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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형석의 시사문화재
13년 만에 대마도 돌아간 고려불상 반환 공방이 남긴 과제
지난 5일 오후 충남 서산 부석사 설법전에서 일본으로 반환되기 전 마지막으로 일반인들과 만난 고려시대 금동관세음보살좌상의 정면. 상투를 튼 머리에 후덕하고 온화한 표정의 인간미가 돋보이는 14세기 불상 조각의 수작으로 꼽힌다. 1330년 만들었다는 발원문이 불상 몸체 내부에서 복장 유물로 나왔기 때문에 14세기엔 매우 드문 기년 작품이란 점도 소중하다. 노형석 기자

온통 상처투성이였다.

695살 먹은 고려 불상의 양 손가락은 화마에 할퀴인 듯 곳곳이 벗겨지고 닳아 있었다. 거기에 600년 세월을 먹고 피어난 거뭇한 녹까지 번졌다. 산 사람으로 치면 화상을 입은 뒤 제대로 응급처치를 하지 않아 살이 문드러진 느낌이랄까. 개금을 하지 않아 더욱 인간미 넘치는 얼굴의 온화한 표정과 대비되면서 불상의 자태는 더욱 아리게 눈에 와닿았다.

금동관세음보살좌상의 왼쪽 손 부분. 불에 그을리고 곳곳이 벗겨져 마치 화상을 입은 듯한 느낌을 준다. 불상이 방화 등의 약탈 상황에서 옮겨졌을 가능성을 짙게 하는 방증·근거로 꼽을 수 있다. 부석사 설법전에 봉안됐을 당시 확대 촬영한 모습이다. 노형석 기자

지난 5일 오후 충남 서산 도비산 자락의 부석사 설법전에서 일본의 원소장처인 간논지(관음사)로 반환되기 전 마지막으로 일반 불자들의 눈길을 받은 고려시대 금동관세음보살좌상은 한껏 당당하고 의연해 보였다. 14세기 말 고려시대 왜구들이 서산의 절을 노략질해 일본으로 약탈해갈 당시 겪은 고초와 지난 12년간 빚어진 복잡다단한 환수 공방의 곡절을 묵묵히 견디어온 몸이 아니었던가. 찾아온 불자들은 ‘석가모니불’ ‘관세음보살’을 염송하면서 안타까운 표정을 풀지 못했다. 방명록에 가족과 지인들의 소망을 적고 점선으로 인쇄된 불상의 화폭 위에 다시 불상의 윤곽을 그린 여러 신도들은 “원래 계신 이곳에 있어야 더 아름다운데 왜 떠나야 하는지” “왜 불심으로 풀지 못하고 법으로 해결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들을 털어놓았다.

상투를 튼 머리에 후덕하고 온화한 표정의 인간미가 돋보이는 이 좌상은 14세기 불상 조각의 수작으로 꼽힌다. 1330년 만들었다는 발원문이 1951년 불상 몸체 내부에서 복장 유물로 나왔기 때문에 14세기 고려 불교미술사에서 거의 없는 기년 기준 작품이란 점도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의 신도들에겐 세상사의 모든 풍상을 미소와 자비심으로 녹여내는 듯한 부드럽고 인자한 자태가 더욱 살갑게 다가오는 듯했다.

충남 서산 부석사 설법전의 유리장 안에 봉안된 금동관세음보살좌상을 옆면에서 바라본 모습. 개금을 하지 않아 인간미 넘치는 얼굴의 후덕한 표정과 화마에 할퀴인 듯 곳곳이 벗겨지고 닳은 양손 손가락의 모습이 도드라지게 눈에 들어온다. 노형석 기자

지난 1월25일부터 5월5일까지, 원래 불상이 있던 옛 부석사 연고지의 현 부석사 절집에 100일 친견 법회를 위해 임시 봉안된 불상을 보러 전국 각지에서 4만명 넘게 몰린 것도 그렇다. 애초 이 불상 자체가 1330년 고려국 충청도 서주(서산) 땅의 고찰 부석사에서 승려와 신도들은 물론 하층민들까지 전란 가득한 세상의 고뇌를 넘어 내세에 극락왕생을 하자며 만든 종교 예술품이니 많은 이들이 불상의 면모에 감동하는 것은 당연하다. 12일 환송법회 때는 비바람 몰아치는 가운데 신도들이 눈물을 글썽이면서 관세음 불상을 전송하는 처연한 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답답한 것은 왜구의 약탈임이 분명한 업보를 말끔히 풀어내지 못했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2012년 한국인 도둑들이 대마도 간논지에서 훔쳐 국내에 들여와 팔려다 적발되면서 비롯된 고려 보살좌상의 환수와 반환 공방은 정확히 11년간의 소유권 확인을 위한 법정 송사를 거친 끝에 2023년 10월 대법원에서 일본 간논지의 소유권을 인정하면서 마무리됐다. 일정 기간 문제없이 점유했다면 소유권이 넘어간 것으로 보는 ‘취득 시효’ 법리에 따라 간논지의 불상 소유권을 인정했다. 간논지가 절 관리법인이 된 1953년부터 불상을 도난당한 2012년 10월까지 약 59년간 아무런 이의 제기를 받지 않고 고려 불상을 장기 점유했기에, 한국이나 일본의 민법상 공히 취득 소유를 얻은 것으로 본 것이다.

들어올린 금동관세음보살좌상의 오른쪽 손 부분. 불에 그을리고 곳곳이 벗겨져 마치 화상을 입은 듯한 느낌을 준다. 불상이 방화 등의 약탈 상황에서 옮겨졌을 가능성을 짙게 하는 방증·근거라고 할 수 있다. 부석사 설법전에 봉안됐을 당시 확대 촬영한 모습이다. 노형석 기자

사실 600년 전 불상의 약탈 여부를 두고 소유권 논란이 벌어진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들다. 고려와 조선에 자행한 왜구의 약탈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온갖 법리를 동원해 대결하는 희한한 양상이 벌어졌다. 물론 그 과정에서 불자들과 국민들은 임진왜란에 가려 그 심각성이 묻혀 있던 14세기 왜구들의 광포하고 잔혹한 노략질의 실체를 절절하게 알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통일신라의 엄숙하고 풍만한 불상이나 도식적인 조선 후기 불상과는 전혀 다른 고려 불상의 휴머니즘적 매력을 좀 더 명확하게 접하는 결실도 가져왔다.

하나 분명한 건 구체적인 기록상의 근거가 제기되지 않은 상태에서 심증만으로 유물을 환수하는 것은 제도적으로 더욱 쉽지 않게 됐다는 점이다. 대법원은 불상을 소유한 경위가 어떠하든 일본 절이 일단 민법상의 취득 시효를 완성했다고 판결을 내렸다. 그리고 취득 경위에 대해서도 분명한 판례를 세웠다. 훔친 장물은 안 되며,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는 환수를 강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빼앗긴 나라 법원의 객관적 논리 앞에서 모두 숙연하게 현실을 인정해야 했다.

부처님 오신 날인 지난 5일 불자들이 충남 서산 부석사 설법전 유리장 안에 봉안된 금동관세음보살좌상 앞에서 고개 숙이며 배례하고 있다. 노형석 기자

불교계는 면죄부를 줬다고 반발하는 기류가 적지 않지만, 이제 한국의 문화유산계와 학계는 더욱 치밀하고 광범위하게 유출 문화유산의 존재를 조사하고 파악해야 할 상황에 처하게 됐다. 막연히 달라고 할 것이 아니라 먼저 보여달라고 요구하고, 그러기 위해 신뢰관계를 다지는 게 순서일 것이다. 역시 왜구의 약탈품일 가능성이 짙지만, 한-일 학계와 교단 간의 신뢰 관계를 바탕으로 10여년 전 국내 통도사 전시까지 성사됐던 규슈 사가현 가라쓰 가가미신사의 수월관음도 교류는 그 좋은 선례다. 간논지로 불상이 봉안된 12일 다음날, 공교롭게도 조선통신사선 재현선이 오사카에 입항하면서 반환의 의미는 더욱 각별해졌다. 불상 반환이 지난 10여년간 거의 끊겼던 한-일 간 문화유산 교류와 연구 협력을 활성화할 전화위복의 호기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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