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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손된 대선 벽보 보수 현장
서울 종로구의 선거벽보를 관리하는 전시·홍보물 시공업체 ㅎ사의 이석형(46) 실장이 황교안 무소속 후보의 선거 벽보 보수 작업을 진행 중이다. 김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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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경찰 신고 감이네.”

지난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동의 한 주택가. 훼손된 대선 후보 벽보 앞에서 전시·홍보물 시공 업체 ㅎ사의 이석형(46) 실장이 말했다. 칼로 그었는지 황교안 무소속 후보의 벽보에는 15㎝ 길이로 4개의 세로선이 나 있었다. 이 실장은 벽보를 덮고 있던 비닐을 절개해 훼손본을 꺼낸 뒤 새 벽보로 갈아 끼웠다. ㅎ사는 서울 종로구에서 선거 벽보 제작과 부착, 보수 업무를 맡고 있다.

21대 대선이 임박하면서 후보자 벽보가 훼손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을 겪으며 정치적 양극화와 극단주의가 심해지면서 선거 벽보가 혐오의 분출구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경찰청은 지난 23일 기준 선거 벽보·펼침막(현수막) 훼손 혐의로 690명을 단속해 12명을 송치하고 673명을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이전 선거들과 비교해 벽보·펼침막 훼손 건이 2배 이상 증가했다는 게 경찰 설명이다.

누군가의 분풀이로 훼손한 벽보는 지역 선거관리위원회의 위탁을 받은 업체 직원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거하고 보수한다. 서울에서는 1개 또는 여러 구 단위로 위탁 업체들이 관리한다. 위탁 업체들은 벽보를 처음에 붙이는 일부터 시작해 선거 뒤 철거·폐기까지 맡고 있다. 지역 선관위와 경찰에 벽보 훼손 신고가 접수되면 2~3시간 안에 보수 작업을 마쳐야 한다.

종로구 벽보와 펼침막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이 팀장은 “많을 땐 하루에 벽보 훼손 신고가 10건도 들어오는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벽보의 훼손 건이 많다”고 전했다. 한겨레가 동행 취재한 이날은 혜화동에선 황 후보, 사직동에선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 벽보 훼손 사건이 발생했다. 김 후보 벽보에선 얼굴 턱 부근에 지름 3㎝가량의 구멍이 뚫려 있었다. 이 실장은 서둘러 훼손된 김 후보 벽보도 교체했다. 칼로 긋거나 구멍을 내고 담뱃불로 지지거나 매직으로 낙서를 하는 등 훼손 방식도 다양하다. 지난 15일 서울 동대문구에선 이재명 후보의 펼침막을 훼손한 70대 남성이 현행범으로 체포되는 과정에서 경찰 3명에게 상해를 입히기도 했다.

위탁 업체들은 정치 양극화와 혐오 정서를 벽보 훼손 사례로 느낀다고 말했다. 서울 한 자치구 벽보 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한 업체 관계자는 “(훼손된 벽보를 보면) 사회가 완전 양극화된 것 같다”며 “(훼손 신고가 들어오면) 밤 12시에도, 새벽 4시에도 전화가 온다. 업체, 경찰, 선관위 관계자만 요즘 죽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위탁 업체 관계자는 “벽보에 훼손하면 안 되고 어떤 처벌을 받게 되는지 다 나와 있는데 못 참고 (그런) 행동을 해야만 하는지 이해가 잘 안된다”고 말했다.

공정한 선거를 위해 반듯한 벽보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위탁 업체 직원들은 선거일까지 일에 집중하고 있다. 종로구를 관리하는 이 실장은 훼손된 벽보 교체 작업을 마치고 이렇게 말했다. “왜 얼굴을 찢는지 모르겠어요. 표로 심판하면 되잖아요.”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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