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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호선 객차 천장이 검게 그을린 모습. [사진 영등포소방서]
지난달 31일 오전 8시43분쯤 서울 지하철 5호선 열차에서 방화로 인한 화재가 발생했다. 60대 남성 방화 피의자가 미리 준비한 2L 통에 든 인화성 물질을 바닥에 뿌리고 옷가지에 불을 붙여 일으킨 화재였다. 22년 전 대구 지하철 참사를 연상시키는 방화였지만 28년 차 베테랑 50대 기관사와 승객들의 침착한 진화 및 대피로 연기 흡입 등으로 인한 23명의 경상자 외에 대형 참사를 막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1일 경찰과 서울교통공사 영등포승무사업소 등에 따르면 기관사 A씨는 이날 오전 여의나루역에서 마포역으로 향하는 5호선 열차를 운행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네 번째 객차 승객에게서 비상통화장치로 “불이 났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1998년부터 기관사로 근무한 A씨는 당시 열차 내 유일한 승무원이었다.

운전석 화면으로 확인한 네 번째 객차는 이미 뿌연 연기로 가득 차서 내부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놀란 승객들이 일제히 다른 칸으로 대피하면서 열차 안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인 상황이었다.

지난달 31일 오전 서울 지하철 5호선 마포역~여의나루역 구간을 지나던 열차 내부에서 방화로 인한 화재가 발생하자 승객들이 지하 터널을 따라 대피하고 있다. [뉴스1]
그는 곧바로 열차를 멈춘 뒤 불이 난 네 번째 칸으로 이동했고, 벽면에 비치된 소화기를 꺼내 직접 화재를 진압했다. 일부 승객들도 소화기를 꺼내들고 가세해 불길은 크게 번지지 않고 바닥의 옷가지 등만 태운 채 진화됐다. 마침 A씨를 포함해 영등포사업소 직원 80명은 지난 4월 29일 똑같은 열차 내 방화 상황을 가정한 화재 대응훈련을 했다고 한다.

그는 연기를 마셔 구토 등 증상을 보였지만 열차를 다시 운행해 애오개역 대피선로까지 이동했다. 이후 낮 12시쯤 인근 병원으로 이송돼 4시간가량 치료를 받은 뒤 퇴원했다.

김영옥 기자
김진철 마포소방서 소방행정과장은 지난달 31일 현장 브리핑에서 “소방대원들이 진입했을 때는 기관사와 승객이 소화기로 신속하게 자체 진화해 진화 작업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승객들의 대피도 상당히 진행됐다”고도 했다.

기관사에게 화재 상황을 알린 일부 승객은 객실 의자 하단의 비상 개폐 장치를 작동했다. 이에 마포역에서 약 300m 떨어진 구간에서 승객 400여 명은 터널을 통해 인근 역사 대합실 등으로 대피했다. 당시 119에 최초 신고를 한 오창근(29)씨는 “열차 문을 열고 어르신, 여성 등이 약 1.5m 아래 있는 터널로 뛰어내리는 것을 다른 남성들과 돕고 대피했다”고 말했다.

열차 좌석 등 내부가 모두 불연재(不燃材) 자재여서 불이 번지는 것을 막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서울 지하철은 대구 지하철 참사 후인 2003년 9월부터 전동차 골격과 바닥·내장재 등을 스테인리스 등으로 교체했다. 스테인리스는 섭씨 약 800도 고온에서도 형태를 유지하고 연소하지 않아 대표적인 불연재다. 김진철 과장은 “바닥에 뿌린 인화성 물질과 옷가지 등만 불에 탔다”고 했다.

김영옥 기자
대구 지하철 참사 땐 객차 내부 의자와 통로·바닥재로 우레탄폼, 폴리우레탄 등 가연성(可燃性) 소재를 사용해 불길이 순식간에 전동차 전체로 번졌다. 객차 전체가 약 2분 만에 불길에 휩싸이며, 192명이 사망하고 151명이 다쳤다.

채진 목원대 소방안전학부 교수는 “기관사와 시민들이 힘을 합쳐 적절히 대응한 덕분에 큰 인명 피해를 막은 사례”며 “사회적 불만을 방화로 표출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 일반 시민 대상의 교육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60대 방화범 B씨에 대해 1일 오후 현존전차방화치상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앞서 B씨는 손에 그을음 등이 많이 묻은 상태에서 들것에 실려 여의나루역 역사로 나오다가 경찰에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이후 “이혼 소송 결과에 불만이 있어 지하철에 불을 질렀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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