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제21대 대통령 당선이 확실시된 4일 오전 1시20분께 서울 여의도 국회 인근에서 당 주최로 열린 국민개표방송 행사에 참석해 김혜경 여사와 함께 시민들을 향해 두 팔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3일 치러진 제21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당선됐다. 이 대통령은 개표 초반부터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를 여유 있게 따돌리며 승리했다. 그동안의 ‘이재명 1강’ 여론조사 흐름은 바뀌지 않았다. 투표율도 79.4%로, 1997년 15대 대선(80.7%) 이후 28년 만에 가장 높았다. ‘내란 극복’을 바라는 민심이 우리 저변에 널리 퍼져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한 것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폭거로 혼돈과 분열의 터널로 빨려들어갔던 대한민국이 6개월 만에 정상화 궤도에 올랐다. 이 대통령을 찍은 투표용지의 무게만큼이나 이 대통령의 역사적 책임도 막중하다. 이 대통령은 이날 밤 방송 3사가 ‘이재명 당선 확실’을 예측한 직후 “국민들의 위대한 결정에 경의를 표한다”며 “제게 주어진 큰 책임과 사명을 국민들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수행하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사회 통합과 문제 해결을 동시에 해내는 유능한 민주정부를 이끌어,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내란 심판과 국가 정상화 열망의 승리
이 대통령 당선은 국민이 내란 심판과 민주주의 회복 열망을 그에게 전폭적으로 실어준 결과다. 이번 대선은 윤석열이 위헌·위법한 비상계엄을 일으켜 헌법재판소에서 전원 일치 결정으로 파면됨에 따라 치러진 조기 대선이다. 선거는 마땅히 내란 세력에 책임을 묻고 민주 헌정 질서를 회복하는 장이었다. 지난겨울 응원봉을 들고 여의도와 광화문, 남태령, 전국의 거리를 메운 시민들의 염원은 내란 우두머리를 대통령직에서 끌어내렸고, 마침내 정권교체를 이뤄냈다. 윤석열 시대 청산을 넘어, 국가를 정상화하고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한 단계 높이라고 주권자가 위임한 것이다.
8년 사이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을 두번 치른 것은 불행한 역사지만, 대통령이 배반할 때마다 주권자의 손으로 바로잡은 회복력은 우리의 자부심이다. 민주시민 모두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간 없이 4일 곧바로 5년 임기를 시작하는 이 대통령은 승리의 기쁨을 누릴 여유가 없다. 12·3 이후 국정은 마비됐고, 위기의 불길은 안팎에서 번지고 있다. 민생경제 회복, 외교안보 대응, 국민 통합 등 어느 것 하나 쉬운 과제가 없다. 성남시장, 경기도지사, 국회의원, 제1야당 대표를 하며 쌓은 경험과 지혜, 대선에서 확인된 국민적 지지, 대통령의 권한 등 모든 조건과 역량을 첫날부터 총동원해야 한다.
‘반쪽 아닌 대통합 대통령’ 약속 지켜야
기본자세는 국민 통합이어야 할 것이다. 이 대통령 당선 자체가 그동안의 혼돈과 분열을 끝내고 통합의 새 시대를 열자는 의미가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통치와 계엄·탄핵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 사회의 정치적 갈등과 대립이 극심해졌다. 대선 결과는 이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국민도 절반에 가깝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대통령은 윤석열과는 정반대로, 지지자만의 대통령이 아닌 국민 모두의 대통령으로서 포용의 정치, 통합의 국정을 펼쳐야 할 것이다. “반쪽 대통령이 아닌 대통합의 진짜 대통령이 되겠다”는 약속대로 야당과 비판자들까지 보듬는 대통령이 되길 바란다. 통합 의지는 대통령실 참모와 내각 구성에서부터 폭넓은 탕평 인사로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국민과의 직접 대화나 기자회견 정례화 등 활발한 소통도 기대한다.
당장 팔 걷고 나서야 할 문제는 민생경제다. 우리 경제는 저출생·초고령화에 따른 인구구조 변화 속에 내수와 수출의 동반 부진, 미국발 관세 충격, 저성장 지속 등 복합적 위기에 놓여 있다. 한국은행은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5%에서 0.8%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은 경기침체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청년 세대와 불안정 노동자도 신음하고 있다. 반도체·자동차·조선 등 한국의 주력 수출 분야는 중국의 빠른 추격과 미국의 정책적 압박으로 세계시장에서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인공지능(AI) 투자를 비롯해 과감한 혁신과 신성장 동력 육성이 시급하다. 실용주의와 ‘잘사니즘’을 내세우며 회복·성장을 최우선 과제로 꼽은 이 대통령은 당선 시 “경제 상황 점검 지시”를 가장 먼저 하겠다고 했다. 과감한 추가경정예산 편성과 집행 등을 속도감 있게 해야 한다.
민생경제 회복과 안보·통상 대처 급선무
외교안보 상황 또한 격랑 속이다. ‘미국 우선주의’를 노골화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두차례 집권하는 동안 세계는 각자도생·무한경쟁의 정글이 됐다. 미-중 대결은 심화하고 있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도 3년 넘게 지속되며 세계정세에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안보와 무역을 연계하는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에 고율 관세 외에도 비관세 장벽 완화, 방위비 분담금 인상, 주한미군 감축이나 역할 조정 요구 등 다양한 압박을 가해 올 가능성이 높다. 핵 능력을 급속도로 끌어올린 북한은 한국을 ‘교전 중인 적대적 국가’로 규정하고, 러시아와 군사협력을 심화하는 등 남북 관계도 질적으로 변화했다. 실력 있는 외교안보팀 구축과 치밀한 대응이 절실하다.
이 대통령 당선은 광장의 목소리가 합쳐진 결과라는 점 또한 잊지 말아야 한다. 이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민주당을 중도보수라고 규정했고, 규제 완화와 민간투자 촉진 등 친기업적이고 성장 중심적인 정책을 적극 내세웠다. 그 과정에서 기후위기, 지방소멸, 노동, 여성·장애인 등의 의제는 상대적으로 뒤로 밀렸다. 이 대통령 당선은 그의 표현대로 “빛의 혁명”에 빚졌다. 진보 가치와 광장의 요구를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대선 공약들도 취임 뒤에는 현실을 반영해 우선순위와 강약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면 국민에게 설명하고 재정비하는 용기도 필요하다.
내란 세력 단죄와 윤석열·김건희 의혹 규명이 기본 책무라는 점은 두말할 것도 없다. 이 대통령이 “초보적인 정의 실현과 정치 보복은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듯이, 내란 심판과 사회 통합은 결코 배치되는 게 아니다. 내란을 일으킨 윤석열은 물론이고, 한덕수 전 국무총리 등 이를 방조하거나 협력한 의혹을 받고 있는 인사들을 철저히 수사해 합당한 처벌을 받도록 해야 한다. 내란 수괴는 사면하지 않는다는 무관용 방침도 분명히 밝혀야 한다. 김건희씨의 주가조작과 공천·인사·국정 개입 의혹 등도 철저하게 규명해야 한다.
의회·야당 존중해 정치 정상화하길
계엄·탄핵 국면에서 그 필요성이 재확인된 검찰·사법 개혁도 미룰 수 없다. 지난 3년간 윤석열 부부를 옹위하던 검찰은 정권교체가 가시화하자 뒤늦게 그들을 겨냥하는 시늉을 하고 있다. 수사권과 기소권 분리 공약을 반드시 실행해야 한다. 법원 또한 윤석열 구속 취소와 이 대통령 공직선거법 파기환송 판결에서 보듯, 대선 코앞에서 정치에 개입하려는 의도를 보였다. 사법부 존중은 필요하지만, 지금 같은 법원 모습이 절대적 진리일 수도 없다. 국민 권익 고양에 필요한 대법관 증원 등 제도적 변화가 필요하다.
이 같은 과제들을 풀어내려면 정치를 정상화하는 게 필수다. 이는 의회·야당을 적대시하며 정치를 파괴한 윤석열에게서 반면교사 삼아야 할 가장 대표적 지점이기도 하다. 여대야소 국회 구조에서 국정을 수행하게 된 이 대통령은 거대 여당이 법안을 통과시키면 거부권 행사 없이 수용해 강력한 추진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야당을 대화 상대로 존중하고, 국정 협력을 설득하는 협치와 타협의 자세를 잊지 말기 바란다. 국민의힘 또한 ‘무작정 반대’를 할 게 아니라, 계엄·탄핵에 대해 잘못을 반성하고 합리적 보수, 건전한 견제 세력으로 재탄생하지 않으면 영영 국민의 버림을 받을 것이다. 권력 집중을 완화하고 협치와 지역균형발전 가능성을 높이는 헌법 개정 또한 빈 약속으로 끝나선 안 된다. 개헌은 대선 후보들의 공통 공약인 만큼, 이 대통령과 정치권은 머리를 맞대고 실행안을 마련하기 바란다.
이 대통령은 “진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약속을 지켜, 반드시 ‘성공한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오늘 그 첫걸음을 떼는 이 대통령의 어깨에, 그 어느 때보다도 간절한 국민들의 기대가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