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5호선에서 발생한 화재로 시민들이 지하철 터널을 통해 대피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지하철 5호선 열차 안에서 한 남성의 불을 질러 승객들이 지하 터널로 대피하는 사고가 벌어졌다. 시민들의 침착한 대응으로 큰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당시 지하철에 400명 넘는 승객이 탑승하고 있었던만큼 자칫 서울 도심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다. 방화 용의자는 사고 발생 1시간여 뒤 경찰에 현행범 체포됐다.
경찰과 소방, 서울교통공사 등의 설명을 들어보면, 31일 아침 8시43분께 마포역 방향으로 향하던 지하철 5호선이 여의나루역을 출발해 300여m를 지난 지점에서 객차 내 화재가 발생했다. 60대로 보이는 한 남성이 열차 안에 인화물질을 뿌리고 라이터형 토치로 불을 냈다고 한다. 김진철 마포소방서 소방행정과장은 이날 현장 브리핑에서 “인화성 물질을 뿌린 뒤 옷가지에 불을 붙인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화재가 발생한 객차에 있었던 한 승객은 “남색 상의와 청바지를 입은 남성이 열차가 출발한지 30초 정도가 지나서 노란색 액체를 뿌리기 시작했다”며 “승객들이 놀라 다른 객차로 이동하거나 불을 끄려 시도했다”고 전했다.
이날 화재로 열차에 타고 있던 승객 400여명이 열차 문을 열고 지하철 터널을 통해 긴급 대피했다. 이 가운데 21명은 연기를 흡입하거나 대피 과정에서 발목이 골절되는 등 경상을 입어 병원으로 옮겨졌다. 연기흡입 등으로 통증을 호소한 130명은 현장에서 처치를 받았다.
31일 서울 지하철 5호선 여의나루역~마포역에서 열차 내 화재가 발생한 뒤 소방과 경찰이 현장을 통제하고 있다. 이나영 기자
소방 당국은 화재 신고를 받고 소방차 47대와 인력 230명을 동원해 진화에 나섰다. 소방 진입 당시 이미 승객과 기관사가 소화기로 불을 상당 부분 자체진화한 상태였다고 한다. 김진철 과장은 “열차에 진입했을 당시 상당 수 승객은 대피를 하고 있었고 기관사와 일부 승객이 전동차 내 소화기로 자체 진화를 했다”며 “열차가 불연재로 돼있었고 열차 내에 가연물(불에 탈만한 물건)도 많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승객들은 대피 과정에서도 열차 문을 강제로 개방한 뒤 2~3미터 높이의 열차에서 선로로 뛰어내리기 어려운 이들을 서로 돕는 등 침착하게 대응했다고 한다.
경찰은 이날 아침 9시45분께 방화 용의자를 여의나루역에서 현행범 체포했다. 경찰은 이 남성을 상대로 범행 이유와 경위를 케묻고 있다.
소방은 이날 9시14분께 초진(큰 불길을 잡음)에 이어 10시24분께 완진을 선언했다. 화재 발생 뒤 중단됐던 열차 운행도 앞서 오전 10시6분께 재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