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유튜브 딴지방송국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출연한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 사진 유튜브 캡처
“본인의 인생에서 갈 수 없는 대통령 후보의 배우자라는 자리에 있어 제정신이 아니다.”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지난 28일 한 얘기다. 그가 '제정신이 아니다'고 한 사람은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 아내인 설난영 여사다.
남편인 김문수 후보는 30일 오전 페이스북에 “여성, 노동자, 학력 비하 투표로 심판해달라. 인생에서 갈 수 있는 자리가 따로 있고, 갈 수 없는 자리가 따로 있느냐. 설난영이 김문수이고, 김문수가 설난영”이라고 썼다. “설씨는 25세에 세진전자노조위원장으로 선출될 만큼 똑 부러진 여성이었다. 제가 2년 반의 감옥 생활을 하는 동안 묵묵히 곁을 지키며 희망과 용기를 주던 강인한 아내였다”고 덧붙였다.
이날 오후 제천 유세 뒤 기자들을 만난 김 후보는 “유씨는 저를 모르지 않는다. 유씨 여동생이 1986년 5·3 인천사태 때 저와 함께 구속된 공범”이라며 “저와 제 아내도 너무 잘 안다. 제정신이 아닌 정치다. 참 슬프다”고 말했다. 김 후보는 이날 '제 아내가 자랑스럽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유세를 펼쳤다.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 후보가 30일 충북 제천 문화의거리에서 유세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도 같은 날 유 전 이사장을 겨냥해 “학벌주의와 여성 비하에 가까운 저급한 언어로 상대를 공격하는 모습을 보며 정치적 품격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묻게 된다”는 글을 SNS에 올렸다.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도 “노동자들을 무지한 존재, 열등한 존재로 바라보고 있음을 느낄 수밖에 없다. 노동자에 대한 멸시와 엘리트주의”라고 비판했다.
이번 대선 국면에서 세 후보가 한목소리를 낸 건 처음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묵묵부답이었다. 대신 강훈식 민주당 선대위 종합상황실장이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관련 질문을 받고 “선대위는 물론 모든 민주 진보 스피커가 발언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 전 이사장은 이틀 전 김어준씨의 유튜브 방송에서 저런 얘길 했다. 그는 설 여사가 이재명 후보의 아내인 김혜경 여사의 법인카드 유용 의혹을 비판한 것에 대해 “설씨가 왜 저러는지 이해할 수 있다”며 입을 열었다. 이어 “김 후보는 학출 노동자, 대학생 출신 노동자로서 찐 노동자하고 혼인한 것이다. 설씨가 그런 남자와 혼인을 통해 ‘내가 좀 더 고양됐다’고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김 후보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다니다 노조에 들어갔고, 설 여사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노동 운동에 투신했는데, 두 사람을 ‘대출 노동자’와 ‘찐 노동자’로 차등화한 것이다.
유 전 이사장은 “국회의원 사모님이 되고, 경기도지사 사모님이 되면서 남편을 더욱 우러러보게 됐을 것”이라며 “원래 본인이 감당할 수 없는 자리에 온 것이다. 유력 정당의 대통령 후보 배우자라는 자리가 설난영씨의 인생에선 갈 수 없는 자리다. 그래서 제정신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 후보 부인 설난영 여사가 29일 경기도 성남 모란민속 5일장을 방문해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 전 이사장의 발언에 여성계와 노동계에서도 여성과 학력 비하, 노동자 멸시라는 비판이 잇달았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전날 논평에서 “여성과 노동자에 대한 멸시와 비하가 웃음거리인가. 통렬히 사과하라”고 했고, 민주노총도 30일 논평을 내고 “성별, 직업, 학력에 따라 신분과 개인의 격이 정해진다는 전제를 포함한 이 발언은 광범위한 여성, 노동자, 시민에 대한 비하 발언”이라고 비난했다. 국민의힘은 이날 “유씨의 발언은 김 후보와 배우자를 조롱하고 모욕하는 비방 목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며 “공직선거법 위반(후보자비방죄)으로 서울경찰청에 고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역대 선거 때마다 실언의 파장은 컸다. 2012년 19대 총선 당시 나꼼수 출신인 김용민씨의 성폭력적 발언, 2018년 지방선거 당시 정태옥 당시 자유한국당 의원의 ‘이부망천(이혼하면 부천, 망하면 인천’) 발언이 대표적이다. 2004년 17대 총선 막판에는 당시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이 “60대 이상 70대는 투표 안 해도 괜찮아요”라고 해 노년층의 분노를 샀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지금 이재명 후보가 가장 조심해야 하는 것이 ‘오만 프레임’”이라며 “유씨의 발언이 가장 민감한 그 지점을 건드렸고, 추격하는 김문수 후보가 파고드는 양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