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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 해안에서 폐어구에 걸린 채 발견된 새끼 남방큰돌고래

■ 낚싯줄에 '칭칭' 새끼 돌고래, 폐어구 문제 수면 위로

2년 전 제주도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 해안에서 폐어구에 걸린 새끼 돌고래가 발견된다. 낚싯줄과 바늘이 주둥이와 몸통, 꼬리를 파고든 상태로 힘겹게 유영하는 긴급한 상황. 고통스럽게 몸부림치는 새끼 주변엔 어미가 맴돌고 있었다.

1년간 새끼를 뱃속에 품는 남방큰돌고래. 그렇게 소중히 보듬어 세상에 내보낸 새끼의 아픔을 지켜보는 어미의 모습은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고 폐어구 문제의 심각성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됐다.

취재진이 폐어구 실태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KBS제주총국 74주년 특집 다큐멘터리 〈죽음의 바당 2부작〉 중 남방큰돌고래 ‘턱이’의 사냥 장면

■ '턱 변형' 남방큰돌고래 턱이의 강한 생명력

당시 다큐를 만들며 제주 연안에 서식하는 120여 마리의 남방큰돌고래를 찾아다녔다.

그러다 수상한 녀석을 발견하게 됐다. 주둥이가 벌어진 남방큰돌고래 '턱이'었다.

턱이는 2019년 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MARC)에 의해 처음 발견됐다.

당시 턱이의 구강 구조를 확인한 전문가들은 악성 종양으로 인해 턱이 변형된 것으로 추정했다.

처음 턱이를 목격했을 땐 어떻게 먹이 활동을 하나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기우였다.

턱이는 강한 생명력으로 여느 돌고래처럼 물고기를 사냥했다. 생김새는 달랐지만 다른 개체와의 무리 생활도 문제가 없었다.

제주에서 수년간 돌고래를 모니터링하고 있는 오승목 다큐멘터리 감독은 "턱이는 구강암에 걸린 것으로 추정되고, 입을 닫지 못하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광어를 곧잘 사냥한다"며 먹이 활동하는 턱이의 사진과 영상을 내게 보여줬다. 그는 턱이의 사냥 장면을 보며 '정말 경이로운 모습'이라고 거듭 감탄사를 연발했다.

지난 2일 서귀포 중문 주상절리 인근 해안에서 죽은 채 발견된 남방큰돌고래 ‘턱이’ (제공=오승목 다큐제주 감독)

그런데 2일 저녁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다. 강한 생명력의 상징이던 턱이가 서귀포 중문 주상절리 인근 해안에서 죽은 채 발견됐다는 내용이었다.

해경의 연락을 받은 제주대 고래·해양생물보전연구센터 김병엽 교수와 오승목 감독이 곧장 현장으로 향했다.

2시간 넘는 구조 끝에 턱이를 뭍으로 올렸지만 이미 숨이 끊긴 상태였다.

오 감독은 "턱이가 죽기 하루 전 촬영한 영상이 살아있는 마지막 모습이 돼버렸다"며 허탈해했다. 이어 "부검을 통해 사인을 밝히고, 그동안 추정되던 질병 여부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 감독은 "아름다운 곳에서 편히 쉬기를 간절히 바란다"며 턱이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KBS제주총국 74주년 특집 다큐멘터리 〈죽음의 바당 2부작〉 중 꼬리지느러미가 잘린 남방큰돌고래 ‘오래’의 모습

■ 낚싯줄에, 폐그물에…바닷속 보이지 않는 죽음

강인함의 상징이었던 턱이가 세상을 떠나자 현장에서 봤던 돌고래들이 하나둘 아른거린다.

제주 바다엔 '오래'라는 남방큰돌고래도 있다. 꼬리지느러미가 잘린 개체인데 사람들이 오래 살라며 지어준 이름이다.

꼬리가 없는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폐어구에 잘렸거나, 선박의 스크루에 절단됐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앞서 언급한 폐어구에 걸린 새끼 돌고래의 고통도 현재 진행형이다.

그사이 굵은 폐어구에 걸린 돌고래 '행운이'도 추가로 발견됐다. 행운이는 다 큰 개체여서 움직임이 활발하고 먹이 활동도 정상이지만 꼬리를 옭아맨 폐어구가 바닷속 암반이나 버려진 그물 등에 걸려 언제든 생명이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11월 서귀포시 주상절리 인근 바닷속에서 폐그물에 걸린 채 발견된 바다거북 (제공=서귀포해양경찰서)

비단 돌고래뿐이랴. 제주대 고래·해양생물보전연구센터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4년 말까지 제주 해상에서 죽은 채 발견된 바다거북은 128마리에 이른다.

이 가운데 25%에 달하는 31마리의 몸에서 폐어구가 발견됐다. 인간에게 발견되지 않은 개체를 포함하면, 그 수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낚싯줄에 걸리거나 바늘을 삼켜 죽는 야생조류와, 폐그물에 통째로 뜯겨나가는 연산호 군락 등 바닷속에선 지금도 보이지 않는 죽음이 계속되고 있다.

KBS제주총국 74주년 특집 다큐멘터리 〈죽음의 바당 2부작〉 중 서귀포 섶섬 인근 해상에서 발견된 거대한 폐그물의 모습

■ 바다의 경고…'유령어업' 피해 연간 4,000억 원

제주도에서 20년 넘게 돌고래와 바다거북을 연구해 온 김병엽 교수의 경고는 현실이 됐다.

"우리가 보기에 한두 마리가 죽은 것 가지고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느냐 하지만, 바다의 지표종으로 봤을 때 굉장히 위험한 신호를 알리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모르는 거죠. 서서히 다가오는 위험을."

바다에 떠다니는 폐어구는 어선과 선박의 스크루를 휘감고 있다.

대형 인명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부유물 감김 사고는 전국적으로 해마다 400건 가까이 발생하고 있다.

해녀들은 폐어구에 걸릴까 봐 두려워 조업을 망설이고, 아름다운 경관을 보러 제주 바다를 찾은 다이버들은 안전 문제를 호소하고 있다.

전국 해안가 곳곳이 폐어구와 미세플라스틱에 몸살을 앓고 있다. 버려진 어구에 걸려 죽는 이른바 유령어업으로 인한 피해는 연간 4,000억 원에 이른다.

우리나라 바다가 '폐어구 지옥'으로 변하는 사이 턱이가 세상을 떠났다.

마치 희망의 상징이 사라져 버린 것만 같다. 턱이를 떠나보내며, 스스로 되묻게 된다. 우리 바다에 희망이 있을까?

(늦었지만, 정부는 지난해 강화된 폐어구 관련 대책을 마련했다. 관련 규제를 담은 수산업법 개정안은 내년 4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다큐멘터리 죽음의 바당 2부작 다시 보기]
1. [시사기획 창] 죽음의 바당 1부 ‘숨’ (2024.09.24)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056543
2. [시사기획 창] 죽음의 바당 2부 ‘덫’ (2024.09.24)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066342
3. 바닷속 ‘죽음의 덫’, 앞으로 이렇게 막는다 (2025.04.14)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226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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