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소송상황 분석’ 보고서
뇌심혈관계 질병, 진폐증 등 사건 전반 패소율 증가
“판정위원회별 승인율 편차 심하고
산재 인정 보수적인데다 합리성·일관성 부족”
뇌심혈관계 질병, 진폐증 등 사건 전반 패소율 증가
“판정위원회별 승인율 편차 심하고
산재 인정 보수적인데다 합리성·일관성 부족”
게티이미지뱅크
올해 49살 김영학(가명)씨는 파킨슨병 환자다. 사지를 자유롭게 쓸 수 없고 말까지 어눌해져 직장생활은 언감생심이다. 그나마 지난 1월부터 근로복지공단에서 주는 요양급여를 받아 다소 생활은 나아졌지만, 여기까지 닿는 동안 가시밭길을 걸어야 했다.
김씨에게 파킨슨병 증세가 시작된 건 2007년 6월께였다. 갑자기 팔 떨림 증상이 나타난 데 이어 다리까지 조금씩 불편해졌다. 급기야 2009년 파킨슨병을 진단받았다. 이유는 몇년 전 충남 천안에 있는 중소기업의 엘이디(LED) 공장에서 3년여 동안 엔지니어로 일한 것 빼곤 설명이 되지 않았다. 그는 100도가 넘는 고온에서 제품 열 테스트를 하고 배기 장치도 켜지 않은 채 마스크 한장 쓴 채 화학물질이 가득한 용액에 반도체 웨이퍼를 세척하는 업무를 했다. 김씨는 2017년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를 인정해달라며 요양급여 신청을 냈다. 2년 뒤 돌아온 답은 ‘불승인’. 소송을 냈다. 서울행정법원은 업무 연관성이 인정된다며 산재를 인정하라고 판결했으나 공단은 항소했다. 서울고법도 김씨 손을 들어줬지만, 공단은 다시 대법원에 상고했다. 마침내 지난해 12월 대법원이 상고 기각하며 기나긴 소송이 막을 내렸다. 공단에 산재를 신청한 지 7년 만이었다.
김씨는 28일 한겨레와 한 서면 인터뷰에서 “공단이 계속 상소하는 동안 생활고와 정신적인 고통에 너무 힘들었고 가족의 희생이 너무 컸다”며 “공단이 산재 노동자 편에 서서 가족의 일이라는 마음으로 일을 처리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씨 사례처럼 산재 인정에 인색한 근로복지공단이 법원까지 가서 패소하는 비율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겨레가 이날 입수한 근로복지공단의 ‘2024년도 소송 상황 분석’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확정된 공단의 산재 처분 관련 행정소송 패소율은 18.7%(2171건 중 406건)로 2023년 13.6%에 견줘 5.1%포인트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단이 산재를 인정하지 않아 산재 노동자가 행정소송을 내는 등 법정까지 가서 산재가 인정된 경우가 그만큼 늘었단 얘기다. 공단의 행정소송 패소율은 2020년 13.1%에서 2021년 12.3%, 2022년 14.3%, 2023년 13.6%에서 2024년에 10%대 후반까지 치솟았다.
공단의 전체 행정소송 가운데 최다인 72.7%를 차지하는 업무상 질병의 경우, 지난해 패소율은 17.4%로 1년 전보다 4.7%포인트 늘었다. 뇌심혈관계 질병, 진폐증, 소음성 난청 등 사건 전반의 패소율이 증가했다. 특히 뇌심혈관계 질병의 패소율은 1년 만에 3.2%포인트 늘었는데, 이는 공단의 관련 산재 인정률이 2022년 34.5%에서 2023년 33.2%, 2024년 31.5%로 계속 낮아지는 추세에 대한 반증으로 해석된다.
권동희 노무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는 “공단 패소율이 커지는 가장 큰 이유는 판정위원회별 승인율 편차가 심하고, 공단의 산재 인정 기준이 법원에 비해 보수적인데다 법률적 합리성과 일관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산재 인정 기준을 합리화하고, 항소 기간 공단이 피해 노동자에게 지연 이자를 무는 제도 도입으로 실질적인 보상을 확대하는 등의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