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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어야 두시간으로 예정했던 어색한 만남이 김밥 한 줄을 곁들인 3시간 40분간의 열띤 회의로 바뀌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5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취임 후 첫 국무회의는 당초 예상과는 다르게 전개됐다. 이날 국무회의에는 이주호 국무총리 직무대행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유상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조태열 외교부 장관 등 윤석열 정부에서 임명된 장·차관이 다수 참석했다.

다소 냉랭한 분위기를 감안한 듯 회의 개시 직후 이 대통령은 참석자들에게 “좀 어색하죠? 우리 좀 웃으면서 합시다”라고 운을 뗐다. 이어 “우리는 다 국민들로부터 위임받은 업무를 하는 대리인이니, 공직에 있는 기간만큼은 각자 최선을 다하면 될 것 같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또 “(공직자) 여러분이 가진 권한·책임을 한순간도 소홀히 할 수 없지 않으냐”며 “각 부처 단위로 가장 잘 아실 테니 그 범위 내에서 여러분의 의견도 듣고, 저도 드릴 말씀을 드리겠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청사에서 취임 후 열린 첫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비공개 회의에선 기획재정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농림축산식품부 등 경제 부처를 중심으로 현안 보고가 이뤄졌다. 각 부처 장·차관이 5분간 현안을 보고하면, 이 대통령이 질문하며 문답을 주고받는 방식이었다. 참석자들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중소벤처기업부엔 “소상공인과 서민 가운데 악성 부채가 있는 사람들에겐 어떤 지원이 필요하냐”라고 물었고, 과기부엔 “인공지능(AI) 분야에 필요한 그래픽처리장치(GPU) 확보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느냐”고 했다. 농림축산식품부엔 “쌀 재배 면적을 줄이는 게 기본 방향이라면, 대체 작물 재배로 유도하는 지원 정책이 필요하지 않겠냐”는 의견도 제시했다.

지금까지 국무회의는 대체로 짜인 시나리오대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다. 대통령이 자리에 앉아 원고에 적힌 대로 모두발언을 하고 각 부처 장관 역시 미리 준비한 보고를 마치면, 필요한 의결 사항만 안건별로 의결한 뒤 끝내는 식이었다. 대통령이 시나리오에 없던 발언을 하더라도, 대부분 일방적인 지시일 뿐 문답이 길게 오가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이재명 대통령이 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청사 국무회의실에서 김밥을 먹으며 국무회의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하지만 이날 국무회의에선 대통령과 장·차관의 질의응답이 수차례 반복됐다고 한다. 장관 대신 회의에 참석한 한 차관은 “편안한 분위기에서 계속 문답만 오갔다”며 “다양한 분야에 걸쳐 굉장히 자세하게 물어봤다”고 했다. 또 다른 회의 배석자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경우 본인이 말을 길게 하고 어쩌다 한두 사람을 특정해서 ‘얘기해보라’고 하는 식이었다면, 이 대통령은 본인이 궁금한 게 많아서인지 남의 얘기를 굉장히 많이 들으려고 했다”고 말았다.

이날 회의에선 이 대통령이 선거 기간 공약한 내용에 대한 대화도 오갔다. 이 대통령은 해양수산부에는 부산 이전의 빠른 준비를 지시했고, 고용노동부에는 근로감독관 증원의 필요성을 얘기하며 현황 파악과 가능한 방법 제시를 지시했다.

회의 뒤 참석자들 사이에선 “선거 유세를 하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문제라고 지적된 사항이나 평소 궁금했던 것을 많이 물어 토의가 활발하게 이뤄졌다” “시장·도지사를 지내고 오랫동안 정치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내용을 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실질적인 국무회의 같아 보였다” “대통령이 알아듣는 속도가 빠르다. 감이 좋다”는 평가들이 나왔다.

이재명 대통령이 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김밥으로 점심을 먹으며 국무회의를 이어가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당초 대통령실 참모들은 이날 국무회의가 2시간 안에 끝날 것으로 예정했다. 그러나 질의응답이 길어지면서 회의는 3시간 40분 동안 이어졌다. 이 대통령을 포함한 참석자들은 회의 도중 김밥을 주문해 한줄씩 먹으면서 점심을 대신했다. 회의 과정에서 특정 부처 장관을 질책하거나 언성을 높이는 일은 없었다고 한다.

이날 이 대통령은 이른바 ‘지하 벙커’라 불리는 국가위기관리센터에서 첫 안전치안점검회의도 주재했다. 이 회의엔 행정안전부·국토교통부·경찰청·소방청 등 관계 기관과 함께, 김동연 경기지사와 박형준 부산시장 등 광역단체장들과 화상으로 참석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안전치안점검회의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이 대통령은 “우리가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 대신 일하는 것인데 국민들의 생명을 지켜내는 일 만큼 중요한 것이 어디 있겠느냐"라며 "예측되는 사고 또는 사건이 발생하는 경우 앞으로 엄정하게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성남시장 시절 재난·재해 경험을 거론하며 “조금만 신경 쓰고 대비했으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며 “원인이 파악되면 대책 수립이 가능하고, 이는 재해도, 범죄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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