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터연합뉴스
“포트나이트가 앱 스토어에 돌아왔습니다!”
지난 21일(현지시간), 미국 게임사 에픽게임즈의 대표 게임 ‘포트나이트’가 공식 엑스 계정에 낭보를 전해왔습니다. 애플의 애플리케이션(앱) 마켓인 앱 스토어에 복귀한다는 소식이었죠. 2020년 앱 스토어에서 퇴출당한 이후 무려 5년 만입니다. 전 세계에 이용자 1억명을 두고 있는 인기 게임이 어쩌다가 앱 스토어에서 쫓겨났다 돌아오게 됐을까요.
이야기는 5년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2020년 8월 에픽게임즈는 포트나이트의 모바일 버전에 자체 결제 시스템을 추가했습니다. 앱 마켓에 내야 하는 수수료를 피하고 이용자에게 더 싼 가격에 게임을 제공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애플과 구글의 앱 마켓에서 상품이나 서비스를 사고팔 때는 이들이 구축한 자사 결제 시스템을 이용해야 합니다. 결제 금액의 30%는 수수료로 떼어가고요. 이용자가 1000원짜리 앱을 사면 이 가운데 300원을 앱 마켓 운영자가 가져가는 셈이죠.
글로벌 앱 마켓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애플과 구글은 모두 인앱 결제를 사실상 강제하며 매년 수백억달러의 수익을 거두어 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에픽게임즈가 반기를 들었다 양대 앱 마켓에서 쫓겨난 것이죠. 에픽게임즈는 즉각 항의했고 양사를 상대로 반독점법 위반 소를 제기했습니다. 긴 싸움은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에픽게임즈는 앱 마켓 인앱 결제 강제에 저항하는 의미로 ‘프리 포트나이트’ 캠페인을 전개했다. 에픽게임즈 홈페이지 갈무리
5년의 법정 다툼은 말 그대로 진흙탕 싸움이었습니다. 2021년 1심 법원은 애플이 독점 금지법을 위반하지 않았다며 애플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다만 애플이 앱 개발사들에 외부 결제를 허용하라고 명령했습니다. 2023년 1월 대법원이 양측의 상고를 모두 기각하며 재판은 그대로 마무리됐고, 애플은 이후 제3자 결제를 허용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27%의 수수료를 매기고 외부 결제를 불편하게 하는 등 사실상 인앱 결제를 그대로 유지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었죠. 에픽게임즈가 다시 문제를 제기했고, 지난달 30일 법원은 애플이 법원의 명령을 고의로 위반했다며 시정을 명령했습니다. 포트나이트가 앱 스토어에 복귀하게 된 데에는 이 명령이 결정적이었습니다.
법정 밖에서는 여론전이 이어졌습니다. 에픽게임즈는 인앱 결제 강제에 저항하는 의미로 ‘#프리포트나이트(FreeFortnite)’ 캠페인을 전개했습니다. 에픽게임즈는 다른 업체 대신 총대를 메고 양대 빅테크에 맞선 ‘투사’로 떠올랐고, 애플과 구글의 인앱 결제 강제 행태를 수면 위로 드러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두 회사는 전 세계 각국에서 인앱 결제 강제가 부당하다는 여론에 직면했고요. 애플과 구글 모두 에픽게임즈와 관련 소송을 벌이고 있는 중이니 사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긴 합니다만, 상징적인 사건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골리앗에 맞서려는 K-게임들
한국도 사정이 다르지 않습니다. 국내의 많은 사업자도 애플과 구글의 플랫폼에 의존하고 있으니까요. 에픽게임즈가 반기를 든 이듬해인 2021년 세계 최초로 ‘인앱 결제 강제 금지법’(개정 전기통신사업법)을 도입했지만 제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구글·애플이 외부 결제를 허용하면서 기존 수수료에서 단 4%포인트 낮춘 26%를 제3자 결제 수수료로 책정했거든요. 전자결제대행(PG)사에 수수료를 주고 나면 인앱 결제보다 나을 게 없도록 만든 거죠. 해당 법안의 실효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은 것도 그래서입니다.
최근에는 국내에서도 두 회사에 맞서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중견 게임사 A사가 지난 23일 애플 본사를 상대로 미국 캘리포니아주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것입니다. A사는 애플의 과도한 인앱 결제 수수료 부과를 금지할 것과 함께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이 회사는 지난 10년간 매출 500억원 가운데 140억원을 구글과 애플에 수수료로 지급했고, 이로 인해 회사가 존폐의 기로에 서 있다고 말합니다. 구글, 애플 인앱 결제에 대해 법적 대응에 나선 것은 국내 게임업계에서는 최초의 사례라고 합니다. A사는 조만간 같은 취지의 소송을 구글에도 제기할 방침으로 알려졌습니다.
골리앗과의 싸움에 나선 것은 A사뿐 아닙니다. 중소게임사 100여곳은 구글과 애플의 인앱 결제 수수료를 돌려받기 위한 집단 대응을 준비 중입니다. 법정 싸움을 대리하는 위더피플 인앱결제 피해 공동대응 사무국에 따르면, 이들은 집단 조정을 통해 양사에 지급한 30% 수수료 중 20% 이상을 환수해달라고 요구할 계획입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최민희 의원과 한국게임개발자협회 등 관련 단체 회원들이 지난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구글과 애플의 인앱결제 강제 방지를 위한 ‘앱 마켓사업자 영업보복 금지법’ 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치권도 움직이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지난 27일 전기통신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습니다. 일명 ‘앱 마켓 사업자 영업 보복 금지법’이라고도 불리는 이 법안은 글로벌 앱 마켓 사업자의 영업 보복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앱 마켓에 진출하려는 사업자에게 앱 심사 지연이나 삭제, 검색 순위 조정 등 불이익을 주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죠.
법안이 통과되면 앱 마켓 사업자가 영업 보복을 하지 않았다는 점을 스스로 입증해야 합니다. 법을 어길 경우 최대 3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해야 합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보복 행위에 대한 실태조사와 시정명령도 내릴 수 있게 됩니다. 사실상 구글과 애플의 갑질을 막고 인앱 결제 강제 금지법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보안 입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위기의 빅테크, 철옹성은 무너질까?
구글과 애플, 양대 빅테크는 현재 여러 건의 반독점 소송에 직면해 있습니다. 미 법무부는 애플이 스마트폰 시장을 독점하고 경쟁을 저해한다며 고소했고 구글 역시 검색 시장 독점과 관련해 소송 중입니다. ‘세기의 소송’이라 불리는 이 재판들은 그 결과에 따라 향후 IT업계의 지형을 완전히 바꿔놓을 수도 있습니다.
궁지에 몰린 탓일까요. 최근 이들의 인앱 결제 관련 정책에는 조금씩 변화도 관찰되고 있습니다. 애플은 최근 미국 내 이용자가 스포티파이 안에서 오디오북을 구매할 수 있게 업데이트했습니다. 지난해에는 유럽 내 인앱 결제 수수료를 17%로 낮췄고요. 유럽연합(EU)이 빅테크의 시장 지배력을 제한하기 위해 도입한 디지털시장법(DMA) 덕분입니다.
애플과 구글이 쌓아온 철옹성은 무너지게 될까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두 회사가 순순히 물러서진 않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입니다. 한 번 물러나면 어디까지 물러나야 할지 모르는 것이 냉정한 비즈니스의 세계니까요. 두 회사가 법정 다툼을 통해 어떤 결말을 맞을지 두고 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