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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싫어서 떠나는 이공계 엘리트]
“美, 기술혁신·연구 중요하게 여기고
상응하는 사회적 존중·기회 주어져”
이공계 유학생 인터뷰서 한목소리
게티이미지뱅크

한국에서 이공계열 전공자들이 미국 등 해외 대학원으로 향하는 ‘인재 이탈’ 현상은 복합적인 원인이 있다. 우선 해외 대학원의 장학금 수준이 국내보다 높고, 누가 들어도 알 만한 빅테크 기업에 취업할 가능성도 크다. 실제 해외로 떠난 학생들은 한국에 돌아오지 않고 해외 대학에 머물면서 연구하거나 글로벌 기업에 취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1960, 70년대 애국심 때문에 해외 학위를 갖고 고국으로 돌아오는 것을 바라는 시대는 끝났다. 국내 이공계 인재 유출은 대학뿐 아니라 기업 및 국가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국민일보는 최근 미국에서 석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이공계 유학생 5명을 서면 인터뷰했다. 이들은 하나같이 학위를 마친 뒤 한국에 돌아올 생각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한국을 떠난 이유에 대해 ‘고연봉의 미국 기업에 취업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공통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연구를 자유롭게 하기도 어렵고, 충분한 연구비도 없는 한국보다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화학공학을 전공한 A씨(24)는 미국 워싱턴의 한 대학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학위를 딴 뒤에는 한국에 돌아오지 않고 미국에서 취업할 생각이다. A씨는 22일 “한국에서는 공학자에 대한 인식이 상대적으로 낮은 반면 미국은 기술 혁신과 연구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존중과 기회가 주어지는 환경”이라며 “같은 분야에서 비슷한 업무를 하더라도 미국에서는 연구자나 엔지니어로서 더 나은 보상을 받을 수 있고, 개인 삶과 커리어 사이의 균형도 더 잘 맞춰져 있다고 느껴진다”고 말했다.

대학원생 신분으로 학비나 생활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큰 장점으로 작용했다. A씨는 “미국에서는 대학원생이 조교로 일하며 등록금 전액과 생활비를 지원받는 경우가 일반적”이라며 “현재 등록금 면제와 함께 생활비를 지원받고 있어 생활비를 벌기 위해 다른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은 장시간 근무, 위계적인 조직 문화 등으로 연구자가 자율성을 갖고 일하기 어려운 환경”이라며 “한국은 상대적으로 교수 중심의 수직적 연구 구조가 강하다는 인상을 받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보스턴에서 생물학 박사 과정 중인 B씨(28)는 ‘연구하기 좋은 환경’을 유학 결정의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그는 “교수가 돼 활발하게 연구를 하는 것이 목표인데, 연구비와 주위 환경을 고려했을 때 미국에서 연구 커리어를 쌓아 나가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고 생각했다”며 “한국에서 이공계 최상위권 학생들은 의과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미국은 연구에 뜻이 있어 대학원에 진학하는 뛰어난 인재들이 많다. 그런 환경적 차이가 크다”고 말했다.


B씨는 “한국과 미국의 연구비 규모는 차원이 다르고, 이 같은 차이는 실험 등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 있어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한국에서 박사과정을 하는 친구들을 보면 하고 싶은 실험을 돈 때문에 하지 못해서 절망하는 경우를 종종 봤는데, 미국 연구실에서 그런 경우는 본 적이 없다”고 전했다.

한국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친 뒤 미국 대학에서 박사후연구원(포닥)을 하고 있는 C씨(34)에게 한국과 미국 대학원생의 신분 차이는 더 크게 느껴졌다. 그는 “한국 대학원생은 임금의 상한선이 있는 반면 미국은 대학원생 노조, 포닥 노조가 따로 있다”며 “노조가 학교와 협상해서 최저임금을 정하기 때문에 생활에 어려움이 없다”고 했다.

미국은 대학마다 석박사, 포닥 급여를 홈페이지에 게시해놓는다. 매사추세츠공대(MIT)의 석박사 급여는 월 520만~580만원 수준이다. 국내 대학원생의 인건비는 지도교수의 과제 수주 상황에 따라 제각각이다. 올해부터 정부가 이공계 연구생활장려금 지원 사업인 ‘한국형 스타이펜드’를 도입했지만 석사과정은 월 80만원, 박사과정은 월 110만원에 그친다.

C씨는 “한국에서는 아무리 대학원생 능력이 뛰어나도 연구실에 따라 인건비가 천차만별”이라며 “능력 있는 대학원생 입장에서는 ‘내가 이 돈을 받으면서 굳이 한국에 있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드는 게 당연하다”고 했다.

한국 대학이 교수 임용 때 해외 대학 출신을 선호하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C씨는 “일본의 경우 일본 대학을 나와 교수를 하는 사람들이 주류다. 하지만 한국 대학은 대부분 해외파 출신”이라며 “해외 대학 출신을 우선적으로 교수로 임용하는 데 누가 국내 대학원을 졸업하고 싶겠느냐”고 말했다. 이공계 출신이 전공을 살려 갈 수 있는 일자리가 많지 않다는 점도 문제다. C씨는 “미국에서는 빅테크들이 학교로 취업설명회를 와서 간단한 서류만 작성하면 그걸로 서류 심사를 하고 면접을 본다”며 “이공계 전공자 입장에서는 한국에서 일자리 구하는 것보다 미국에서 찾는 게 훨씬 쉽다”고 밝혔다.

D씨는 “많은 학생이 한국에 돌아가는 것을 망설이는 이유는 단지 정책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며 “미국에서는 진로 선택의 폭이 훨씬 넓고 다양한 가능성을 탐색할 수 있는 점이 큰 차이”라고 했다. E씨 역시 “한국에는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고, 전문성에 대해 적절한 대우를 하는 양질의 일자리가 많지 않다”며 “한국은 미국보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학업적으로 지원하는 경우가 드물고, 이 때문에 안정적으로 성과가 나오는 연구를 주로 하게 되는 것도 아쉽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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