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아픈 날 생각나는 그날의 의식
| 조승리유년기의 나는 이유 없이 병이 나서 자리보전하는 일이 흔했다. 그날도 해열제를 먹고 겨울 솜이불 속에서 덜덜 떨어대다가는 까무룩 잠이 들었다. 슬며시 눈을 뜨자 창호지 문으로 볕이 스며들었다. 벽에 걸린 괘종시계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부르튼 입술 사이로 더운 숨이 색색 소리를 내며 새어나왔다. 몸을 일으켜 머리맡을 살핀다. 작은 소반에 양은 대접 하나가 놓여 있다. 엄마가 들에 나가기 전에 타 놓은 흑설탕물이다. 대접을 들어 맛을 본다. 다디달다. 마른 입술이 그릇에 달라붙었다 떨어지며 찌릿한 통증을 일으켰다. 혀로 통증 부위를 핥다 다시 한번 따끔한 통증 때문에 깜짝 놀란다. 쇠 냄새가 혀끝에 달라붙는다. 대접을 소반 위에 내려놓고 이불로 파고들어 몸을 둘둘 말았다. 그러고는 눈을 대굴대굴 굴린다. 누렇게 빛바랜 천장과 파리똥이 덕지덕지 붙은 형광등이 보인다. 눈을 감고 한동안 있자 소음들이 날파리떼처럼 귓가로 날아든다. 마당 수도의 모터 돌아가는 소리. 온 동네 참견꾼인 바람이 우리 집 대문을 슬쩍 밀어보고 가는지 녹슨 경첩이 삐거덕대며 신경질을 냈다.
나는 빨리 나아 봄볕 깔린 들로 산으로 뛰어다니고 싶었다. 배에서 꾸르륵 물 내려가는 소리가 났다. 얼얼한 뒤통수가 무거워 도무지 일어나 앉을 기운이 없었다. 몸이 점점 가라앉으며 정신이 흩어졌다.
괘종시계가 댕댕 종을 쳐대며 잠을 깨웠다. 눈꺼풀도 입술도 딱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끙 소리를 내고 옆으로 돌아누웠다. 안간힘을 쓰며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창호지 문으로 노란 석양빛이 방 안 깊숙이 들어왔다. 서늘한 공기 중에 음식 냄새가 섞여 있었다. 엄마가 들에서 들어왔는지 부엌과 마당을 오가는 인기척이 들렸다. 네발로 기다시피 이부자리를 빠져나와 문을 열고 마당을 내다봤다. 엄마는 분주히 집안일을 해댔다. 온 집안에서는 고약스러운 음식 냄새가 났다. 그건 비린내 나는 김치죽 냄새였다. 속이 울렁거렸다. 얼른 문을 닫고 냄새를 차단했다. 문소리를 들은 엄마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차갑고 거친 손이 내 이마를 짚었다.
“배고파도 좀만 참아. 엄마 얼른 빌고 와서 밥줄게.”
나는 엄마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지만 또 떨어져야 한다는 사실만은 알았다. 그게 서러웠다. 엄마는 곧장 부엌으로 들어가 광주리를 이고 나왔다. 나는 방 안에서 문턱에 기대어 엄마를 내다봤다. 엄마가 대문을 나섰다. 나는 네발로 기어 문턱을 넘고 대청마루 밑에 벗어둔 신발을 신었다. 눈앞이 어질어질했다. 뜨락을 내려서 대문 밖으로 걸어 나갔다. 엄마와의 거리는 금세 벌어져버렸다. 기운 없는 몸을 휘청대며 두 팔로 허공을 휘젓듯 걸었다. 엄마가 향하는 곳은 동네 어귀 옛 우물이 있는 느티나무 방향이었다. 그 공터를 지나면 산으로 올라가는 농로와 논으로 이어진 오솔길이 나왔다. 엄마는 그 갈림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나는 더운 숨을 색색 내쉬며 엄마를 향해 다가갔다. 엄마는 바닥에 내려놓은 광주리에서 양은 냄비를 꺼내 손잡이를 한 손으로 쥐고 수저로 냄비 속 음식을 떠서 사방에 뿌려대며 무어라 중얼거렸다. 나는 집에서 맡았던 고약한 김치죽 냄새 때문에 코를 쥐고 엄마에게 다가갔다. 냄비를 비운 엄마가 광주리에서 식칼을 꺼내 들고 허공에다 야단을 치듯 다그쳤다.
“나가! 다시는 우리 애기한테 들러붙지 마.”
엄마는 들고 있던 식칼을 오솔길을 향해 던졌다. 그러고는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다시 칼을 집어 들고 허공에 야단을 치고 칼을 던지는 행동을 반복했다. 나는 그 괴기한 행위가 무섭고 불안해 숨소리도 못 내고 얼어붙었다.
잦은 병치레로 앓아누운 딸 위해
김치죽 끓여 마을 어귀로 간 엄마
사방에 죽 뿌리며 ‘귀신 쫓는 의식’
성인 된 후 이사로 몸살 걸리자
갑자기 김치죽 생각에 군침 돌아
기운 샘솟게 하는 ‘매콤한 추억’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내가 자주 앓아눕자 동네 할머니들이 엄마에게 배곯아 죽은 어린 귀신이 내게 붙은 것 같다며 귀신 떼어 내는 비방을 알려주어 그 의식을 치른 것이라 했다. 의식에는 김치와 북어 대가리를 넣어 끓인 죽이 필요했다. 귀신이 죽 냄새를 맡고 마을 밖으로 쫓아나오면 배불리 먹여 위로하고 혼을 내서 다시는 얼씬 못하게 내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고는 식칼을 던져 귀신이 떨어졌나 붙어있나를 점치는데 칼날이 동네 안을 가리키면 아직 귀신이 붙은 것이고 밖을 향하면 떨어져나간 것이란다. 원시적인 미신이지만 엄마의 애달픈 심정이 오죽하면 그런 의식마저 치러야 했을까! 엄마의 증언으로는 그 비방이 효과가 있던 건지 내가 금세 병을 털고 일어나 밥을 찾고 다음날 온 동네를 팔짝팔짝 뛰어다녔다 했다. 그래서인지 내 형제들이 앓아눕기라도 하면 집에는 그 비린내 나는 김치죽 냄새가 떠돌았다. 엄마가 언제부터 그 의식을 그만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 대신 우리 집 약상자 안에는 온갖 약이 그득했다.
어릴 적 잦은 병치레가 무색하게 성인이 된 이후로는 앓아눕는 일이 없었다. 엄살꾼인 나는 컨디션이 조금만 좋지 않아도 약을 챙겨 먹고 휴식을 취했다. 그러고 나면 몸이 금방 회복되고 기운이 돌아왔다. 이직을 하며 서울로 이사를 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몇달을 정신 없이 보냈다. 포장이사를 했지만 눈이 보이지 않는 내가 편리한 대로 정리를 하려면 일일이 다시 꺼내 위치를 바꿔야 했다. 생활 환경이 바뀌면 몸은 멍투성이가 된다. 낯선 동선에 발이 걸리고 이마를 찧으며 적응해간다.
결국 병이 났다. 아침부터 오한이 나더니 퇴근 시간에는 목구멍이 따갑고 어깨를 집어뜯는 듯한 통증이 있었다. 빨리 퇴근해 약을 먹고 눕고 싶었다. 집에 도착해 약상자를 찾았다. 이삿짐을 풀며 분명 약상자를 본 것 같은데 아무리 서랍을 더듬어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코에서 더운 숨이 풀풀 새어 나왔다. 하는 수 없이 물만 한 컵 마시고 침대에 누웠다. 두꺼운 이불을 덮었는데도 오한이 났다.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가 춥고 속이 메슥대서 깨어났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피가 몽땅 몸 밖으로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머릿속으로 119에 전화를 걸지 고민했다. 머리맡을 더듬어 스마트폰을 집어 시간을 확인했다. 오전 4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온 힘을 짜내 기다시피 침대에서 내려와 다시 서랍을 뒤졌다. 어제는 그리 찾아도 없던 약상자가 만져졌다. 해열제를 찾아 두 알을 입에 넣고 네발로 기어서 부엌으로 갔다. 생수병을 찾아 약을 삼키고 그 자리에 앉아 있다가 쓰러지듯 누워버렸다. 그리고 기억이 없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식은땀으로 몸이 축축했고 위장이 뒤틀렸다. 입을 틀어막고 화장실로 뛰어들어 변기에 구역질을 했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아서 두 발로 설 수가 없었다. 스마트폰을 찾아 시간을 봤다. 곧 7시였다. 나는 활동지원사에게 연락을 하려다가 이른 아침부터 실례인 것 같아 한 시간 정도 더 기다리기로 했다. 땀이 나자 열이 떨어지는지 딱딱 부딪치던 이빨이 조용해졌다.
8시 정각이 되자 활동지원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 목소리를 들은 그녀가 깜짝 놀라 남편과 함께 달려왔다. 나는 무척 미안해하며 부축을 받아 응급실에 갔다. 수액을 맞으며 까무룩 잠이 들었다. 그러다 창으로 들어오는 김치찌개 냄새에 잠이 깼다. 평소 즐기지 않는 음식이었는데 갑자기 군침이 돌았다. 병원을 나서며 활동지원사에게 김치죽을 사서 가자고 부탁했다. 식탁에 앉아 김치죽을 한술 떴다. 오래전 엄마가 귀신을 쫓는다며 끓였던 김치죽의 기억이 순간 떠올랐다. 그 어처구니없고 기괴한 미신을 믿던 엄마가 생각나 아련히 웃었다. 오늘은 김치죽으로 귀신 대신 외로움을 쫓으리라.
매콤한 추억이 기운을 솟게 했다.
▲조승리
시각장애인 에세이스트. 열다섯 살 때부터 서서히 시력을 잃었다. 손끝으로 만나는 세상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쓴다. 에세이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를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