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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진적 연구실 문화·수직 사제 관계
근로자 인정 못받아 생계유지 곤란
학위 취득 취업후에도 교수 영향력

판교의 한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박모(36)씨는 서울대 공과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밟았지만 졸업하지 못했다. 지도교수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수년 동안 석사 논문을 통과시켜주지 않은 탓이다. 석사 4년 차에 접어든 박씨는 “이대로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며 결국 대학원을 그만뒀다. 그에게 남은 건 등록금을 대느라 진 빚과 잃어버린 시간뿐이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석사 과정 중인 최모(33)씨는 한국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지만 지도교수와 마찰을 빚은 뒤 미국으로 떠났다. 곧바로 취업을 희망하던 최씨와 달리 지도교수는 본인 연구실에서 박사 과정까지 밟으라고 요구했다. 최씨는 “권유를 거절하고 한 스타트업에 취업했더니 교수가 회사 대표에게 연락했고, 결국 직장을 그만둬야 했다”고 말했다. 더는 한국에서 해당 분야를 연구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최씨는 미국으로 떠나 두 번째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25일 국민일보가 만난 이공계 대학원생들은 재능 있는 인재가 한국을 떠나는 이유 중 하나로 후진적 연구실 문화와 수직적인 사제 관계를 꼽았다. 부족한 연구비와 낙후된 연구환경, 충분하지 않은 일자리 등 정량적 요소 외에도 ‘탈(脫)한국’을 부추기는 요인들이 적지 않다는 얘기다.

대학원생의 권리를 억누르는 핵심 요인은 지도교수의 막강한 권력과 이에 따른 수직적 도제 문화다. 최씨는 “한국 연구실에서 지도교수와 대학원생의 관계는 사실상 왕과 백성에 가깝다”며 “지도교수에게 밉보인 상태로 연구 주제 설정부터 졸업논문 심사까지 수많은 절차를 무사히 통과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실제 연구실에서 대학원생의 생사는 전적으로 지도교수의 손에 달려 있다. 형식적으로는 지도교수를 포함한 3인의 본심사를 거쳐 논문이 통과되지만, 중간 단계인 예비심사를 넘으려면 지도교수 승인이 필수다.

월급 대부분을 연구실의 과제비로 충당해야 하는 현실은 대학원생이 지도교수에게 매여 있을 수밖에 없는 구조를 공고히 한다. 대학원생은 온종일 연구실에서 일하며 온갖 노동에 시달리지만 서류상으로는 교육기관에 등록한 학생일 뿐이다. 지도교수의 개인적인 심부름까지 도맡는 경우도 빈번하다. 주 6~7일을 일하는 중노동에도 대학원생이 연구실에서 받는 임금은 최저임금에 못 미친다.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탓에 이들의 월급을 추산할 공식 통계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학계에서 파악하는 이공계열 대학원생의 평균 임금은 월 100만원 안팎에 그친다. 법적으로 대학원생의 노동자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지만 여전히 한국에서는 대학원생이 노동자와 학생 사이의 회색지대에 있다.

가까스로 학위를 따고 취업해도 끝이 아니다. 최씨의 사례처럼 지도교수가 취업 후에도 업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있다. 최씨는 졸업 후 진로에 대해 묻자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 이상 한국으로 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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