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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복경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책임연구원

최복경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책임연구원


바다에서 들리는 소리를 떠올려보자. 철썩이는 파도와 끼룩이는 갈매기가 먼저 생각난다. 그런데 빗방울이 수면에 떨어지며 내는 미세한 음파를 상상해 본 적 있는가. 이 소리는 단순한 배경음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데이터의 보고다.

바다에 떨어지는 빗방울은 ‘수중청음기(소리 부이)’로 들을 수 있다. 소리 부이는 넓은 바다에 네트워크 형태로 다수 설치해 10㎐(헤르츠)~20㎑(킬로헤르츠) 주파수를 감지하는 장치다. 작동에 필요한 전력은 태양광이나 파력으로 만들고, 데이터는 5세대통신(5G)이나 위성 통신으로 전송한다.

동해와 서해, 남해에 소리 부이를 설치하면 기상 예보와 해양 연구에 혁신을 가져올 수 있다. 이유가 있다. 빗방울이 바다에 떨어질 때 나는 소리는 단순한 ‘툭’이 아니어서다. 빗방울은 수면에 부딪히면서 물속에 공기 방울을 만든다. 공기 방울은 물속에서 ‘삥~’하고 진동한다. 공기 방울 크기는 방출되는 소리의 주파수와 세기를 결정한다.

작은 공기 방울은 10~15㎑ 고주파를, 큰 공기 방울은 1㎑ 이하 저주파를 생성한다. 소리 부이는 이 주파수 패턴을 포착한다. 소리 부이로 분석하면 0.5㎜ 크기의 공기 방울은 약 13㎑의 소리를 방출한다.

과학자들은 이런 데이터를 분석해 강수량, 강우 세기, 빗방울 크기를 계산할 수 있다. 1990년대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 연구는 수중 음향 데이터를 이용해 강수량을 90% 정확도로 추정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이는 바다가 날씨를 기록하는 거대한 음향 스튜디오임을 뜻한다.

한국 주변 바다는 면적이 약 22만3000㎢로, 동해(평균 수심 1500m)와 서해(44m), 남해(100m)로 나뉜다. 서해의 얕은 수심에는 해저 고정형 소리 부이를 사용해 5~20m 깊이에서 연안 강수와 갯벌 소음을 잡는다. 동해의 심해에서는 부유형 부이를 50~100m 깊이에 띄워 표층과 중층의 소리 차이를 분석한다. 다도해인 남해에서는 소리 부이를 섬 주변에 밀집 배치해 해류와 강수 패턴을 정밀 추적할 수 있다.

기상청은 국제적으로 바다 강수량을 예보하는 ‘전지구 강수 관측위성(GPM)’과 해양기상부이, 한국형 수치예보모델(KIM)에 의존한다. 하지만 위성은 구름 분포만 보여주고, 해양기상부이는 제한된 지점의 데이터만 제공한다.

소리 부이는 이 한계를 넘어선다. 태풍이 바다를 지날 때 소리 부이는 빗소리를 기록해 실시간으로 강수량을 알려줄 수 있다. 2020년 태풍 ‘하이선’은 빠른 이동과 강한 강수로 큰 피해를 남겼다. 당시 레이더는 연안 200㎞ 데이터만 제공했지만, 소리 부이가 있었다면 태풍 경로상의 강수량을 실시간 측정해 피해 예측과 대피 경고를 정확히 했을 것이다.

파도 소리와 배경 소음 분석은 풍속과 파고를 간접 계산해 해상의 돌풍이나 안개 예보에 유용하게 쓸 수 있다. 소리 부이 데이터를 통합하면 예보 정확도가 10~20% 향상될 가능성이 크다.

장기적으로 소리 부이는 기후변화 연구에도 이바지할 것이다. 동해 강설 감소나 서해 폭우 증가 같은 패턴을 빗소리 데이터로 정량화할 수 있다. 2010년대 북극해 연구에서는 미세 강수 변화를 추적해 얼음 녹는 속도와 강수량의 상관관계를 밝힌 바 있다. 소리 부이는 연안 안전에도 이바지한다. 폭우가 감지되면 갯벌 지역에 ‘침수 위험’ 특보를 발령할 수 있다.

바다는 인간에게 늘 말을 걸어왔다. 소리 부이는 그 소리를 과학의 언어로 번역한다. 동해의 깊은 음파, 서해의 얕은 리듬, 남해의 섬 멜로디를 들으며 기상청은 더 정확한 예보를, 과학자는 깊은 통찰을 얻는다. 언젠가 기상 예보관이 “소리 부이에 따르면 오늘 동해에는 약한 비, 서해에는 강한 바람이 예상됩니다”라고 말할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그때 우리는 바다와 한층 더 가까워질 것이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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