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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효식 사회부장
1987년 6월 민주화는 본질적으로 ‘타협에 의한 민주화’였다.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위시한 6·29선언부터 전두환 신군부 정권과의 타협의 산물이었다. 그해 12월 16일 치러진 13대 대통령선거에서 김영삼·김대중 후보는 단일화에 실패했다. 각각 ‘군정 종식’ ‘군부독재 종식’을 선거 구호로 내세웠으나 ‘보통사람’으로 변신한 5공화국 2인자 노태우 후보가 당선해 6공화국을 열었다. 그 대신 12·12 군사반란 및 5·18 내란 사건 수사를 통한 전·노 심판은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온 97년까지 10년이나 늦춰졌다. 87년 민주화가 ‘미완의 민주화’라고 평가받는 이유였다.

2위와 8.3%P 차로 ‘내란 종식’ 선택
‘초여대야소’의 거대 권력 현실화
7공 개헌 약속 꼭 지켜 분열 끝내야

이후 38년간 아홉 번의 대선이 국가적 문제 해결 방안과 미래 비전을 놓고 경쟁하기보다 정권 심판 선거로 귀착된 건 미완의 민주화의 귀결이었다. 5년 단임 대통령 심판이 민주주의의 모든 과정을 압도했다. 대통령의 배우자·자녀 등 가족과 측근들의 비리와 부패 스캔들 수사에 국민은 박수 치며 순간의 만족감에 중독돼 갔다. 그 결과 아홉 명 중 두 명의 대통령이 탄핵 파면됐고, 다섯 명은 구속됐으며, 한 명은 검찰 수사 중 자살했다. 민주화로 탄생한 대통령제는 제왕적 대통령과 범죄자 대통령을 오가며 만신창이가 됐다.

최신 사례가 헌법 수호 책무를 저버리고 군부 내 사적 인맥을 동원해 헌정질서를 무너뜨리려고 했던 윤석열 전 대통령이다. 자신은 부정선거 음모론, 대국민 계몽령 같은 황당한 이유를 주장했지만 국민 상당수는 배우자 김건희 여사에 대한 특검 수사 등을 막으려 했던 게 진짜 이유라고 의심한다.

국민 다수는 제21대 대선에서 이를 내란 행위로 보고 심판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개표 결과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보다 289만1874표(8.27%포인트)를 더 얻었다. 3년 전 패배(24만7077표·0.73%포인트)를 약 12배 차로 뒤집은 건 내란 심판 외 다른 요인으로 설명하긴 어렵다.

이 대통령은 4일 국회에서의 취임 연설에서 5대 국정과제의 첫 번째로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만들겠다”고 꼽았다. “국민이 맡긴 총칼로 국민 주권을 빼앗는 내란은 다시는 재발해선 안 된다. 철저한 진상 규명으로 합당한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책을 확고히 마련하겠다”고 했다. 12·3 비상계엄 등 내란 진상규명을 위한 특검법안, 계엄 시 국회 서면 통고를 의무화하는 계엄법 개정안 등 관련 법안들은 민주당 주도로 국회에 발의된 상태다. 수방사·특전사·방첩사 등 대한민국 안보 핵심 사령부들이 임무를 저버리고 대통령의 사적 이익에 동원되는 일을 원천 차단하는 건 그중 급선무다.

이 대통령은 그럴 만한 힘도 있다. 행정권력과 더불어 조국혁신당·진보당·무소속을 포함한 범여권의 190석 초(超)입법권력이란 뒷배를 뒀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도 임기 초반을 여대야소로 시작했지만 차원이 다르다. 앞서 두 사람은 각각 여당 내 야당(친박계), 140석 야당(민주통합당·통합진보당)의 견제를 받았다. 굳이 이 대통령이 나서지 않더라도 여당인 민주당 주도로 6개월 안에 내란 종식 특검 수사 및 재발 방지 입법까지 마무리할 수 있다. 이 대통령에겐 취임 첫날부터 트럼프 정부로부터 무역 협상 독촉장이 날아오고 1분기 마이너스 성장으로 추락한 한국 경제를 되살리는 등 급한 과제가 산적해 있기도 하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정치 보복을 하지 않겠다고도 약속했다. 취임사에선 통합을 다섯 번 외치고 “분열의 정치를 끝낸 대통령이 되겠다”고 밝혔다. 그러려면 취임사에선 빠졌지만 “2026년 지방선거, 늦어도 2028년 총선 때 국민의 뜻을 묻겠다”던 개헌 공약을 지켜야 한다. 이 대통령은 증오 정치의 시대를 끝내고, 협치가 제도화한 7공화국의 새벽을 여는 대통령이 될 수 있다. 의회주의자 양김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꿈이기도 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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