험하는 행위다.

이쯤 되면 묻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과연 건강한 동맹인가? 안보는 물론 경제·사회 전반에 걸쳐 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 사안을, 동맹의 이름으로 일방 통보하는 관계가 과연 오래 지속될 수 있을까?

헤그세스 장관은 “일방적으로 보인다면 철통같을 수 없다”고 말했지만, 우리는 트럼프 정부가 일방적이라는 점을 분명히 안다. 게다가 중국과의 관세전쟁에서 우위를 차지하지 못한 트럼프 정부가 동맹에 대해 허세를 부리는 것 같은 의심마저 든다.

노무현 정부 초기를 떠올려보자. 당시 조지 W 부시는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기치 아래 이라크 파병과 주한미군 재배치, 대북 군사 압박을 노골적으로 요구했다. 한·미 동맹은 피로해졌고, 한국 사회는 분열됐다. 그러나 그러한 미국의 일방주의는 오래가지 못했다. 부시 말기에 이르러 그 외교 노선은 스스로 무너졌다. 이라크 전쟁으로 중동을 민주화하고, 압박으로 북한을 붕괴시킨다는 구상은 네오콘의 망상과 오만으로 판명됐다. 미국 정부의 잘못된 개입은 국제사회의 신뢰를 잃게 했고, 미국 스스로도 자국의 피로도를 감당하지 못했다. 지금의 트럼프는 그 당시의 교훈을 잊었거나, 아예 알지도 못하는 것 같다. 지금의 미국은 그때보다 더 작아졌고, 지금의 한국은 그때보다 더 커졌다. 미국이 동맹국의 이익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심각한 역풍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점도 아는지 의문이다.

한국은 방위비 분담금 1조5000억원, 미군 1인당 5200만원을 현금으로 지원하며, 전 세계에서 가장 호화롭고 넓은 기지를 제공했다. 여기에다 미군은 각종 공과금과 세금, 통행료와 공무상 피해보상까지 추가로 지원받는다. 한국은 2023년 기준으로 9조7000억원의 미국 무기를 구입해 아시아 1위의 미국 무기 수입국이다.

그 정도면 한국에서 먹어도 많이 먹은 것 아닌가. 이마저도 부족해 아직도 한국에 뭘 더 받아내려 한다면 차라리 미군이 감축되는 것이 맞다. 어차피 한국보다 더 좋은 조건으로 주둔할 수 있는 곳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기에 미군이 그렇게 쉽게 떠나지도 않을 것이다. 이걸 미끼로, 대중국 견제라는 이름으로 우리 경제를 무리하게 디커플링하자는 발상도 위험하다. 이재명 정부는 가수 김광석의 노래처럼,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분명히 해야 한다.

김종대 전 정의당 의원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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