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정부 2인자로 국정 좌지우지
정치도 사업도 쓴맛… 다시 본업 복귀
효율 외친 DOGE 사실상 실패작
즉흥적 목표에 무차별 해고 잣대
정치도 사업도 쓴맛… 다시 본업 복귀
효율 외친 DOGE 사실상 실패작
즉흥적 목표에 무차별 해고 잣대
AFP연합뉴스
“공화당 정치인들은 오랫동안 정부효율부(DOGE)의 목표를 꿈꿔 왔다. DOGE는 관료주의를 해체하고 과도한 규제를 축소하며 낭비적인 지출을 삭감해 연방정부의 구조를 바꿀 것이다. 우리 시대의 맨해튼 프로젝트가 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대선에서 승리한 뒤 당선인 신분으로 낸 성명에서 DOGE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핵무기 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에 비유하며 이렇게 말했다. 적의 항전 의지를 꺾은 핵폭탄처럼 DOGE가 연방정부의 ‘딥스테이트’(기득권 관료집단)를 무력화할 것이라고 트럼프는 기대했다. 그가 DOGE 수장으로 지명한 일론 머스크(사진)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연방정부 예산에서 2조 달러(약 2800조원)를 삭감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이 목표액은 머스크가 즉흥적으로 제시한 금액이었다.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은 지난 3월 팟캐스트 방송에서 “당초 합의는 1조 달러를 삭감하겠다고 발표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후 머스크는 목표액을 1조 달러로 정정했지만 이마저 5분의 1도 달성하지 못한 채 지난 1일(현지시간) 백악관 각료회의에서 작별을 고하며 테슬라 경영 일선으로 돌아갔다.
트럼프는 집권 2기 출범 첫날인 지난 1월 20일 DOGE를 신설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수장 머스크에게 ‘특별 공무원’ 지위를 부여했다. 2022년 소셜미디어 트위터를 인수해 지금의 엑스로 개조하는 과정에서 절반에 가까운 직원을 해고했던 머스크에게도 연방정부 구조조정 권한은 기업 경영에서 경험하지 못한 막강한 힘이었다. 머스크는 그 힘을 마음껏 휘두르며 ‘피의 숙청’을 시작했다.
머스크는 실리콘밸리 벤처 금융인들과 자금을 모아 젊은 IT 전문가들을 채용해 각 부처에 파견한 뒤 해당 조직의 효율성을 진단하도록 지시했고, 이를 토대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대외원조 담당 부처인 국제개발처(USAID)와 소비자금융보호국을 사실상 해체했고, 인사관리처를 장악해 연방정부에서 경력 1년 미만의 수습 직원 대부분을 해고했다.
‘피의 숙청’ 절세 효과는 불확실
지난 1월 트럼프 행정부에서 처음 단행된 공무원 권고사직을 통해 십수만명이 옷을 벗었다. 여기에는 국립보건원의 연구소장 6명과 연방항공청 고위 인사 10여명, 재무부의 재정 시스템 운영에 관여한 관리자 200명 이상을 포함해 분야별로 숙련도 높은 인력 상당수가 포함됐다. 이런 대규모 구조조정에도 머스크가 제시한 예산 절감 목표액 달성은 어렵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DOGE는 출범 4개월째인 이달 20일 홈페이지에 예산 삭감 누적액이 1700억 달러(약 238조원)라고 밝혔다. 이는 머스크가 하향 조정한 목표액인 1조 달러의 20%에도 이르지 못한 금액이다. 지금 속도라면 DOGE가 업무를 종료하는 내년 7월 4일 제250주년 미국 독립기념일까지 목표액에 도달할 수 없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DOGE가 주장하는 예산 삭감액에서 검증되는 항목은 일부에 불과하다”며 “(트럼프 2기 출범 전) 연방정부에서 이미 계약 만료가 확정돼 지출을 줄인 항목도 DOGE의 예산 삭감액에 포함됐다”고 지적했다.
지난 2월 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인사관리처 청사 앞에서 한 여성이 일론 머스크 정부효율부(DOGE) 수장의 연방정부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팻말을 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머스크 주도의 연방정부 구조조정은 거센 역풍을 불렀다. 연방 기관 청사가 많은 워싱턴DC에서만 실업자가 늘어나는 듯하더니 곧 와이오밍·아이오와주의 국립공원 관리자들이 대량 해고됐고, 퇴역 군인의 정신건강을 지원하는 인력들이 전국에서 줄어들자 공화당원들까지 반발하고 나섰다. 미국 밖에선 영국과 독일 등 주요 동맹국의 극우 정당을 공개 지지한 머스크의 정치 개입에 항의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반발 여론은 경제적 손실로 이어졌다. 전기차 이용률이 높은 미국 캘리포니아주와 서유럽에서 테슬라 불매운동이 일어나자 머스크의 지분 가치도 하락했다. 블룸버그 억만장자 지수에서 지난해 12월 4860억 달러(약 680조원)로 사상 최고액에 도달한 머스크의 자산 평가액은 트럼프의 상호관세 발표 여파가 맞물린 지난 4월 2900억 달러(약 406조원)까지 감소했다. ‘맨해튼 프로젝트’라던 DOGE의 핵폭탄이 머스크에게 떨어져 자산의 40%를 날려버린 것이다.
‘자산 핵폭탄’ 맞고 본업에 집중
2월 11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5살 아들을 목말 태운 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일론 머스크. AFP연합뉴스
머스크는 백악관을 떠난 뒤에도 연간 130일까지 보장되는 ‘특별 공무원’직을 유지하고 있다. FT는 “머스크가 몇 번의 전화 통화로만 DOGE 업무를 이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머스크는 이제 테슬라 전기차보다 스페이스X의 스타링크 위성인터넷 같은 우주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스페이스X는 이달에만 인도와 방글라데시, 콩고로 스타링크 서비스 국가를 확대했다. 머스크는 지난주 트럼프의 중동 순방에 동행해 사우디아라비아 항공기·선박 내 스타링크 사업 계약을 체결했다. 아랍에미리트(UAE) 에미레이트항공도 기내 스타링크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스페이스X는 지난 6일 연방항공청으로부터 우주선 발사 횟수를 연간 5회에서 25회로 늘리는 허가도 받아냈다. 이로 인해 머스크가 정부 인허가를 필요로 하는 우주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공직을 자청한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워싱턴포스트는 “일부 국가가 스타링크 계약을 관세 협상의 요건으로 인식하고 있다”며 “머스크가 공무원 신분으로 개인 사업을 외국 정부와 논의했다면 이해충돌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