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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 당선자가 성남시장이던 2016년 정부의 지방재정개편계획에 반대하며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11일째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영하 10도의 칼바람이 몰아치던 2017년 1월의 어느 월요일 아침, 작업복 차림을 한 노동자 여남은명이 허리춤에 손을 찔러 넣은 채 경기도 성남의 구석진 공장에 몰려온 일군의 무리를 신기한 듯 내려다봤다. 몇대 안 되는 카메라는 이 공장에서 15살 소년기를 보낸 정치인과 그 가족을 비추고 있었다.

“이재명, 이재명!” 연호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그가 말했다. “소년 노동자가 오늘 바로 그 참혹한 기억의 공장에서 대한민국 최초의 노동자 출신 대통령이 되려고 합니다.” 3일 제21대 대한민국 대통령에 선출된 ‘소년공’ 출신 성남시장 이재명이 중앙정치에 자신의 이름을 공식적으로 새긴 날이었다.

“소년공이 온다”…첫 노동자 출신 대통령

“소년공이 온다.” 이 당선자의 한 참모는 그의 당선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 당선자가 첫번째 대선에 도전한 2017년 출사표를 던진 곳은 성남 상대원동의 오리엔트 시계 공장이다. 경북 안동의 산골에서 7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난 이 당선자는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가족과 함께 성남으로 옮겨왔다. 1976년 만 12살에 공장에 소년공으로 취직한 그는 이후 야구 글러브를 만드는 공장에서 프레스 작업을 하다 기계에 찍혀 장애 6급의 산업재해를 입게 된다. 그의 왼팔은 여전히 굽어 있다.

1979년 이재명 대통령 당선자(왼쪽 첫째)가 시계 만드는 오리엔트 공장에 다닐 때 남이섬으로 야유회를 가 둥글게 앉아 노래하는 모습. 더불어민주당 제공

“흙수저도 아닌 무수저”라고 스스로를 설명해온 이 당선자에게 빈곤과 노동, 폭력은 소설이나 사회과학 서적에서 배운 말이 아니다. 춘궁기가 되면 허기를 견디려 참꽃을 뜯어 먹고, 공장에선 구타를 이겨내며 검정고시를 꿈꾸던 그였으나 잡역부로 일하던 아버지는 그의 학구열마저 허락하지 않았다고 이 당선자는 자서전 ‘함께 가는 길은 외롭지 않습니다’에서 밝혔다.

어려웠던 유년의 기억은 이 당선자의 정치 인생에서 양가적 의미를 지닌다. 인생의 마디마디에 새겨진 빈곤과 고통의 기억 탓에 그가 변호사 출신 유력 정치인이라는 자리에 도달한 뒤에도 비주류 정체성을 버리지 못한다는 게 정치권 일각의 평가다. 주변을 넓게 품어안는 지도자가 아니라 주류 질서에 반기를 든 투사 기질이 강하지 않으냐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정치 지도자보다 빈곤과 소외의 경험이 많고 약자에 대한 공감의 폭이 넓은 만큼, 대통령이 된 뒤에도 초심을 잃지 않을 거라 기대를 갖는 이들도 있다. “일자리를 잃은 이, 가난한 이들이 어떤 고통을 겪는지 공감의 수준과 몰입의 강도가 다를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재명 대통령 당선자 약력

비주류·아웃사이더·변방

스스로 “비주류였고 아웃사이더였으며 변방이었다”고 말하는 이 당선자는 1978년과 1980년 고입·대입 검정고시를 연이어 수료하고 1982년 중앙대 법학과에 입학했다. 판검사가 되거나 돈 잘 버는 변호사의 길을 택해 주류의 길을 걸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기질이 허락하지 않았다.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이 당선자는 연수원 내 ‘노동법학회’에서 정성호 의원 등 동기들과 만나 “변호사가 돼 사회변혁운동에 뛰어들자”고 도원결의했다. 이 당선자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인연도 그의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연수원에 초청된 ‘인권변호사 노무현’의 강연을 듣고 “나도 저분처럼 인권변호사가 되리라” 결심했다는 것이다.

1989년 성남에서 변호사 사무소를 개업한 뒤 이 당선자는 사회운동가의 삶을 시작했다. 이후의 행보는 주류와의 부단한 투쟁이었다. 그의 참모들은 이를 “두더지 게임”에 비유한다. “이재명은 소위 개천에서 용 난다는 속담의 표본이었다. 우리 사회의 기득권은 그걸 탐탁지 않게 보며 주류 사회로 진입하려고 하면 짓밟기 시작한다. 두더지 게임. 머리를 내밀어 불만을 제기하면 곧바로 망치로 내려쳐버리는 두더지 잡기 게임. 상고 출신 노무현 대통령에게도 그렇게 했다. 더욱이 국민학교(초등학교) 출신 이재명에게는 이 과정이 더욱더 가혹했다.”(‘이재명의 준비’, 더민주전국혁신회의 기획)

1982년 중앙대 입학식에 교복을 입고 간 이재명 대통령 당선자가 어머니와 사진을 찍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제공

철거민의 땅 성남은 각종 개발사업 비리가 횡행한 곳이었다. 이곳에서 이 당선자는 개발 비리를 폭로·고발하며 토건 세력과 전쟁을 벌였다. 지역운동 경험을 밑바탕 삼아 정치에 입문한 뒤 2010년부터 성남시장을 연임하는 동안 그는 ‘무상 산후조리원’ ‘무상 교복’ 등 무상 시리즈 정책을 밀어붙여 보수 정권의 견제를 받았다.

처음 대선에 도전한 2017년 이후 이 당선자는 정치적 부침을 거듭했다. 그러나 위기마다 기사회생하며 ‘반전의 정치’를 이어왔다. 3년 전 20대 대선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0.73%포인트 차로 패배한 뒤 그는 당에선 당의 주류 권력과 싸우는 동시에 밖에선 ‘윤석열 검찰’과 사투를 벌였다. 윤석열 정권 3년 임기 내내 먼지털기식 수사와 재판으로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까지 벼랑 끝에 내몰리는 경험을 여러차례 했다.

기득권에 맞서 일궈온 ‘반전의 정치’

절체절명의 위기마다 그는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났다. 2020년 형의 강제입원과 관련한 허위사실 공표 혐의 재판에선 대법원의 파기환송으로 기사회생했고, 지난 3월에는 서울고등법원이 공직선거법 항소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하며 1심에서 당선무효형을 받은 그의 정치생명을 되살렸다. 대선을 코앞에 둔 지난달 1일엔 다시 대법원이 공직선거법 재판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하며 백척간두에 섰으나, 파기환송심 공판이 대선 뒤로 미뤄지면서 극적으로 위기를 벗어났다.

성남시민모임(현 성남참여자치시민연대)을 창립하고 시민운동가로 성남시 ‘분당 백궁·정자지구 용도 변경’ 특혜 의혹 등을 두고 투쟁하던 시기의 이재명 대통령 당선자. 더불어민주당 제공

사선에 설 때마다 스스로 반전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가 처음 대중의 관심을 받은 것은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탄압에 맞서다 2016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단식농성에 나선 성남시장 시절이었다. 박근혜 정부의 지방재정 개편안에 반발해 단식을 시작한 그는 그해 겨울 이어진 ‘박근혜 탄핵정국’까지 광장에서 가장 뜨거운 지지를 받은 정치인이었다.

20대 대선 패배 뒤 그는 “자숙의 기간을 가지라”는 당내 압박에도 불구하고 2022년 6월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됐고, 그해 8월에는 당대표를 선출하는 전당대회에 출마했다. 대선 패배 뒤에도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는 일 없이 윤석열 정부를 향한 투쟁 전선의 최일선에 섰다. 한 친이재명계 의원은 “결국 그때 이재명의 판단이 옳았던 것이 아닌가. 물러나지 않은 이재명은 홀로 윤석열 정부와 싸웠고, 본인의 길을 스스로 열어냈다”고 평가했다.

2023년 민주당 의원 일부가 동조해 국회 본회의에서 검찰의 체포동의안을 가결시켰을 때도 이 당선자는 단식투쟁으로 맞섰다. 결과는 구속영장 기각이었다. 2024년 총선에서 그가 이끈 민주당은 171석을 확보해 압도적 승리를 거뒀다. 이를 통해 2002년 노무현 대통령 당선 뒤 친노무현계와 친문재인계가 주도해온 20년 민주당 질서를 단박에 뒤엎었다.

소년공 출신의 아웃사이더 정치인은 결국 세번의 도전 끝에 대통령에 당선돼 5년 임기 동안 대한민국의 국정 운영을 책임지게 됐다. “독한 언어로 획책하는 분열의 정치, 이제 멈춰야 합니다. 국민을 하나로 품고 희망을 심어주는 따뜻한 손, 그게 정치입니다.” 선거 운동 기간 이 당선자가 한 말이다. 그 말에 책임져야 할 ‘이재명의 시간’이 이제 막 시작됐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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