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31일 방화로 화재가 발생한 서울지하철 5호선 열차 안 모습. 서울 영등포소방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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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아침 서울 도심을 가로 지르는 지하철 5호선 열차 안에서 방화로 화재가 발생해 승객 400여명이 지하 터널을 통해 대피하는 아찔한 사고가 벌어졌다. 불연성 내장재, 승객과 베테랑 기관사의 침착한 대처로 큰 인명 피해는 막았지만, 지하철 안전 관리에 있어 손봐야할 대목이 다시금 드러났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1일 운행 중인 5호선 열차 안에 불을 지른 혐의를 받는 60대 남성 ㄱ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할 계획이다. ㄱ씨는 전날 아침 8시43분께 여의나루역을 출발해 마포역으로 향하는 지하철에 인화물질을 뿌리고 라이터형 토치로 불을 낸 혐의(현존전차방화)를 받는다. ㄱ씨는 경찰 조사에서 “이혼소송 결과에 불만이 있어 불을 질렀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한다.
사고 목격자들과 경찰, 소방 설명 등을 들어보면 ㄱ씨가 낸 불로 승객이 밀집해 있던 지하철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최초 신고자 가운데 한명인 오창근(29)씨는 한겨레에 “(ㄱ씨가) 열차가 출발하자마자 바닥에 무언가를 뿌려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도망갔다”며 “불이 폭발하듯 올라오고 검은 연기가 가득 찼다”고 말했다. 불길은 객차 안 손잡이를 검게 그을리고, 광고판 일부까지 녹였다.
인화물질로 불을 지른 ㄱ씨 범행 방식은 192명이 숨지고 151명이 다친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와 비슷했지만, 전날 화재는 참사로까지 번지지는 않았다. 승객 22명이 연기흡입과 골절 등 경상으로 병원으로 이송됐고, 이날 오후 3시 기준 1명만 치료를 받고 있다. 병원에 이송된 승객 가운데 임산부도 있었지만, 다행히 큰 부상 없이 퇴원했다고 한다. 열차 피해도 1개 객차가 일부 소실되고 2개 객차가 그을리는 데 그쳤다.
피해 규모가 크지 않았던 배경으론 우선 지하철 내부가 불에 타지 않는 소재로 만들어진 것이 꼽힌다. 대구지하철 참사 이후 내장재 안전 문재가 부각되면서 전국 지하철 내장재는 순차적으로 불에 타지 않는 소재(불연재)로 바뀌었다. 서울 지하철도 2003년 9월부터 단계적으로 내장재를 교체했다.
기관사와 승객의 대처도 빨랐다. 승객들은 비상통화장치로 기관사에게 화재를 알리고, 출입문 비상 개방 장치로 직접 문을 열었다. 열차 바깥 선로로 뛰어내리기 어려워 하는 이들을 도와 같이 탈출했다고 한다. 열차 기관사도 28년차 베테랑으로, 사고 한달 여 전인 4월29일 영등포승무사업소에서 ‘열차 내 화재 대응 훈련’을 받은 상태였다. 김진철 마포소방서 소방행정과장은 “(소방 인력이) 열차에 진입했을 당시 기관사와 일부 승객이 전동차 내 소화기로 자체 진화를 거의 한 상태였다”고 했다.
다만 이번 화재에서도 지하철 안전 관리의 헛점이 드러났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하철 객차에는 통상 4대 정도의 폐회로티브이(CCTV)가 설치돼 있지만 이 영상은 중앙에서 지하철들을 통제하는 관제센터에 실시간으로 전송되지 않는다. 긴급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승객 신고나 기관사의 역량에만 내맡겨진 셈이다. 서울교통공사(공사) 관계자는 “수많은 객차 영상을 관제센터에서 실시간으로 모두 확인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했다.
특히 이번에 사고가 발생한 지하철 5호선은 ‘1인 승무 체제’로 사고 상황 파악과 초동 대응을 기관사 혼자 감당해야 했다. 김진환 서울교통공사노동조합 교선실장은 “기관사와 차장이 탑승하는 1∼4호선과 달리, 5∼8호선은 기관사 1인 승무 체제여서 운전 업무와 승객 안전 업무를 1명이 다 감당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서울시와 공사는 대통령 선거 당일인 3일까지 지하철 1~8호선 276개 역사와 열차, 차량기지 등을 대상으로 특별 안전 관리를 버인다. 지하철 시설물을 24시간 현장 순찰하고, 폐회로텔레비전(CCTV) 모니터링을 강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