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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미야와디의 중국계 사기 조직에 동원됐다가 풀려난 박모 씨. 한국 귀국 전 태국 방콕의 KBS방콕지국에서 특파원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월 4백만 원'에 흔들린 청년…미얀마 범죄 소굴로

올해 29살인 박모 씨는 복학을 준비하던 대학 휴학생이었습니다. 등록금이 필요해 일을 알아보던 중 태국 방콕에 있는 무역회사라는 곳에서 영어가 가능한 사람을 찾는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텔레그램을 통해 접촉해 온 그곳, 태국 무비자 체류 가능 기간인 90일 즉 약 석 달 동안 일하면 월 4백만 원씩 벌 수 있다고 했습니다. '동남아 취업 사기' 사건에 대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던 터라 의심이 들긴 했지만 일과 돈이 필요했던 박 씨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4월 14일, 태국 방콕 수완나품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의심을 했거든요. 정말 많이 알아보고 갔어요. 검색도 진짜 많이 하고 구글, 네이버 다 찾아봤는데 이 정도 알아봤으면 문제없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사실 사람이 절박하면 판단력이 좀 흐려지잖아요, 사실 돈이라는 것에 끌릴 수밖에 없었어요.

일단 회사가 방콕 시내에 있다고 하는 얘기를 들었고, 만약에 왔는데 상황이 아니다 싶으면 제가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방콕은 큰 도시잖아요, 한국 사람들도 많고 생명의 위협을 느낄 만한 일은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쪽에서 얘기를 잘 해줬어요. 요새 취업 사기도 진짜 많다. '우리 회사에 꼭 안 와도 되긴 하는데 캄보디아 쪽이나 중국 쪽 회사는 잘 알아보고 가야된다' 라는 말에 신뢰가 생겼죠"

공항에 마중 나온 사람은 한국인. 미리 정해진 호텔에서 하룻밤을 잔 뒤 다음 날 새벽 거래처로 바로 가야 한다며 박 씨를 차에 태웠습니다. 그런데, 중간중간 여러 차례 차량을 바꿔 타야 했습니다. 박 씨와 함께 탔던 한국인은 볼일이 있어 나중에 따라오겠다며 차에서 내렸습니다.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박 씨, 하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마지막 교통수단은 오토바이였습니다. 박 씨를 뒤에 태운 오토바이는 폭이 좁은 강 위에 임시로 설치된 다리를 건너더니 5층짜리 건물 몇 곳이 모여 있는 단지에 도착합니다.

미얀마 미야와디. 중국계 금융 사기 범죄 조직의 근거지였습니다.

박 씨가 갇혀 있던 미얀마 미야와디의 중국계 사기 범죄 조직 단지. 박 씨가 사기 작업용 휴대전화로 몰래 찍은 사진이다.
박 씨가 갇혀 있던 미얀마 미야와디의 중국계 사기 범죄 조직 단지. 철문으로 된 입구는 경비원으로 보이는 조직원들이 배치돼 있다.

"너무 멀리 와버렸던 거죠. 이거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했었죠. 저를 채용한 사람이랑 계속 연락을 했는데 이제 점점 연락이 안 되더라고요. 입구에 방벽처럼 쭉 둘러져 있었고 대문이 되게 높았거든요. 자체적으로 지키는 경비인지 군인인지 모르겠는데 다 총을 들고 있는 거예요. 조선족 사람이 나오더니 휴대전화를 비밀번호를 푼 채 반납해야 한다, 유심칩도 빼야 하고. 그래서 휴대전화를 빼앗기고 방을 배정받았죠. 2층 침대 4개가 있고 중간에 테이블이 있는 8인실이었어요.

내가 가겠다 하면 보내줄 줄 알았어요. 월급을 받은 것도 아니니까. 그런데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 가짜 SNS로 투자 유인…금융 사기에 동원된 박 씨

박 씨에게 주어진 일은 가짜 SNS로 한국인 또는 일본인 이용자에게 접근해 투자를 유도하는 금융 사기였습니다. 여성의 사진으로 SNS 계정을 만든 뒤 주로 40~50대 남성들에게 접근했습니다. 낚시나 골프같은 관심을 끌 만한 얘기로 시작한 뒤 하루 이틀 일상적인 대화가 오가면 자연스럽게 '투자' 얘기를 꺼내는 방식입니다.

"저는 일본에 사는 누구입니다. 당신과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또는 한국에 여행 가려는데 궁금한 것이 있다, 이런 식으로 메시지를 보내면 10명 중의 한두 명은 답이 와요. 1~2일은 자연스럽게 대화를 해요. 일상적인 대화. 3일 차가 되면 이제 부업이나 재테크 관련된 얘기를 꺼내요. 요새 사람들이 주식이나 코인 투자 이런 거에 관심이 많으니까 소위 말해 반응이 오는 거죠. 부업으로 재테크를 하고 있는데 수익이 좀 괜찮은 편이다."

처음에는 50만 원에서 100만 원을 보내라고 합니다. 그러고는 실제로 20% 정도 수익이 났다며 상대방의 계좌에 입금을 해준다고 합니다. 이런 식으로 투자 금액을 키우다가 어느 순간 연락을 끊는 방식입니다.

"코인의 등락을 조작할 수 있더라고요. 그 화면을 캡처를 해서 보내주면, '진짜 대단하다. 어떻게 하는 건지 알려줄 수 있냐'라면서 반응이 올 때가 있거든요. 상대방이 입금을 하면 대부분 20% 정도 수익을 맞춰줘요. 실질적으로 그 사람이 인출할 수 있게까지 만들어줘요. 돈을 넣어주는 거죠. 이제 더 큰 돈을 넣으면 이제 그냥 연락을 끊어버리는 거죠.

누적으로 해서 3~4억 원 보내는 사람도 봤고, 어떤 사람은 10억 원도 봤어요."

■ 가혹행위와 폭행…끝날 줄 모르는 공포의 밤

자신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금전적인 피해를 입고 있다는 죄책감은 별도로, 가장 견디기 힘든 건 밤마다 이어지던 가혹행위와 구타였습니다. 투자를 유도한 금액이 적거나 없으면 어김없이 '처벌'을 받아야 했습니다.

"매출을 못 내면 매일 업무가 끝난 뒤 중앙으로 불러내요. 1시간에서 1시간 반 정도 몸 힘든 운동같은 거 시켜요. 팔굽혀펴기 200개 이런 식으로. 그런데 사람이 체력에 한계가 있으니까 못 버티면 따로 불러내서 폭행해요. 발로 차고 나무 몽둥이 같은 거 들고 와서 때리고, 따귀도 많이 맞았어요. 때릴 때는 진짜 사람 대하듯이 안 해요. 저도 결국 수익을 못 냈고, 그 시간이 가장 무서웠어요. 그냥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도 매일 밤마다 했던 것 같아요.

과연 내가 여기를 살아 나가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구역마다 다 보초를 서고 있어요. 무전기로 통신도 하고. 밖으로 나간다고 하더라도 사실 총에 맞을 수도 있는 위험한 곳이라고 해서 도주는 생각도 못 했죠."

실적이 없으면 매일 폭행이 이어졌다. 박 씨의 다리에 멍이 들어 있고, 비위생적인 환경 때문에 피부에 붉은 반점이 올라와 있다.(박 씨 촬영)

몇 차례 내보내달라고 했으나 돌아온 건 금품 요구였습니다. 박 씨를 넘긴 사람에게 이미 4백만 원을 줬다, 여기 밀입국해서 오는 과정에 비용이 또 5백만 원 정도 들었다, 그러니 모두 천만 원어치 코인을 사면 내면 태국으로 보내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돈을 준다고 보내줄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 마약과 성매매, 카지노까지…그곳은 '범죄 단지'

사기 작업 결과로 수익이 날 경우 여기에 비례해서 받는 수당도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내 돈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내에선 마약과 성매매, 카지노까지 가능했습니다. 어차피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갇혀 있는 상황, 상당수 사람이 마약에 손을 대고, 성매매와 카지노에 돈을 탕진했습니다. 사기 조직 입장에선 지급한 수당을 다시 회수하는 구조였습니다.

"수익을 본다 해도 옆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나 위에 있는 사람들이 유도를 해요. 그 돈을 쓰게끔 유도를 해요. 그 안에 없는 게 없거든요. 마약도 있고 성매매도 가능하고 카지노도 있고... 사람이 갇혀 있으니까 할 수 있는 게 한정적이잖아요. 그러면 이제 마약 이런 거 호기심이 생길 수도 있고, 그래서 대부분 마약도 진짜 많이 하고 성매매도, 카지노도 진짜 많이 해요.

돈을 벌어서 그렇게 쓰면 돈이 없어지는 거잖아요. 그러면 또 이제 그런 거를 하려고 돈을 벌게 되는 그런 구조인 거예요."

박 씨가 감금돼 있던 기간은 총 3주 정도. 다른 이들보다 비교적 일찍 풀려나 마약 등에 손을 대지는 않았지만 감금 기간이 길었던 사람들은 여지없이 또 다른 범죄의 유혹에 빠졌다고 합니다.

■ 영원히 갇힐 줄 알았는데…3주 만에 빠져나온 '생지옥'

박 씨에겐 사기 범죄에 쓰라고 지급된 업무용 휴대전화 4대가 있었습니다. 이른바 '고객 관리', 가짜 SNS를 운영하고, 이를 통해 접근한 투자자들과 지속적으로 연락을 하라고 지급한 범죄 도구였습니다. 단지 내 구조를 알고 나니 감시가 소홀한 장소와 시간을 알 수 있게 된 박 씨는 겨우 기억해 낸 친구의 카카오톡 ID로 친구에게 연락을 취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대사관과도 연락이 닿았습니다.
미얀마와 태국의 대사관이 나섰고, 여기에 두 나라 당국이 개입한 끝에 박 씨는 겨우 풀려날 수 있었습니다. 미얀마 미야와디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태국 매솟으로 나올 때까지만 해도 안심할 수 없었던 박 씨는, 그곳에 박 씨를 데리러 온 주태국한국대사관 관계자를 만난 뒤에야 '생지옥'을 벗어났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박 씨와 한국대사관 측이 주고받은 메시지.

그리고 태국 방콕으로 넘어와 KBS 카메라 앞에 선 박 씨. 취업 사기의 피해자면서도, 강압에 의한 것이었지만 자신이 금융 범죄 조직에서 사기 작업에 동원됐고, 이로 인한 또 다른 피해자들이 생겼다는 사실이 너무 괴롭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20일, 악몽 같던 시간을 뒤로 하고 박 씨는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이런 일을 다른 사람이 또 당할 수 있는 거잖아요. 제 과실이잖아요. 이유가 뭐가 됐든 제가 잘못한 거고 저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사실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 시간을 많이 쓰셨잖아요. 또 저 때문에 금전적인 피해를 본 사람들도 있고요. 너무 죄송한 마음이 크죠. 친구와 가족들에게도 미안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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