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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한 상에 소주 한 병씩
골목상권부터 중산층 유통채널까지 진열된 하이트진로
한국인에서 현지인으로 소비 중심 이동

지난 19일 필리핀 마닐라의 한 식당. 상추쌈에 삼겹살. 그리고 그 옆에 놓인 진로 소주 한 병. 서울 어느 식당에서나 볼만한 풍경이었다. 식당 가득 필리핀 소비자들의 저녁 한 상에도 소주가 한 병씩 곁들여져 있었다. 식당은 알아듣지 못할 말들로 가득했지만 딱 한 마디가 반복적으로 들렸다. “타가이(TAGAY)!” 우리말로 ‘건배’라는 뜻이다.

지난 19일 필리핀 전역에 70여 개 점포를 갖춘 한식 프랜차이즈 식당 '삼겹살라맛'의 저녁 자리. 상추쌈에 삽겹살, 그리고 소주가 놓여있다./연지연 기자

한국을 대표하는 하이트진로의 소주 브랜드 ‘진로(JINRO·수출 통합 브랜드명)’가 필리핀의 전통적인 건배 문화 ‘타가이’에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있었다. 잔을 돌리며 함께 마시고, 술과 곁들이며 분위기를 중시하는 현지 음주 문화 속에서 진로는 더 이상 낯선 술이 아니었다.

소주를 선택하는 필리핀 소비자들이 급속도로 늘어난 덕에 하이트진로의 필리핀 법인은 단기간에 성장했다. 현지 법인의 설립 첫해인 2019년 매출은 9000만원 수준이었지만 지난해 매출은 110억원을 기록했다. 관세청에서 집계한 필리핀 소주 수출 총액과 하이트진로 자체 수출 실적을 종합하면 진로의 지난해 필리핀 시장 점유율은 67%에 달한다.

필리핀 시장에서 소주가 이렇게 안착할 수 있었던 것은 한류, 그중에서도 한국 드라마 덕이 크다. 하이트진로 현지 유통사 KL의 강정희 대표는 “코로나19 기간 동안 필리핀에선 외출이 금지됐다. 이 기간에 한국 드라마를 시청한 필리핀 소비자들이 소주에 관심을 두게 됐다”면서 “이때를 기점으로 소주를 찾는 필리핀 소비자들이 확실히 늘었다”고 말했다.

회원제마트인 S&R클럽에서 진로가 시음 행사가 열리고 있다. 필리핀 소비자는 시음 직후 "소주는 맛이 깔끔해서 즐기는 편"이라고 했다./연지연 기자

실제로 필리핀에 70여 개 지점을 갖춘 한식 프랜차이즈 ‘삼겹살라맛’에서 식사하던 로즈(22)씨는 “한국 드라마 장면에서 소주를 먹는 장면이 많아 호기심에 접했는데, 맛이 깔끔해서 즐겨 찾게 됐다”면서 “주로 친구들과 함께 일주일에 1~2번 마신다. 여러 소주 중에서 ‘딸기에이슬’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딸기에이슬은 하이트진로가 수출용으로 개발한 과일 리큐르다.

필리핀의 음주 문화를 잘 파고든 부분도 있다. 하이트진로는 소셜네트워트서비스(SNS) 등을 통해 소주와 잘 어울리는 음식을 알리는 데 집중했다. 칵테일 방식으로 술을 즐기는 필리핀 소비자들의 기호에 맞춰 커피나 맥주 등과 소주를 혼합해 즐기는 음용법 마케팅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국동균 하이트진로 필리핀 법인장은 “필리핀은 타가이(TAGAY·건배), 풀루탄(PULUTAN·술과 음식을 함께), 팀프라도(Timplado·소주에 탄산음료, 주스, 커피, 우유 등을 혼합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즐기는 믹싱문화) 등의 주류 문화가 있다”면서 “이런 현지 문화에 녹아드는 마케팅에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전략적으로 유통 구조를 전환한 것도 도움이 됐다. 기존엔 한인 중심 유통망 중심으로 진로를 유통했지만 이젠 다르다. 현지 소매와 도매 유통을 확대하고, 필리핀 주류시장의 약 50%를 차지하는 대형마트와 식료품 전문점을 중점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필리핀의 대표 도매형 할인점 ‘퓨어골드(Puregold)’와 코스트코(Costco) 스타일의 회원제 창고형 할인 매장인 ‘S&R클럽’이 대표적이다.

퓨어골드에서 판매되는 소주는 필리핀 골목 유통을 담당한다. 필리핀 골목 상권의 유통채널인 ‘사리사리 스토어(sari-sari store)’ 운영자들이 방문해 물건을 구매하는 빈도가 높은 유통채널이라서다. ‘사리사리’라는 단어는 타갈로그어로 잡동사니를 뜻한다. 사리사리 스토어는 필리핀 경제·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대중적인 유통 채널이다.

하이트진로의 필리핀 유통 파트너사 KL의 물류창고에 진로 소주가 가득 차 있다./연지연 기자

퓨어골드 관계자는 “외국 브랜드인데 한국 음식점뿐 아니라 일반 가정에서도 ‘데일리 술’로 자리 잡고 있다”며 “최근 1~2년 사이 판매 속도가 특히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이트진로는 앞으로도 필리핀 시장에서 성장이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IMARC그룹에 따르면 지난해(2024년) 필리핀 주류 시장 규모는 70억3000만달러(약 9조5900억원)다. 오는 2033년까지 연평균 2.1% 성장해 84억8000만달러(약 11조5700억원) 수준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필리핀 진출 초기엔 과일소주 중심으로 판매되다가 참이슬후레쉬나 오리지널에 대한 선호가 커진 것도 앞으로 시장이 더 성장할 것으로 하이트진로가 보는 이유다. 필리핀 소비자들이 소주 본연의 매력을 알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하이트진로에 따르면 필리핀 소주 판매 구성비는 2021년 기준 과일소주가 약 61%를 차지했지만 지난해엔 일반 소주의 비중이 약 68%를 기록했다.

김인규 하이트진로 대표는 “‘우리 오늘 소주 한잔할까’ 하는 문화를 필리핀 소비자들에게 녹아들게 하고 싶다”면서 “하이트진로의 새로운 100년은 해외 시장을 빼놓고 말할 수 없는 만큼 공격적으로 해외 소비자들을 사로잡기 위해 나서겠다”고 했다.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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