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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화 절상’ 미중 무역 협상 테이블에 올랐나
[커버스토리 : 관세전쟁 일시멈춤]



‘관세맨’ 도널드 트럼프가 강경노선을 버린 것을 두고 논란이 분분하다. 중국과의 ‘관세 휴전’에 합의한 이유는 무엇이며 미·중 고위급 무역 협상의 승자는 누구인지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5월 초 일어난 대만달러 급등부터 “중국 시장 개방이 가장 큰 성과”라는 트럼프의 발언까지 이번 관세전쟁의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힘의 싸움 ‘환율’이 있다.
패닉 빠진 대만달러“달러 대비 대만달러(USD/TWD) 하락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

지난 5월 5일 블룸버그 전략가는 패닉에 빠진 대만 외환시장을 이렇게 진단했다. 이달 1일 32.077이던 대만달러 환율은 2일과 5일 불과 2거래일 만에 8% 넘게 급락해 장중 29.458까지 떨어졌다. 2일 하루 낙폭만 4.15%로 1980년대 이후 최대였다.


통상 연간 변동폭이 6~7%에 불과한 대만달러가 이틀 만에 9% 가까이 하락한 셈이다. 나인티원자산운용의 마크 레저에번스는 “평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라며 “놀라운 움직임”이라고 평가했다.

시장에선 즉각 의심이 제기됐다. 대만이 미국과의 무역 협상에서 통화 절상 요구를 받았고 이에 따라 강세를 묵인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현지 매체도 “대만 정부가 대만달러 강세를 일정 수준 용인할 것”이라는 보도를 내놨다. 투자자들은 ‘합의설’에 긴장했고 환전 수요가 급증하면서 일부 은행 앱은 접속이 중단됐다.

라이칭더 대만 총통은 “미국과의 무역적자는 환율과 무관하다”며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행위를 중단하라”고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정작 중앙은행은 환율 방어에 나서지 않았다. 시장은 이를 묵시적 수용으로 읽었다. ‘제2의 플라자 합의설’이 퍼졌고 미국이 아시아 국가들을 상대로 환율 절상 압박을 본격화했다는 경계심은 한국과 일본, 중국까지 번졌다.

5월 초 연휴로 거래가 없었던 한국 금융시장은 시장이 열린 7일 충격을 반영했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장중 1300원대 후반까지 급락했다. 원·달러 환율이 1300원대로 떨어진 것은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6개월 만이었다.

대만 정부가 부인했지만 대만발 ‘통화 합의설’이 한국 시장에도 영향을 미친 셈이다. 스티븐 젠 유라이즌 SLJ 대표는 최근 투자자 노트에서
“아시아 통화 환율에서 앞으로 몇 분기 내 또 다른 급락이 나타날 수 있다”
고 경고했다.

그는 “이미 중국에서만 2조5000억 달러(약 3490조원)어치의 눈이 쌓여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 외에도 대만, 말레이시아, 한국 등에서 매년 5000억 달러 규모의 무역흑자가 발생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달러 자산은 본국으로 송금되지 않고 기업 예금으로 남아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지난해 11월 미국 재무부는 중국, 일본, 한국, 대만, 베트남, 싱가포르를 환율 모니터링 대상국으로 지정했다. 시장에선 이 조치 이후 달러 대비 통화 절상 압력이 무역협상 테이블 위에 오를 수 있다는 해석이 이어졌다.

블룸버그 전략가 메리 니콜라는 “무역전쟁 완화 기대와 달러 약세로 아시아 통화는 이례적 강세 흐름을 타고 있지만 중국 위안화가 의미 있게 절상되지 않는다면 이 랠리는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짚었다.

시장의 시선은 결국 중국, 위안화로 향했다. 제프리스의 외환 책임자 브래드 베히텔은 “(대만 통화의 강세가) 미국과 중국, 또는 미국과 아시아 지역 간의 일종의 통화 합의를 예고하는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미·중 관세 휴전의 속내?‘깜짝’ 발표는 그주 금요일에 나왔다. 5월 8일(현지 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영국과의 무역 합의를 발표한 자리에서 “중국은 (우리와) 합의하기를 정말로 원한다”고 말했다. 그는 협의가 잘되면 중국에 대한 관세를 낮출 수 있냐는 질문에 “그럴 수도 있다”고 답했다.

이틀 뒤 미·중 양국은 10∼11일 스위스 고위급 협의에서 90일간의 관세 인하를 발표했다. 트럼프발 관세전쟁 이후 첫 공식 휴전이었다. 트럼프는 협상 결과를 발표하며 “이번 협상의 가장 큰 성과는 중국의 시장 개방”이라고 선언했다. 그는 “문서화가 필요하지만 그들이 중국을 완전히 개방하기로 합의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트럼프가 언급한 ‘개방’의 구체적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환율’, 즉 위안화 절상이 협상 테이블에 있었을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중국에 위안화 절상은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다. 수출 둔화와 디플레이션이라는 이중 악재 속에서 위안화 절하는 곧 ‘가격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다. 실제 지난 4월 8일 미국이 대중 상호관세 부과 방침을 발표하자 중국은 위안화 절하를 유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인민은행은 달러·위안 기준환율을 7.2038위안으로 고시해 전날보다 절하했고 이는 2023년 9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수출기업 보호를 위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복잡하다. 중국은 더 이상 수출 의존만으로 버틸 수 없는 구조다. 부동산 시장의 장기 침체, 고령화, 청년실업, 자산 시장의 부진 등으로 내수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다. 국민의 소비 여력은 위축돼 있고 정부가 원하는 소비 전환은 정체돼 있다.

여기에 고율 관세라는 외부 충격까지 겹치자 ‘환율’이라는 레버리지를 어떻게 써야 할지 중국 당국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중국 정부 입장에선 “절상은 미국에 대한 외교적 제스처가 될 수 있지만 과속은 수출경제를 흔들 수 있다”는 딜레마에 빠진 셈이다.

그렇다면 해법은 거꾸로 나올 수 있다. 위안화가 점진적으로 절상되면 해외에서 들여오는 물건 값(수입물가)이 낮아져 물가 전반이 안정된다. 물가가 안정되면 정부는 금리를 낮춰 경기를 부양할 여유가 생긴다. 그렇게 되면 기업과 가계의 대출 부담이 줄고 내수 소비도 점차 살아날 수 있다.

이 구조는 1985년 ‘플라자 합의’ 당시 일본의 선택과 닮아 있다. 당시 일본은 미국의 요구에 따라 엔화를 두 배 절상했고 일본은행은 금리를 다섯 차례 인하했다. 이 결과 일본의 증시는 몇 배로 치솟고 내수 소비가 크게 늘어났다. 이후 ‘잃어버린 30년’이란 거품 붕괴 후폭풍이 따랐지만 단기적으로는 절상이 경기부양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중국도 같은 계산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질서 있는’ 위안화 절상은 내수 회복의 발판이자 자본 유출을 막는 안전장치, 그리고 미국과의 협상에서 쓸 수 있는 외교 카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중국은 지난해 7월에도 외국인 자금 유출을 차단하고 내국인 자산 이탈을 막기 위해 ‘절상 카드’를 활용한 바 있다.

증권시보는 일부 애널리스트를 인용해 “중국과 미국이 임시 무역 합의에 도달한 만큼 단기적으로 위안화 추가 상승 여력은 여전히 있다”고 보도했다. 또한 “달러화와 미국 자산의 전망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 수출업체들이 위안화를 매수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이는 위안화의 추가 강세를 지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게이브칼의 경제학자 웨이 허는 “위안화가 다소 강세를 보이는 것은 미국에 대한 선의(goodwill)의 표현이자 무역 협상을 촉진하는 긍정적 신호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투자자 메모에서 “이는 성장에 타격을 주지 않으면서도 중국 경제에 대한 신뢰 회복의 신호로 작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제 핵심은 향후 며칠 또는 몇 주 동안 중앙은행이 기준환율을 계속 강세 방향으로 고시할지 여부”라며 “아마도 그럴 가능성이 높지만 그 폭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도 영향권 가시 ‘환율전쟁의 기류’는 한국도 피해가지 못했다. 5월 초 시장은 원·달러 환율 급락의 원인으로 대만달러 강세와 미국의 통화 압박 루머를 꼽았다. 하지만 일주일 뒤
원화 급등의 이면에 외교적 협의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정황이 공개
되면서 해석이 달라졌다.

5월 14일 야간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한때 1400원을 하회했고 오후 5시 6분 기준 1396.5원까지 급락했다. 단순한 기술적 조정으로 보기 어려운 흐름이었다.

블룸버그는 이날 한국 기획재정부 최지영 차관보가 5월 5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미국 재무부 로버트 캐프로스 차관보와 만나 외환시장 운영 원칙에 대해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시장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달러인덱스는 단시간 내 약세로 전환됐고 원화는 다시 강세 흐름을 탔다. 시장은 미국이 한국에 대해 원화 절상을 요구했을 가능성, 혹은 적어도 달러 강세를 견제할 수 있는 ‘공감대’를 형성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미국과의 무역 협상에서 성공을 거두려면 환율 강세를 허용하거나 심지어 장려해야 할 것이란 추정이었다.

단스케은행의 분석가인 모하마드 알사라프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한·미 회담 소식은 트럼프 행정부가 달러 약세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시장의 우려를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신 보도를 통해서야 뒤늦게 협의 사실이 알려진 게 부적절하다는 비판도 나왔다. 금융권 관계자는 “만약 당시 협의 결과로 외환당국이 개입했거나 정보 유출로 인해 사전 환투기가 있었다면 이는 정부의 무책임한 대응”이라고 지적했다.
21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에 시황이 표시되고 있다. 달러·원 환율은 전날보다 5.40원 내린 1,387.00원을 보였다./사진=한국경제신문 김범준 기자

정부는 5월 22일, 미국이 원화 절상을 요구했다는 구체적 보도가 나오고 나서야 공식 해명자료를 냈다.

기획재정부는 보도 설명자료를 통해
“미국과의 환율 협의는 실무 단계에서 진행 중”
이라며 “(한미) 양국은 외환시장 운영 원칙과 환율 정책에 대해 상호 간의 이해를 공유하고 다양한 협의 의제를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 이상 구체적으로 정해진 내용은 전혀 없다”라고도 덧붙였습니다.

미국 재무부와 다양한 경로로 원·달러 환율에 대한 실무 협의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안건과 내용은 철저히 비공개란 입장을 되풀이한 셈이다.
트럼프의 최종 목표는 시장 전문가들은 명시적으로는 없지만, 트럼프의 관세 전쟁의 종착지가 환율이라고 강조한다. 트럼프도 이를 숨기지 않는다. 지난 4월 20일(현지 시간)엔 SNS를 통해 ‘8대 비관세 부정행위’를 언급하며 가장 먼저 ‘환율 조작’을 지목했다. 중국, 일본, 한국처럼 무역흑자를 내는 국가는 해당국 통화의 가치를 인위적으로 낮춰 수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트럼프의 오랜 주장이다.

트럼프는 재집권 이후 관세와 환율을 동시에 밀어붙이며 무역 불균형을 바로잡겠다는 전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그 배경은 명확하다. 미국의 쌍둥이 적자(재정적자와 무역적자)다.


구조적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한 트럼프식 해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관세로 수입을 억제하고 다른 하나는 달러 가치를 떨어뜨려 수출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다.


1985년 플라자 합의가 그 전례다. 미국은 주요 4개국(프랑스·서독·영국·일본)을 뉴욕 플라자호텔로 불러 통화 절상을 압박했고 엔화 가치는 2년 만에 두 배 가까이 올랐다. 이른바 ‘제2의 플라자 합의’가 부활할 수 있다는 전망은 여기서 비롯된다.

트럼프의 경제 참모진도 같은 맥락의 로드맵을 제시해왔다. 특히 스티븐 미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글로벌 무역 시스템 재구성을 위한 사용자 가이드’는 미국의 관세전쟁이 단순한 정치적 쇼가 아니라 달러 약세를 통한 쌍둥이 적자 해소라는 경제 전략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미국은 관세를 무기로 각국 정부가 자국 통화를 절상하고, 달러는 약세를 보이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모든 흐름은
트럼프가 환율 문제를 무역전쟁의 핵심 무기로 삼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 트럼프가 말한 ‘중국의 시장 개방’이 관세 완화나 투자 유입만이 아니라 위안화 절상까지 포함된 통화적 양보였던 게 아니냐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변정규 미즈호은행 자금실 그룹장은 “트럼프의 경제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선 부채 감축이 전제돼야 한다”며 “이를 위해선 두 가지 조건, 즉 미국 중앙은행(Fed)의 저금리 기조와 주요 교역국의 환율이 약달러 방향으로 전환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정채희 기자 [email protected]

한경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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