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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격 미사일 개발 이끈 이진익 원장 ‘총알로 날아가는 총알을 맞힌다.’ 미사일로 미사일을 요격하는 과정을 이렇게 비유한다. 그만큼 미사일 방어는 어렵다. 북한의 핵·미사일을 머리에 얹고 사는 대한민국에 미사일 방어는 절체절명의 과제다. 북한은 유사시 다양한 종류의 미사일을 총동원한 섞어쏘기로 불바다로 만들겠다며 잔뜩 벼르고 있다. 핵탄두 탑재 가능성을 생각하면 단 한 발의 북한 미사일이라도 놓쳐선 안 된다.

이진익 국방과학연구소(ADD) 제1연구원장이 자신이 개발한 천궁과 L-SAM 모형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김성태 객원기자

이진익 국방과학연구소(ADD) 제1연구원장은 “우리의 미사일 방어망 개발은 늘 절박하다”고 말했다. 그는 대한한국 방공체계 개발사의 산 증인이다. 야전 방공체계인 천마에서부터 ‘한국형 스팅어(휴대용 지대공 미사일)’ 신궁, 함대공 미사일 해궁, 중거리 방공체계인 천궁, 그리고 ‘한국형 사드’인 장거리 지대공 유도무기(L-SAM)까지의 연구·개발에 빠지지 않고 참가했다.

천궁은 아랍에미리트(UAE)·사우디아라비아·이집트에 수출됐다. L-SAM은 여러 국가에서 탐내고 있다.

미사일 방어 개발이 절실한 이유 북한 핵·미사일 머리에 얹고 사는
한국에서 미사일 방어는 생존과제
어려운 환경에서 반드시 명중해야


Q : 왜 절박한가.

A :
미국은 무기를 팔려고 개발한다. 그러나 한국은 살아남으려고 무기를 개발한다. 내 가족과 지인, 우리 사회가 북한의 핵·미사일에도 발 뻗고 편히 자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한반도 전장은 너무 좁다. 방어해야 할 곳이 너무 가깝고, 대응 시간이 너무 짧다. 시간적 공백과 공간적 공백이 거의 없다. 발견하는 즉시 바로 쏴야 하고, 반드시 명중해야 한다. 그래서 절실할 수밖에 없다. 북한 위협의 강도가 점점 세지고 있다. 반면 미사일 방어 관련 기술은 어디에서 구할 수도 없고,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다. 미국이 관련 무기는 팔지만, 관련 기술은 안 알려주기 때문이다. 지금 미사일 방어 무기체계를 스스로 개발하지 않으면 국가안보를 지키지 못할 수도 있다. 우리 세대가 우리 손으로 끝내야 한다는 책임감이 컸다.
이 원장은 “미사일 요격은 총알로 총알 맞히기보다 더 어렵다”고 토로했다.


Q : 왜 그런가.

A :
탄도미사일이 정점 고도를 지나 땅으로 떨어질 때 아래에선 탄두부만 보이는 데 그 넓이가 야구의 스트라이크존 크기 정도로 작다. 수십㎞를 날아가 수십㎞ 높이에서 내려다 꽂히는 스트라이크존 면적의 적 탄도미사일에 정면으로 부딪치는 게 미사일 요격이다. 적 탄도미사일은 마하 속도로 하강한다.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할 수 없다.
한 치(寸)는 손가락의 긴 마디 하나 정도의 길이다. 미사일 요격의 난이도를 나타내는 표현이지만, 몇 치 비껴가도 미사일 요격에 실패할 수 있다는 게 이 원장의 설명이다.

2023년 5월 30일 충남 태안군 안흥종합시험센터에서 L-SAM의 요격체(미사일)가 발사되고 있다. 당시 L-SAM은 4차 요격 시험에 성공했다. 이후 실전배치를 준비하고 잇다. 뉴스1

L-SAM 요격체가 표적탄(가상 북한 미사일)에 명중하는 장면. 탄두부보다 더 작은 엔진기관을 정확히 타격했다. 국방부 동영상 캡처

ADD는 2023년 5월 30일 충남 태안군 안흥종합시험센터에서 L-SAM의 4차 요격 시험에 성공했다. 박종승 전 ADD 소장은 당시 “L-SAM 요격체(미사일)가 표적탄(가상 북한 미사일)의 탄두부가 아닌 엔진기관만 따로 노려 맞힐 수준으로 정밀도가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이후 L-SAM은 실전배치를 준비하고 있다.


Q : 명중했을 때 기분이 어땠나.

A :
어깨에서 큰 짐을 덜게 돼 안심했다. 연구진은 시험발사 전에는 며칠씩 밤잠을 설친다. 다들 충혈된 눈으로 서로 공감할 뿐 누구 하나 걱정된다는 말을 쉽게 할 수 없을 정도로 긴장된 분위기였다. 각자 엄청난 긴장감과 극도의 부담감을 갖고 최선을 다했기에 요격 시험에서 명중하자 우선 마음이 놓일 수밖에 없다. L-SAM을 함께 개발한 수백 명의 동료와 관계자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절절하게 들었다. 개발 과정에서 볼트 하나가 덜 조여졌어도 실패했을 것이다. 모두 정말 잘 해줬다.”
지난 4일 이스라엘은 예멘의 후티 반군이 발사한 미사일을 요격하지 못했다. 후티 반군의 미사일이 텔아비브 근교에 있는 벤구리온 국제공항에 떨어져 6명이 다쳤다. 자국산 무기로 미사일 방어망을 튼튼하게 쌓은 이스라엘은 실전 경험이 풍부하고 기술 수준이 높다는 평가를 그동안 받아왔다.


Q : 이스라엘이 왜 실패했다고 보나.

A :
정확한 정보가 없어 함부로 단정할 순 없다. 일반적으로 미사일 방어 능력은 무기체계의 성능, 구성품의 신뢰성에 좌우되지만, 운용 기술도 매우 중요하다. 당시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아직 모르겠다. 이스라엘의 실패는 미사일 방어가 정말 어려운 과제라는 사실을 생생하게 보여줬다. 그래서 여러 번 요격 기회를 가지려고 고고도~중고도~저고도로 다층 방어망을 친다.

Q : 예멘 후티 반군이 마하 5(시속 6120㎞) 이상의 극초음속 미사일로 이스라엘 미사일 방어망을 뚫었다고 하는데.

A :
극초음속 미사일은 속도가 매우 빨라서 대응시간이 짧거나 요격 기회가 줄어들 수는 있다. 그러나 한국이 개발한 미사일 방어 체계는 상당히 빠른 탄도미사일에 대한 대응 능력도 갖추고 있다.
북한은 지난 1월 6일 마하12의 신형 극초음속 미사일 발사에 성공했다면서 “그 어떤 조밀한 방어장벽도 효과적으로 뚫는다”고 주장했다. 이제 극초음속 미사일 위협은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 그래서 ADD는 극초음속 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도록 L-SAM을 업그레이드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Q : L-SAM을 비롯한 ‘한국형 미사일 방어 체계(KAMD)’의 장점은.

A :
KAMD는 북한 핵·미사일에 상당한 대응 능력이 있다. 미국을 비롯한 해외의 미사일 방어 체계가 기성복이라면, KAMD는 맞춤복이다. 성능이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다. 한반도 전장 환경에 딱 맞게 만들었다. 군의 운용요구조건(ROC)보다 단 1%라도 더 높이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비싸지도 않다. 그래서 세계 방산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거래가 까다롭다는 중동에서 우리 천궁을 선택했다는 사실은 한국의 미사일 방어 무기가 세계에서 인정받았다는 의미다. 순수 국내 기술로 만들었기 때문에 유지·보수는 물론 성능 개선·개량을 언제든지 신속하게 할 수 있다. KAMD 덕분에 국민이 안심하게 생활할 수 있고, 위기 상황에선 국민 생명과 국가 주요자산을 보호할 수 있다.
한국 미사일 개발의 성지 안흥
서해와 붙은 충남 태안군 안흥종합시험센터는 한국 미사일 개발의 성지(聖地)다. 1978년 최초의 국산 지대지 미사일인 백곰을 시작으로 수많은 미사일을 여기서 시험했다. 안전 문제 때문에 미사일 발사 전에는 태안 앞바다를 비워야 한다. 그런데 이곳은 어민에겐 삶의 터전인 어장이기도 하다.


Q : 어민들 통제가 어렵다고 들었다.

A :
미사일 발사 시간대에 시험센터 주변 해상을 완벽히 통제하기가 쉽지 않다. 어선 수십 척이 밖으로 나가도록 유도했지만, 1~2척이 한동안 남아있는 바람에 초긴장 상태에서 하염없이 대기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러면서도 이 원장은 “어민들의 도움을 크게 받기도 했다”며 웃었다.


Q : 무슨 일이 있었나.

A :
천궁 개발 초기에 여러 번 실패했다. 천궁은 측추력기(비행체의 측면 방향으로 추력을 발생하는 장치)로 자세와 방향을 제어하도록 설계됐다. 어느 선진국도 시도하지 않은 새로운 방식의 측추력기였다. 실패 원인을 확정할 수 없어 충격에 빠졌다. 어느 어부가 시험센터 앞바다에서 미사일 잔해물을 건졌다고 연락해왔다. 연구진이 잔해물을 분해했더니 사격시험한 천궁 미사일이었다. 추진기관을 살펴보는 순간 연소관의 노즐(유체의 방향과 속도 조절 장치) 조립부 근처에서 구멍을 발견했다. 설계를 처음부터 재검토한 뒤 새 공법으로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었다. 그 어민이 참 고마웠다. 해상 통제에 적극적으로 협조해 준 어민들께 이 기회를 빌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ADD 본소 자리의 옛 이름은 무내미다. 물가 남쪽 마을(물남이→무내미)이란 뜻이다. 경치가 아름답다. 그런데 이 원장을 비롯한 ADD 연구진은 무내미 관련 추억이 떠오르는 게 거의 없다고 한다. 늘 연구·개발 업무에 치여서 생활하기 때문이다. 이 원장은 “퇴근해 침대에 누우면 그 직전까지 씨름하던 프로그래밍이 눈에 아른거렸다”고 말했다.

그는 틈만 나면 한반도 지도를 본다. 한반도를 가로 200㎞, 세로 800㎞ 공간으로 단순하게 그려놓고 그 안에서 북한과의 수 싸움을 끊임없이 하면서 미사일 방어 아이디어를 찾으려는 목적에서다.

이 원장은 스트레스를 축구로 풀었다고 한다. 멋쩍은 표정으로 “미사일 방어를 연구하지만, 축구 포지션은 수비수가 아닌 공격수”라고 말했다. ADD 축구동호회 회장도 맡고 있다. 지난해 사비를 쾌척해 자체 리그 최우수 선수에게 주는 ‘이진익상’을 제정했다.

되돌아보면 아쉬운 마음 가득 늘 밤늦은 연구·개발에 추억도 없어
늘 참아준 가족에게 그저 미안할 뿐
그러나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할 일

이진익 국방과학연구소(ADD) 제1연구원장이 ADD에서 '국방과학연구소' 현판 앞에서 서 있다. 김성태 객원기자


Q : 연구에 집중하느라 가족들에게 소홀하지 않았나.

A :
미안하다. 새벽에 출근하거나, 새벽에 퇴근한 날이 비일비재했다. 군인이 아니지만,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면 우리 연구원들도 연구소로 재빨리 들어가야 한다. 가족 중 누가 아프거나 아빠의 손길이 급히 필요한 일이 있을 때 이루 말할 수 없이 마음이 무겁다. 그래도 가족이 이해해줘 고맙다. 어느덧 퇴직이 다가오는데, 되돌아보면 아쉽다.
그러면서도 이 원장은 “미사일 방어는 누군가 꼭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절대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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