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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가성비·풍미 다 잡은 스테이크
| 정연주



삼겹살 회식에서 가장 앉기 좋은 자리는 고기 집게를 전담해서 모든 고기를 직접 굽는 사람 옆자리다. 음식 잡지사에서 에디터로 일할 때 그런 선배가 있었다. 핏덩어리 같은 후배가 집게를 들었다가 실패한 고기를 먹는 것이 싫어 “너희는 가만히 있으라”고 일갈하고 집게를 사수하는 선배였다. 고기 잘 굽는 법에 대해 잔소리만 늘어놓는 입만 산 사람들보다 얼마나 훌륭한 인간성인지!

캠핑장에서도 주변 사이트를 둘러보면 불 앞에 서서 고기를 굽는 사람 중에서 특히 자세부터 자신감이 묻어나는 경우가 있다. 완벽하게 고기를 구워서 가족에게 나눠줄 수 있다는 건 그 자체로 식사를 책임진다는 자신감을 가져 마땅하다. 날것의 불을 절묘하게 조절하면서 타지도 않고 덜 익지도 않게 수인분의 고기를 구워내는 건 그 자체로 재주이자 권력이다.

그야 당연히, 고기 굽기는 테크닉이니까! 무엇보다 집게를 든 사람의 실력이 좋으면 먹을 수 있는 고기의 종류도 달라진다. 그 사실은 요리학교에 들어가고서 알았다. 대학교 시절에 갓 스무 살이 된 친구들끼리 학교 앞 저렴한 삼겹살집에 갔다가 서너 명 중 그 누구도 이 고기가 다 익은 것인지 먹어도 되는 것인지 몰라 토론한 기억이 아직 선명한 시절이었다.

하지만 요리학교에 들어가니 불판 위에서 가위로 쓱쓱 잘라가며 얼마나 익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삼겹살은 난도가 낮은 편이었다. 끝판왕은 파인 다이닝의 코스 요리에서도 메인인 스테이크다. 아스파라거스를 아삭하면서 부드럽게 익혔는지 알아보려면 열 개를 데쳐서 하나를 잘라보면 되는데, 스테이크는 일발장전해서 셰프가 썰어보기 전까지 내가 미디엄 레어에 성공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셰프에 따라 “엄지와 검지 사이의 살을 눌러봐라” “아예 요리용 온도계를 꽂아서 특정 온도가 될 때까지 익혀라” 등 다양한 가르침을 받았지만 결국 내가 요령을 터득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문제는 요령을 터득하려면 많이 해봐야 하는데 턱턱 사서 매일 구워보기에는 스테이크용 고기의 가격이 부담스럽다는 것이었다.

보통 캠핑장에서 스테이크보다 삼겹살이 선호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좋은 고기를 산다고 무조건 맛있는 스테이크가 보장되지 않으니까. 사실상 캠핑 메뉴를 정할 때는 재료가 좋으면 맛있는 음식을 고르는 것이 소위 ‘안전빵’이다. 녹진한 방어회, 잘 익은 복숭아 같은 것은 제철 재료만 잘 구하면 요리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우대갈비나 토마호크 스테이크처럼 멋지고 큼직해서 비싼 고기는 기껏 큰맘 먹고 샀다가 제대로 익히느라 고군분투하다 타거나 설익거나 너무 익어 이도 저도 아닌 맛이 되면 돈이 아깝고, 속이 상한다. 그러니 캠핑장에서는 조금 더 익어도 안전하게 맛있는 돼지고기 파티가 열리는 것이 보통일 수밖에.

하지만! 여기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비싼 부위를 사도 맛있는 스테이크가 보장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스테이크에서 핵심은 가격표가 아니라 요리사의 손끝에 있으니까. 이걸 뒤집어서 생각하면 일정한 요령만 터득하면, 비교적 저렴한 부위로도 맛있는 스테이크를 만들 수 있다. 이 까다로움이 스테이크의 진정한 매력이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맛볼 수 있다고 생각했던 완벽한 스테이크를 이리저리 노력해 직접 구워냈을 때의 성취감은 삼겹살 열 접시보다 기쁘다.

재료의 특성을 이해하고 적절한 조리법을 선택하면 의외로 ‘가성비 넘치는’ 캠핑 요리가 되는 것이 스테이크다. 특히 손님 초대 캠핑이라도 했을 때는 가운데에 제대로 구운 스테이크만 하나 차려도 감탄을 자아낼 수 있다. ‘슈뢰딩거의 스테이크’로 고민하던 요리학교 시절부터 저렴한 부위로 스테이크 굽는 법을 연습하기 위해 노력한 푸드 에디터의 경험을 믿고 스테이크 마스터가 되어보자.

스테이크를 맛있게 굽는 방법에는 저온의 오븐에 먼저 굽고 겉을 지지기, 수비드로 수십시간 익히기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평범한 주방, 특히 열악한 캠핑 주방에서 만들려면 중요한 것 몇가지를 챙겨야 한다. 일단 고기를 고를 때 제일 중요한 것은 부위보다 두께다. 스테이크를 맛있게 구우려면 사방에 노릇노릇 바삭한 크러스트가 생기도록 충분히 열을 가해야 하는데, 너무 얇은 스테이크를 구입하면 굽다가 속까지 웰던이 되어버리기 쉽다. 가격을 생각하면 얇고 비싼 좋은 부위를 구입하느니 조금 저렴해도 두껍게 성형한 부위를 구입하는 것이 좋다. 마블링에도 너무 집착할 필요가 없다. 내가 제일 자주 사용하는 것은 코스트코에서 판매하는 부채살이나 채끝이다.

참고로 노릇노릇 바삭해지도록 겉을 충분히 굽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과정인데, 그건 과학자 해럴드 맥기가 밝혀낸 바에 따르면 육즙을 가두기 때문이 아니라 그 자체가 마이야르(Maillard) 반응을 일으키며 맛 성분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냥 더 ‘맛있어’진다.

일단 두꺼운 스테이크용 고기를 구입했다면 꼭, 반드시, 전날 염지를 해야 한다. 미리 소금을 쳐 놓으라는 뜻이다. 흔히 판매하는 스테이크용 시즈닝의 염도를 확인하고 소금과 함께 양념을 앞뒤로 충분히 뿌리면 된다. 그리고 밀봉해서 냉장고에 하룻밤 이상 재우는 것이다. 아주 중요한 과정이다. 두꺼운 스테이크의 속까지 간이 잘 배어드는 것은 물론, 염분이 단백질을 변형하고 일부 분해해서 질감이 연해진다. 그리고 아미노산과 결합해서 풍미가 더 깊고 복합적으로 되도록 강화한다.

그야말로 저렴한 부위를 더 ‘연하고 맛있게’ 만드는 필수 과정이 염지다. 그리고 소금을 치면 삼투압 현상으로 고기 내 수분이 빠져나왔다가 염분과 결합되어 다시 흡수되기까지는 최소 30분 이상이 걸리기 때문에 하룻밤 이상 충분히 염지해야 효과가 좋다. 만일 염지할 시간이 30분도 남지 않았다면 그냥 포기하고 구우면서 간을 하는 것이 낫다. 고기 내 수분이 빠져나왔다가 다시 흡수될 시간을 주지 않으면 질긴 스테이크가 될 테니까.

고기 염지가 끝나면 이제 맛있게 굽는 일만 남는다. 이때 숯불이나 장작불을 아주 잘 다루는 사람이 아니라면 무쇠팬이나 바닥이 두꺼운 스테인리스 팬을 충분히 달궈서 사용하는 것을 권한다. 겉에 충분히 크러스트가 생기도록 빠르고 강하게 구워야 하는데, 속이 적당히 익기 전에 타거나 한없이 오래 구워야 하는 사태를 막으려면 바닥이 두꺼워서 열을 잘 품고 있는 팬에 굽는 것이 안전하다.

두꺼운 부위를 골랐다면 앞뒤, 그리고 양 사방까지 충분히 노릇노릇해지도록 1~2분씩 구워도 속이 미디엄으로 남아있도록 유지할 수 있다. 기름을 두르고 뜨거운 팬에 충분히 굽자. 그리고 원하는 굽기로 완벽하게 익히는 것은, 온도계를 쓰는 것밖에는 확실한 방법이 없다. 일정한 두께의 스테이크를 자주 구워서 감을 익히거나, 온도계로 미디엄 레어는 54~57도, 미디엄은 60~63도가 되도록 구울 수밖에.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가능하면 미디엄 웰던은 넘기지 않아야 촉촉한 스테이크를 맛볼 수 있다.

완성된 스테이크는 캠핑장이라면 나무 도마에 올려서 내는 것이 제일 ‘감성’에 잘 맞는다. 이때 썰기 전까지 식지 않도록 알루미늄 포일을 한 장 얹어서 구운 시간의 절반 정도만큼 휴지를 하는 것이 좋다. 바로 썰면 근섬유가 살짝 이완되기 전이라 잘 썰리지 않기도 하고, 육즙이 콸콸 흘러내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저렴해도 두꺼운 부위를 고를 것, 하룻밤 전에 염지해서 냉장고에 넣어둘 것, 무쇠팬을 충분히 달궈서 사방을 노릇하게 지져 크러스트를 만들 것, 구운 다음 썰기 전에 구운 시간의 절반 정도를 휴지할 것, 그사이에 식탁을 차리고 사람들을 자리에 불러 모을 것. 이것만 터득하면 우리 모두 캠핑 스테이크 마스터가 될 수 있다. 파이팅!

■정연주



캠핑 다니는 푸드 에디터, 요리 전문 번역가. 르 꼬르동 블루에서 프랑스 요리를 공부하고 요리 잡지에서 일했다. 주말이면 캠핑카를 타고 떠나는 맛캠퍼로 ‘캠핑차캉스 푸드 라이프’ 뉴스레터를 발행한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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