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전 국무총리,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왼쪽부터 순서대로). 연합뉴스
경찰이 내란 혐의를 받는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를 출국금지했다. 용산 대통령실 폐쇄회로(CC) TV 영상을 통해 12·3 비상계엄 선포 전후 상황을 재구성하는 데도 속도를 내고 있다.
경찰 국가수사본부(국수본)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은 이달 중순쯤 한 전 총리와 최 전 부총리를 출국금지했다고 27일 밝혔다. 같은 혐의를 받는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해선 지난해 12월 이뤄진 출국금지 조치를 연장했다.
경찰이 세 사람을 출국금지한 건 지난해 12월 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선포 전후 대통령실 CCTV 영상을 통해 이들이 동조 또는 묵인했다고 의심할 정황을 확인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경찰은 전날 세 사람에 대한 10시간 안팎 동안 조사 내용과 영상, 그간 국회, 헌법재판소에서 증언, 수사기관 진술을 대조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경찰은 이들이 계엄 국무회의 등 당시 객관적 사실과 달리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을 열어 두고 위증 혐의 적용도 검토 중이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지난 26일 밤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세검정로 별관에서 내란 혐의 피의자 소환 조사를 마치고 청사를 빠져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 발언 및 수사기록 등을 종합하면, 한 전 총리는 “계엄 당일 오후 8시쯤 윤 전 대통령의 전화를 받고 대통령실로 향했고, 오후 8시55분쯤 대통령 집무실에 들어갔을 때 비상계엄 선포 계획을 알게 됐다”고 주장했다. 이후 국무위원들이 차례로 대통령실로 도착했고, 오후 10시 17분쯤 국무회의가 열렸지만 5분 만인 10시 22분쯤 끝났다. 윤 전 대통령은 10시28분 계엄을 선포했다.
한 전 총리는 지난해 12월 13일 경찰 조사에서 “경제·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해 (윤 전 대통령을) 만류했다”며 “(회의에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나머지(국무위원)는 모두 반대했다”고 진술했다. 계엄 선포 건의에 대해서도 “누구도 저를 거치지 않았다”고 했다. 계엄 관련 문건에 부서(副署·서명)한 사실을 묻는 질문엔 “없다”고 답했다.
경찰은 이런 한 전 총리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하고 있다. 앞선 조사에서 한 전 총리는 계엄 당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는 취지로 진술했는데, CCTV에선 김 전 장관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 등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은 윤 전 대통령과 계엄을 사전에 긴밀히 상의하고 실행한 핵심 인물로 지목됐다. 한 전 총리 측은 “계엄이라는 충격이 커서 기억을 못 한 부분이 있다”며 “CCTV와 다소 차이가 있을 순 있지만 기억의 오류 정도이고, 계엄을 논의한 적 없단 건 일관된 진술”이라고 강조했다.
김경진 기자
최 전 부총리와 이 전 장관도 이날 국무위원들이 모인 회의에서 계엄을 반대하거나 만류했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윤 전 대통령의 계획에 적극 가담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의 신빙성을 확인할 중요 요소는 계엄 관련 ‘문건’을 받았는지 여부다. 경찰은 CCTV 분석을 통해 이들이 적극적으로 문서를 확인하거나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수령했는지 등을 살피고 있다.
이 전 장관은 윤 전 대통령 지시를 받아 소방청에 언론사 단전·단수 조치를 지시한 혐의를 받는다. 그는 지난 2월 11일 탄핵심판에서 “(계엄 선포 직전) 국무위원들이 생각하는 것(을 전달하고) 만류하러 (대통령 집무실에) 들어간 1~2분 사이에 소방청, 단전, 단수 등 내용이 적힌 쪽지를 멀리서 봤다”고 했다. 실제로 이날 오후 11시30분쯤 이 전 장관이 소방청장과 경찰청장에게 직접 전화를 한 사실이 검찰 조사에서 드러나기도 했다.
이 전 장관은 “(계엄 선포 뒤) 광화문 사무실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쪽지를 봤던 일이 생각이 나 어떤 맥락에서 작성된 건진 몰라도 단전·단수를 할 경우 국민에게 안전 사고가 발생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전화한 것”이라며 “국민 안전을 챙겨달라고 당부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난 1월 허석곤 소방청장은 국회에서 “경찰청에서 단전·단수 요청이 있으면 협조하라는 뉘앙스의 전화를 이 전 장관으로부터 받았다”고 말했다. 경찰은 윤 전 대통령과 이 전 장관이 사전에 단전·단수 계획을 공유하고 소방청장에게 지시했는지 의심하고 있다.
최 전 부총리는 국회 무력화 등의 내용이 담긴 ‘비상 입법 기구’ 관련 A4 한장짜리 문건을 계엄 직전 받았다. 그는 2월 6일 국회 청문회서 “(윤 전 대통령이 대통령실에서) 참고하라는 식으로 말했고 누군가(실무자)가 접힌 쪽지 형태로 자료를 줬는데 경황이 없어 안 봤다”거나 “무시하기로 해 차관보에게 덮어놓자고 하고 보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이런 진술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지난 4월 16일 대통령 경호처 내 보안 휴대전화(비화폰) 서버 등에 대해 압수수색을 시도한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이 장비를 차에 싣고 있다. 뉴스1
일각에선 추가 조사 내용에 따라 이들의 내란 동조 내지 묵인·방조 혐의 처벌 가능성도 언급된다. 다만 내란 방조 및 묵인·방조 등의 혐의는 입증이 쉽지 않다는 의견도 나온다. 검찰 출신 변호사는 “내란에 실질적으로 동조하거나 가담했다고 판단하기 위해선 의사 및 행위가 명확하게 확인돼야 한다”며 “이들이 내란 행위를 인식·지지했는지 입증돼야 하는데, CCTV 화면과 진술이 서로 다른 사정만으론 증거가 부족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