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섭 당시 주호주 대사가 지난해 3월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서 열린 방위산업협력 주요 공관장 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채 상병 순직사건’ 외압 의혹에 대한 첫 압수수색을 마무리한 다음날 한국 외교부가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대사 임명을 위한 ‘아그레망’을 오스트레일리아(호주) 외교부에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채 상병 사건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되자 이 전 장관을 재외공관으로 빼돌리려 했다는 ‘도피 의혹’이 더 짙어지는 정황이다.
25일 한겨레 취재 결과, 한국 외교부가 호주 외교부에 이 전 장관의 주호주 대사 임명을 동의해달라는 아그레망을 요청한 시점은 지난해 1월19일이었다. 아그레망은 주재국이 타국의 공관장 임명을 동의하는 절차를 뜻한다.
당시는 공수처의 채 상병 사건 수사가 본격화하던 때였다. 공수처는 지난해 1월16~18일 이 전 장관의 비서실장 역할을 했던 박진희 당시 국방부 군사보좌관과 유재은 당시 국방부 법무관리관, 김계환 당시 해병대 사령관의 집무실과 집 등을 압수수색했다. 더불어민주당이 2023년 9월 이 전 장관 등을 공수처에 고발한 지 4개월 만에 이뤄진 첫 압수수색이었다. 외교부는 압수수색 다음날(1월19일) 이 전 장관에 대한 아그레망을 비공개로 요청했고, 한달여 뒤인 3월4일 이 전 장관의 대사 임명 사실을 발표했다.
대사 임명권자인 윤석열 당시 대통령은 지난해 5월9일 기자회견에서 “어디에 고발됐다는 것만으로 인사를 하지 않는다면 공직 인사를 하기 대단히 어려울 것”이라며 이 전 장관의 주호주 대사 임명을 정당화했다. 이 전 장관을 가벼운 사건의 피고발인 정도로 표현했지만, 이 전 장관은 지난해 1월 압수수색 영장에 직권남용 혐의 피의자로 적시됐고, 이로 인한 압수수색은 그의 측근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이 전 장관의 아그레망 요청 날짜가 공수처의 압수수색 직후라는 점이 확인되면서 윤 전 대통령의 직권남용 및 범인도피 혐의에 대한 수사도 본격화될 전망이다. 이 사건은 현재 공수처 수사3부(부장 이대환)에 배당돼 있다.
이날 외교부는 채 상병 수사가 본격화하자 이 전 장관에 대한 아그레망을 진행했느냐는 한겨레의 질문에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