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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료 감면 아닌 ‘전액 면제’ 근거 제시
1·2심과 달리 민법 537조 위험부담 법리 적용
[법알못 판례 읽기]


2020년 3월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김포국제공항 국제선 청사 내 롯데면세점이 무기한 휴점에 돌입한 모습. 사진=한국경제신문


코로나19 팬데믹이 불러온 전례 없는 상황이 임대차 법리에 새로운 해석을 가져왔다. 호텔롯데와 부산롯데호텔이 한국공항공사를 상대로 제기한 임대료 반환청구 소송에서 대법원이 내린 판결은 ‘감염병 확산에 따른 정부 조치’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임대인과 임차인의 위험 부담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에 대한 중요한 기준을 제시했다.

1·2심이 기존 법리의 틀 안에서 제한적 구제에 머물렀다면, 대법원은 코로나19 상황을 “경제 사정의 급격한 변동”으로 규정하고 계속적 계약에서의 일시적 이행불능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해 향후 유사 분쟁 해결에 중요한 지침을 제공했다.

임대료 전액 면제 vs 일부 감면


사건의 배경은 2020년 4월 6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국토교통부가 국제선 기능을 인천국제공항으로 일원화하면서 김포국제공항과 김해국제공항의 국제선 청사가 사실상 폐쇄됐다.

2016년부터 각각 이들 공항에서 면세점을 운영해온 호텔롯데와 부산롯데호텔은 하루아침에 영업이 불가능해졌다. 당시 두 회사의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김포공항 면세점의 경우 2020년 3월 매출이 전년 동월 대비 96.1% 급감했고 김해공항은 96.4% 감소했다. 4월부터 8월까지는 아예 매출이 ‘0’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공항공사는 국토부의 지침에 따라 일부 임대료 감면 조치를 시행했다. 2020년 3~8월 임대료를 50% 감면하고, 9월부터는 전액 면제하는 임시 조치였다.

그러나 두 회사는 “4월부터는 면세점 운영이 사실상 불가능했으므로 임대료 전액을 면제해야 한다”며 차임감액청구권을 주장했지만 한국공항공사가 이를 거절하자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법무법인 율촌의 송영은·이승호·이헌영 변호사가 호텔롯데와 부산롯데호텔을 대리해 최종 승소를 이끌었다.

1·2심 법원의 제한적 접근


1·2심 법원은 차임감액청구권에 의한 부분적 구제에 머물렀다. 1심은 차임감액청구의 효력이 2020년 4월부터 발생한다고 보고 8월까지 임대료의 70% 감액을 명령했고 2심은 이를 한 달 앞선 3월부터 인정해 3월분은 50%, 4~8월분은 70% 감액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봤다. 하지만 임대료 전액 면제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특히 2심 법원은 면세점 운영사들의 주장을 상당 부분 받아들이면서도 신중한 접근을 보였다. 재판부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상황은 민법 제628조 등에서 정한 ‘경제사정의 변경’으로 봄이 타당하다”고 인정했다.

또한 “이 사건 각 임대차계약에서 정한 고정임대료는 매출이 전혀 발생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상당하지 않게 됐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위험 배분에 있어서는 균형적 시각을 유지했다.

재판부는 “면세점업은 국제정세, 주변국과의 관계, 국제적인 감염병 확산 등 대외환경 및 사회·경제적 상황에 따른 여행수요에 많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원고들로서도 위와 같은 요인을 모두 고려해 공개입찰을 통해 이 사건 각 임대차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보이므로 감염병 확산 위험에 따른 국제선 일원화조치 및 그로 인한 손실을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시했다.

민법 제537조 위험부담 법리 적용에 대해서는 소극적 입장을 보였다. 재판부는 “위험부담의 법리가 적용되기 위해서는 임대차계약상 피고의 채무가 이행불능의 상태에 이르러야 한다. 채무의 이행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목적물이 소멸하는 것과 같은 절대적·물리적 불가능의 경우만이 아니라 사회생활상 경험칙이나 거래상의 관념에 비춰 볼 때 채권자가 채무자의 이행을 기대할 수 없는 경우도 포함하나, 이는 채무의 이행이 종국적·확정적으로 불가능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어 “이 사건에서 원고들이 주장하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국토교통부의 국제선 일원화 조치는 한시적·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므로 이로 인해 이 사건 각 임대차계약에 따른 피고의 임대목적물 제공 의무가 종국적으로 이행불능의 상태에 이르렀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한 “일시적인 이행불능도 종국적 이행불능과 동등하게 평가해야 한다거나 종국적 이행불능에 상응하는 법적 효과를 부여해야 한다고 볼 만한 명시적인 법적 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제한적 해석을 고수했다.

나아가 “쌍무계약에서 당사자 쌍방의 귀책사유 없이 채무가 이행불능된 경우 채무자가 급부의무를 면함과 더불어 반대급부도 청구하지 못한다고 한 것은 이행불능으로 인해 계약관계가 소멸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며 계약이 유효하게 존속하는 상황에서는 민법 제537조를 적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대법원의 획기적 판단


대법원 제2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지난 5월 1일 원심 판결을 파기하며 전혀 다른 법리를 제시했다(2024다293580). 핵심은 ‘계속적 계약에서의 일시적 이행불능도 해당 기간에 대해서는 종국적 이행불능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새로운 해석이었다.

① 임대인의 사용·수익 제공 의무


대법원은 우선 이 사건 임대차계약의 특수성을 강조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각 임대차계약의 내용에 따라 임대인인 피고는 임차인인 원고들이 이 사건 각 임대차목적물을 면세점 용도로 사용·수익할 수 있는 상태로 유지시켜 줄 의무가 있다”고 명시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단순한 공간 제공을 넘어선 임대인의 역할이다. 재판부는 “피고는 임대인으로서 단순히 면세점 영업을 위한 물리적 공간을 제공하는 데에서 나아가 원고들의 면세점 운영에도 관여했는 바 이는 통상적인 임대차계약과 다른 특별한 사정”이라고 설명했다.

② 종국적 이행불능의 새로운 해석


대법원은 이행불능에 대해 새롭게 접근했다. 재판부는 “기간을 정한 부동산의 임대차계약 등 계속적 계약에서 어떠한 사유로 일정 기간 채무 이행이 불가능하게 된 경우 계약의 목적과 유형, 급부의 내용 및 특성, 이행의 형태와 방법 등에 따라 채권자가 채무자의 이행 실현을 기대할 수 없다면, 해당 기간의 급부불능을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종국적인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이어 “해당 기간의 급부불능이 종국적 이행불능에 해당하는 이상 계약의 존속 여부는 민법 제537조의 적용 여부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며 계약 존속과 이행불능을 분리해서 판단할 수 있음을 명확히 했다.

③ 당사자 쌍방의 무책임 사유


대법원은 국제선 청사 폐쇄가 “당사자 쌍방의 책임 없는 사유”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임대인인 피고가 이 사건 각 임대차목적물을 사용·수익할 수 있는 상태로 제공할 의무를 이행할 수 없게 된 이유는 국토교통부의 국제선 청사 일원화 조치에 따라 김포공항 및 김해공항의 각 국제선 청사가 폐쇄됐기 때문”이라며 “이는 당사자 쌍방의 책임 없는 사유”라고 명시했다.

[돋보기]

팬데믹 시대의 새로운 임대차 법리


이번 판결은 코로나19와 같은 전례 없는 상황에서 임대차 당사자 간의 위험 배분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특히 정부의 방역 조치로 인한 영업 제한이 ‘불가항력’에 해당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정부의 공익적 조치로 인한 피해를 임차인이 일방적으로 부담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대법원의 판단은 팬데믹이라는 초유의 상황에서 현실적이고 형평성 있는 시각으로 평가된다.

재판부는 “감염병 확산에 따른 공항 운영 축소와 매출 급감은 일반적인 영업 위험으로 보기 어렵고 경제 사정의 급격한 변동에 해당해 임대료 감액이 가능하다”고 설시하며 코로나19 상황의 특수성을 법적으로 인정했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계속적 계약에서 일정 기간 급부 이행이 불가능한 경우에도 해당 기간에 대해서는 종국적 이행불능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새로운 해석을 제시했다. 이는 향후 유사한 사건에서 중요한 선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판결은 공항, 백화점, 쇼핑몰 등 상업시설 임대차계약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특히 정부의 방역 조치나 재해로 인해 영업이 제한되는 경우 임차인의 구제 방안이 확대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허란 한국경제 기자 [email protected]

한경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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