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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법 108조 '여론조사 결과 공표 금지'
밴드왜건 효과 등 공정성 훼손 방지 취지
일각선 '공표 금지' 실효성에 의문도 제기
미국·영국 등, '공표 금지 기간' 두지 않아
지난달 23일 서울 마포구 공덕오거리에 제21대 대선 후보들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후보가 워낙 큰 격차로 이기고 있어서 '내가 굳이 투표 안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최근 여론조사를 보니 격차가 많이 줄었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투표하러 나가야 하나' 했습니다만, 이제 또 여론조사가 안 나오니까 좀 답답해요. 저 같은 유권자들은 마지막의 마지막 여론조사까지 보고 투표 참여 및 후보 선택을 결정할 텐데 여론조사 공표가 지금부터 금지돼야 하나 싶어요."

6·3 대선에서 어떤 후보를 뽑을지 아직 정하지 못했다는 직장인 정모(26)씨의 얘기다. 선거일 며칠 전부터는 여론조사 결과가 공개되지 않는, 이른바 '깜깜이 기간'에 대한 불만 토로였다. '여론조사 공표 금지'가 유권자 입장에선 '알 권리 제한'에 해당한다는 말이었다.

공직선거법 108조에 따르면 누구든지 '선거 엿새 전부터 선거일의 투표 마감 시각'까지 여론조사 결과를 공표하거나 인용해 보도할 수 없다. 이 조항은 '선거 직전 여론조사 내용 공개가 투표자의 결정에 영향을 미쳐 선거의 공정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이유로 도입됐다.

그러나 이런 취지에 동의하지 않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선거 여론조사가 과연 유권자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부터 '선거 직전까지의 여론조사가 오히려 유권자의 판단에 큰 도움이 된다'는 주장까지, 해당 의견의 근거는 다양하다. '여론조사 결과 공표 금지' 조항의 역사와 해외 사례, 실효성 논란 등을 짚어봤다.

현행 '선거 엿새 전 공표 금지', 2005년 도입

제21대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 둘째 날이었던 지난달 30일 전북 완주군 봉동읍행정복지센터에 마련된 사전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투표를 하고 있다. 완주=뉴스1


'선거 여론조사 결과 공표 금지' 조항은 꽤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처음에는 선거 여론조사 자체가 금지됐다. 이승만 정부 시절인 1958년 제정된 참의원의원선거법은 "누구든지 선거에 관하여 당선 또는 낙선을 예상하는 인기투표를 할 수 없다"고 규정했다. 이 조항은 1980년 제정된 대통령선거법에도 그대로 들어갔다. 1992년에야 여론조사가 법적으로 허용됐는데, 당시 여론조사 결과 공표는 '선거일 28일 전부터' 금지됐다.

그 이후 기존의 여러 선거 관련법을 하나로 통합한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이 1994년 제정되면서 '여론조사 결과 공표 금지 기간'도 다소 줄었다. '선거일 22일 전부터'로 정해진 것이다. 지금처럼 '선거일 6일 전부터'가 된 건 2005년이다. 이때부터 20년 동안 '엿새간 선거 깜깜이'가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선거일 직전 여론조사 결과 공표를 금지한 구체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앞서 언급한 '공정성 훼손' 측면에선 밴드왜건 효과(대세 추종 현상)와 언더독 효과(상대적 약자 응원 심리로 약체 후보 지지율이 오르는 현상)가 거론된다. 즉 선거 직전까지 여론조사 결과가 공개되면 1위 후보 혹은 열세 후보에 대한 투표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헌법재판소는 1999년 공직선거법 제108조 제1항에 대한 헌법소원에서 "(선거일 직전까지도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하면) 밴드왜건 효과와 열세자 효과(언더독 효과)가 나타나게 됨으로써 선거에 영향을 미쳐 국민 진의를 왜곡하고 선거의 공정성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며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또 "선거일에 가까워질수록 여론조사 결과의 공표가 갖는 부정적 효과는 극대화되고, 특히 불공정하거나 부정확한 여론조사 결과가 공표될 땐 선거의 공정성을 결정적으로 해칠 가능성이 높지만 이를 반박하고 시정할 수 있는 가능성은 점점 희박해진다"고 설명했다.

알 권리·사전투표 형평성... 공표 금지 폐지론 '고개'

2024년 5월 이후 제21대 대선 사전여론 조사 그래프. 해당 여론조사는 지지 후보에 대한 ‘없음/모름/응답 거절‘도 포함한 단순 집계 결과로, 이동통신 3사에서 제공받아 무작위 추출된 무선전화 가상번호와 전화 조사원의 인터뷰(CATI) 방식으로 실시됐다. 전국 유권자 약 1,000명을 대상으로 했으며, 표본 오차는 ±3.1%포인트(95% 신뢰수준)다. 한국갤럽 홈페이지 캡처


그러나 일각에선 현행 '공표 금지' 조항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여론조사 결과 공개에 따른 효과들을 실증적으로 증명하기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2008년 발표된 '선거여론조사의 결과공표금지규정에 대한 헌법적 고찰' 논문은 밴드왜건 효과와 언더독 효과에 대해 "보편적 지지를 받지 못하는 하나의 가설에 불과하고, 오히려 마타도어(근거 없는 사실을 조작해 상대방을 모략하고 혼란을 일으키는 정치적 비밀 선전) 현상을 범람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의 알 권리 제약'이라는 비판도 공표 금지 조항 폐지론에 힘을 싣는다. 특히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선거에 출마한 후보 측에선 막판 총력을 기울이다 보니 큰 이슈가 쏟아질 확률도 커진다. 지난달 27일 대선 후보 TV 토론에서 '여성 신체와 관련한 성폭력'을 구체적으로 묘사해 거센 비판을 받은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의 발언 파문이 대표적 사례다. 그러나 같은 달 28일부터 여론조사 결과 공표가 금지된 탓에 해당 논란을 반영한 여론의 구체적 평가는 알 수 없는 실정이다. 정보를 많이 얻어야 할 시점에 오히려 정보가 차단되는 것이다.

'정보의 홍수' 시대인 오늘날, 여론조사 결과 공표 금지의 의미가 그리 크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공표 금지 기간에는 공표만 금지될 뿐 여론조사 진행 자체는 가능하기에, 각 정당이나 여론조사 기관 등에선 내부적으로 그 결과를 공유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내용이 알음알음으로 퍼질 수록, '공표 금지'는 점점 무용지물이 되는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정보들이 메신저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가짜뉴스'로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공신력 있는 기관의 조사 결과를 공개하는 게 차라리 가짜뉴스 유통을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아울러 사전투표와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된다. 여론조사 결과 공표 금지 기간은 본투표일을 포함해서 총 7일인데, 사전투표가 본투표의 4, 5일 전에 실시된다는 점에서 사전투표일을 기준으로 하면 실질적인 공표 금지 기간은 딱 이틀인 셈이다. 최근 들어 사전투표율은 본투표율을 상회하거나 매우 근접한 수준을 보인다. 이처럼 많은 유권자가 사전투표를 하는 상황을 감안하면, 공정한 투표를 해치는 건 오히려 사전투표자와 본투표자 간 '여론조사 정보 격차'일 수 있다는 뜻이다.

여러 선진국, 공표 금지 조항 없거나 딱 하루만

세계여론조사협회가 2023년 발표한 각국의 '선거 깜깜이 기간'을 색깔로 표시한 세계 지도. 붉은색으로 칠해진 국가는 여론조사 공표금지 조항이 없는 곳이며, 덜 푸른색으로 칠해진 국가는 공표금지 기간이 1~6일에 해당하는 나라다. 세계여론조사협회 자료 캡처


해외의 많은 선진국은 공표 금지 기간을 아예 두지 않거나, 선거일 전날 하루 정도로 제한하고 있다. 2023년 세계여론조사협회 자료에 따르면 조사 대상 157개국 중 '공표 금지 규정'이 없는 국가 비율은 34%에 달했다. 25%는 '1~6일', 18%는 '7일 이상'을 각각 공표 금지 기간으로 정하고 있다. 예컨대 미국·영국·캐나다·일본 등은 공표 금지 기간이 없으며, 프랑스와 독일 역시 선거일 전일과 당일에 한해서만 여론조사 결과 공개를 규제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공표 금지 기간 폐지 또는 축소 움직임이 있긴 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2023년 "객관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여론조사 부작용에 대한 우려로 공표·보도 금지 기간을 규정하기보다 이를 폐지해 유권자의 판단·선택을 돕는 참고자료로서의 유용성을 인정하려는 것"이라며 공표 금지 기간을 현행 6일에서 2일로 일단 단축하는 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논의 없이 유야무야됐다. 선관위 관계자는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당시 (선거법) 개정 의견을 낸 이후, 현재 내부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건 따로 없다"고 밝혔다

"공표 금지 조항 폐지돼야"... '유지' 입장도

가짜뉴스로 인해 혼란스러워하는 시민들을 형상화한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전문가들은 여론 조사 결과 공표 금지 조항의 실효성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김은경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오늘날 선거 후보에 대한 많은 정보가 쏟아지는 시대에서, 오히려 공신력 있는 여론조사 데이터를 공개하는 것이 유권자에게 신뢰받는 선거 정보를 제공하는 기능을 할 수 있다"며 해당 조항 폐지가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요즘은 여론조사를 진행하려면 여론조사심의위원회에 등록한 뒤 엄격한 절차를 거친다. 즉 여론조사의 공신력이 과거와 달리 어느 정도 보증되기에, 선거를 앞두고 편향적인 여론조사가 나올 가능성이 적다"고 전제했다. 이어 "아직 어떤 후보를 찍을지 결정하지 못한 유권자들은 여론조사 결과를 끝까지 보고 책임 있는 선택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반대로 여론조사 결과 공표 금지를 유지하는 게 옳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공표 금지를 해제하면 선거가 과열돼 대중의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다"며 "현행 규정을 유지하는 데 큰 문제가 없다면, 또 이를 폐지해 얻을 실익이 분명하지 않으면 굳이 공표 금지 조항을 없앨 필요가 있나 싶다"고 밝혔다. 박상병 정치평론가 역시 "공표 금지 기간이 사라지면 수많은 여론조사가 선거 막판에 난립해 정치적으로 편향된 결과를 내놓고, 선거가 끝난 뒤엔 문을 닫는 이른바 '떴다방' 식으로 한몫 챙기는 악질 여론조사 기관이 늘어날 것"이라며 "그 결과 유권자들은 선거에서 잘못된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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