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새미래민주당 상임고문이 27일 여의도 당사에서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후보를 지지선언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이낙연 새미래민주당 상임고문이 27일 김문수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지지를 선언하자 민주·진보 진영 안팎에선 “이낙연은 끝났다”, “권력을 향한 탐욕에 신념과 양심을 팔아넘겼다” 등의 강도 높은 비판이 쏟아졌다. 민주당 정부에서 성장한 정치인이 ‘반이재명’ 노선에만 매몰돼 12·3 내란사태를 비호해 온 세력과 손을 잡는 극단적 선택에 이르렀다는 평가다.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중앙선대위 상임공동선대위원장은 이날 민주당 중앙당사에서 열린 ‘진짜 보수 민주 보수’ 공동선언식에서 김 후보와 이 상임고문의 연대를 “망하는 연합”이라며 “공도동망이라는 말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공도동망은 ‘넘어져도 같이 넘어지고 망해도 같이 망한다’는 뜻의 사자성어다. 이 상임고문이 개헌 등을 연결고리로 김 후보 지지 선언을 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자 “함께 망할 것”이라며 불쾌감을 드러낸 것이다. 김 위원장은 “김문수와 결합해서 본격 내란세력 일원이 된 이 상임고문은 이제 본인이 일관되게 젊은 시절부터 추구한 사쿠라(변절) 행보의 끝을, 대단원을 이뤘다”고도 했다.
민주·진보 진영 안팎에선 이 상임고문이 이재명 민주당 대통령 후보에 대한 반감에 경도된 나머지 향후 정치생명을 이어가기 어렵게 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우선 “민주당 괴물 정권의 탄생을 막겠다”며 극우 세력과의 절연에 미적대는 김문수 후보와 손을 잡는 것 자체가 모순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박경미 민주당 선대위 대변인은 이날 “권력을 향한 탐욕에 신념과 양심을 팔아넘긴 사람이 ‘괴물’이 아니면 무엇이냐”며 “국민에게 총구를 겨누며 헌정 질서를 유린하려고 한 ‘독재’ 세력과 결탁해 놓고 독재를 우려하느냐. 온갖 궤변으로 자신의 내란 본색을 정당화하는 모습이 참으로 뻔뻔하다”고 했다.
비명계인 박용진 민주당 사람사는세상 국민화합위원장도 이날 페이스북 글에서 “이낙연 전 총리가 괴물독재국가 막기 위해 김문수 후보와 손잡는다고 하셨는데, 계엄으로 내란을 ‘실행’하려 했던 괴물독재잔당세력과 손을 잡으시면서 그런 말씀을 하시느냐. 완전히 길을 잃으셨다”고 비판했다. 조국혁신당 당대표 권한대행인 김선민 민주당 공동선대위원장도 이날 페이스북에 “이재명 후보가 밉다고 내란 세력을 돕느냐”며 “이미 정치인으로서 이낙연(은) 끝났다”고 썼다.
이 상임고문은 이를 의식한 듯 김 후보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결별하라는 자신의 목소리를 “경청했다”고 자평했으나, 윤 전 대통령은 대선 승리를 구실로 제 발로 당을 나갔고 김 후보는 되레 윤 전 대통령 측근들에게 “윤 전 대통령은 탈당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진 바 있다.
지난해 22대 총선 과정에서 이 상임고문에게 힘을 보탰던 인사들도 김 후보와의 연대를 강하게 비판했다. 친이낙연계로 이 상임고문과 함께 신당 창당에 나섰던 김종민 무소속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 글에서 “설마했는데 결국 선을 넘었다. 오직 누구를 반대하겠다는 일념에 사로잡혀 그동안 걸어온 정치인생을 통째로 뒤집고, 그동안 사랑하고 지지해준 민심을 내팽겨쳤다”며 “이 두 사람의 명분없는 연대는 두고두고 한국 정치사의 비극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 역사적 탈선에 대해 민심의 냉엄한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의당을 떠나 이 상임고문 쪽에 합류했던 박원석 전 의원도 이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누군가에 대한 원망이나 미움, 남 탓 같은 것이 내면의 감정을 넘어 결정과 판단을 지배한다면 공적인 일에서 물러나야 한다”며 “멈추고 물러나야 할 때 하지 않으면 알량하고 볼품없이 자신을 내던지는 꼴을 그간 정치에서 숱하게 목격했다. 민주헌정을 파괴하려 했던 내란동조 세력과 헌법을 매개로 연대한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이 모습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앞서 이 상임고문의 50년 지기를 자처하며 신당 창당을 함께했던 이석연 전 국회부의장 등 측근들이 이 상임고문을 비판하며 민주당으로 원대 복귀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 상임고문이 민주당과 민주당 정부 아래서 거물급 정치인으로 성장한 만큼 ‘괘씸죄’도 더해지는 분위기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발탁으로 정계에 입문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 당선자 시절 대변인을 맡았으며, 문재인 정부에서 국무총리까지 지낸 자신의 정치 이력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선택이라는 이유에서다. 이 상임고문은 5선 국회의원 중 4선을 호남에서 지냈고, 전남지사와 민주당 대표 등도 역임했다.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이낙연은 사람도 아니’라는 호남 유세 현장 반응을 전하면서 “정치배신자의 말로는 인생 패륜아보다 더 가혹한 것 같다”고 꼬집었다. 박 의원은 그에 앞서 올린 페이스북 글에도 “그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송두리째 불타버리네요”라고 적었다. 김경수 민주당 총괄선대위원장도 이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자신의 생각만이 옳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다 틀렸다는 아집이 낳은 결과”라며 “험난한 시대를 함께 했던 한 정치인의 허무한 몰락을 보는 것 같아 착잡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