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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투표 나선 발달장애인들 소중한 한표 행사하기까지
투표보조인 동행 불허에 좌절…봉투 밀봉 어려워 안절부절
"보조인·그림투표 지원해야"…"선거공보물 너무 어려워"
"일반인 30초 걸리는 투표, 발달장애인은 한두시간 걸릴 수도"


투표 보조 불가 설명 듣는 발달장애인들
(서울=연합뉴스) 서대연 기자 = 지난 29일 서울 종로구 사직동주민센터에 마련된 사전투표소에서 참정권 보장 요구 기자회견을 마친 발달장애인들이 사전투표관리관에게 투표 보조인 동행이 불가능하다는 내용의 설명을 듣고 있다. 2025.5.30 [email protected]


(서울=연합뉴스) 이승연 최윤선 기자 = "소근육 발달 지연이나 손 떨림이 있어 혼자 기표할 수 없는 상태일 경우에만 (투표)보조인 동행이 가능합니다."

제21대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지난 29일 서울 종로구 사직동 주민센터 투표소에서 한 투표사무원이 발달장애인 박지은(32) 씨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이 사무원은 기표 용구를 가져와 투표소를 찾은 발달장애인 7명에게 손 떨림있는지 확인했고, 증상이 확인된 1명만 보조인 동행을 허가했다. 박씨를 비롯한 6명의 발달장애인들은 혼자 기표가 가능한 것으로 판단해 동행을 불허했다.

다행히 박씨는 혼자 꿋꿋하게 투표를 마쳤으나, 투표소를 빠져나와 끝내 울음을 터트렸다. 서럽게 눈물을 흘리던 박씨는 "참정권을 제대로 보장받고 싶다"고 말했다.

박씨와 함께 보조인 동행을 거절당한 다른 발달장애인 5명은 투표사무원의 조치에 반발해 "다른 곳에서 투표하겠다"며 현장을 떠났다.

"투표는 어려워요"
(서울=연합뉴스) 이승연 기자 = 발달장애인 장하훈(30) 씨가 지난 29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주민센터 투표소 앞에서 멋쩍은 웃음을 짓고 있다. 2025.5.30 [email protected]


'투표 보조인'이란 혼자 투표하기 힘든 유권자가 투표권을 원활하게 행사할 수 있게끔 돕는 사람이다. 가족 혹은 유권자가 지명한 2명의 보조인이 동반할 수 있다.

다만 현행 공직선거법상 투표 보조 대상은 시각·신체 장애인에 한정돼있다. 이에 따라 발달장애인은 신체적으로 기표에 어려움이 있다고 보이지 않으면 보조인 동행이 거절된다.

이날 서울 마포구 공덕동 주민센터에 마련된 투표소에서는 발달장애인 장하훈(30) 씨가 투표보조를 요청했다.

투표사무원들의 논의 시간이 길어지자, 뒤에 줄 서 있던 시민들 사이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시각장애인인가 봐"라고 말하는 소리도 들렸다. 힐긋힐긋 쳐다보는 시민들의 시선에 장씨의 안색이 굳어졌다. 투표 경험이 많은 편인데도 장씨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논의 끝에 이 투표소는 장씨에 투표보조인의 동반을 허가했다. 이에 기자가 동행했으나 기표함 바깥에 그저 서 있는 수준에 그쳤다.

기표함 안으로 혼자 들어간 장씨는 기표 후 투표용지를 봉투에 넣느라 애를 먹었다. 봉투 입구가 투표용지에 비해 다소 좁은 탓이었다. 발달장애인은 미세한 손 근육을 사용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있다.

투표용지가 봉투에 들어가지 않자 당황하던 장씨는 "아, 깜빡했다"라며 용지를 반으로 접어 봉투에 넣는 것을 생각해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봉투 덮개를 밀봉하는 스티커를 떼지 않은 것이다.

기표함을 빠져나온 그에게 투표사무원이 "봉투를 밀봉해주셔야 한다"며 스티커를 떼어 건네줬고, 장씨는 손으로 꾹꾹 봉투 덮개를 눌러 닫았다.

투표소 밖으로 나온 장씨는 이마를 짚으며 "투표용지가 잘 접히지 않았고, 스티커가 있는 줄 보지 못했다"고 멋쩍게 웃었다.

소중한 권리행사
(서울=연합뉴스) 김도훈 기자 = 제21대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지난 29일 서울 강남구 역삼1동주민센터에서 한 유권자가 투표함에 투표용지를 넣고 있다. 2025.5.30 [email protected]


장씨의 근로지원인 송재식 씨는 발달장애인의 원활한 참정권 행사를 위해 투표 보조인과 그림투표 보조용구가 필요하며, 보조인이 함께 기표함 안에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림투표 보조용구는 정당의 로고나 후보자의 사진 등을 이용해 투표용지에 기재된 내용의 이해를 돕는 기구를 말한다.

장씨의 원활한 근로생활을 지원하는 송씨는 "발달장애인은 투표하는 순서, 투표용지에 적힌 것들을 이해하는 데에 시간이 더 필요하다"며 "지방선거처럼 여러 후보와 정당이 출마할 경우 이들의 이름, 얼굴, 기호를 전혀 매치하지 못하는 만큼 옆에서 보조원이 설명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아까와 같이 봉투 덮개를 못 붙이는 경우에도 보조인의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라고 설명했다.

빨리 기표하라고 재촉하거나 눈치를 주는 등 투표소 내 경직된 분위기도 발달장애인들이 겪는 어려움 중 하나다. 부담감, 무서움을 느끼고 중간에 투표를 포기하는 일도 발생한다.

송씨는 "우리에겐 30초밖에 걸리지 않는 투표가 발달장애인들에겐 한 시간, 두 시간이 걸릴 수 있는 일"이라며 "투표사무원 혹은 시민들의 작은 불만이 발달장애인에겐 폭력으로 느껴질 수 있다. 서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발달장애인들의 외침
(서울=연합뉴스) 이정훈 기자 = 지난해 10월 29일 서울 서초구 법원 삼거리에서 열린 발달장애인 투표용지 보장 차별구제청구소송 탄원서 전시 및 제출 기자회견에서 발달장애인들이 그림투표 용지를 통한 참정권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 2025.5.30 [email protected]


어려운 한자어가 많은 선거공보물도 장벽이다.

대부분 정당은 지난 27∼28일에야 뒤늦게 '이해하기 쉬운 선거공보물'을 제작해 배포했으며, 그마저도 장애인 정책 등 일부 분야를 담는 데에 그쳤다.

이승헌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은 "사전투표일 임박해 공보물이 배포되는 바람에 장애인들이 이를 익히고 공부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한국피플퍼스트 등 장애인단체는 이날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투표보조인, 이해하기 쉬운 공보물, 그림투표 보조용구 지원 등을 촉구했다.

김현아 피플퍼스트서울센터 활동가는 "집에 도착한 선거공보물을 읽어보셨나. 저에겐 너무 어려웠지만 궁금해서 애써 읽었다"며 "발달장애인에겐 쉬운 설명과 그림이 필요하다. 우리도 어떤 후보가 출마했고, 어떤 공약을 냈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장애인단체들은 지난 대선을 앞둔 2022년 1월 장애인의 투표 참여를 위해 그림 투표용지와 이해가 쉬운 형태의 선거공보물을 제공하라고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1심 법원은 입법이 선행돼야 한다며 소송을 각하했으나, 서울고법은 이를 뒤집어 그림투표 보조용구를 제공하라고 판결했다.

이 사무국장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법원의 판결을 존중해 발달장애인도 투표를 할 수 있게끔 지원해달라"고 말했다.

참정권 보장 요구하는 발달장애인들
(서울=연합뉴스) 서대연 기자 = 제21대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지난 29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발달장애인 참정권 보장 요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들은 발달장애인의 참정권 보장을 위해 투표보조 보장, 이해하기 쉬운 자료 제작, 그림투표보조용구 지원, 모의투표 실시 등을 촉구했다. 2025.5.30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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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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