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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15일 충남 당진시 행담도휴게소에서 개봉지구대 이아영 경사 등이 치매환자를 부축하는 모습. 개봉지구대 제공

“술 취한 할아버지가 개봉고가 인근 도로를 걸어 다니세요.”

서울 최저기온이 영상 2도까지 갑자기 떨어졌던 지난달 15일 새벽 2시32분, 경찰은 한 노인이 서울 구로구 개봉고가 밑 차도를 걷고 있다는 신고를 접수했다. 신고자들이 노인을 부축해 인도로 데려가지 않았다면 인명피해로 이어질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노인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개봉지구대 소속 이아영(30) 경사에게 “공사 현장 가야 한다”는 말만 반복했다. 집이 어디인지 물었더니 처음엔 “(서울) 고척동”이라고 했다가 나중엔 “(경기) 부천시”라고 했다.

소지품은 명함과 메모지로 가득 찬 지갑이 전부였다. 이 경사와 동료들은 지갑 속 모든 연락처로 전화를 걸었고, 노인이 세 들어 사는 집주인과 연락이 닿았다. 노인은 70대 김아무개씨였고 사는 곳은 개봉동에서 120㎞ 떨어진 충남 서산이었다. 열흘이나 집을 비웠다는 김씨가 어쩌다 이곳까지 오게 됐는지 아는 이는 없었다. 주변 임시 보호시설을 찾지 못한 개봉지구대는 이날 새벽 4시30분께 김씨를 직접 집에 바래다주기로 했다. 경찰이 62㎞가량 떨어진 서해안고속도로 행담도휴게소까지 김씨를 데리고 가자, 서산 지역 노인복지센터 직원들이 마중 나와 집까지 이동했다.

김씨는 홀로 사는 경증 치매 환자다. 그를 돌보던 사회복지사의 설명을 들어보니, 김씨는 평소에 “서울에 가족이 한명 있다”고 주위에 말했으나 기록상 가족은 없다. 김씨는 이전에도 주변에 “서울에 다녀온다”며 사나흘씩 나갔다가 돌아왔다고 한다.

이런 ‘배회’ 증상은 인지기능 저하로 시간과 장소, 상황 등을 인식하는 ‘지남력’이 떨어지면서 발생한다. 내가 몇시간 동안 얼마나 이동했는지 알기 어려운 상태로 이동하다가 방향 감각이 흐려져 목적지와 다른 곳까지 간다. 배회 증상은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 2022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 연평균 88명이 실종신고 이후 숨진 채 발견됐다.

치매환자 실종 신고는 매년 봄철부터 부쩍 늘어난다. 경찰청 자료를 보면, 지난해 치매 환자 월별 실종신고는 1월 1022건에서 3월 1241건을 거쳐 4월 1473건으로 증가했다. 10월까지 매월 1400건 안팎이었던 실종신고는 11월이 돼서야 1158건으로 감소했다. 2022년과 2023년에는 5월에 실종신고가 급증(각각 1480건, 1408건)했다. 최호진 한양대 구리병원 교수(신경과)는 “치매 환자는 본능적으로 어둠을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다”며 “밤이 길어지는 계절에 야외로 나가려는 시도가 다소 줄어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선 경찰들은 실종 치매노인의 빠른 발견을 위해 개인정보 사전등록이나 배회감지기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사전등록제는 치매노인의 지문·사진·이름·연락처 등을 미리 등록해 놓는 제도다. 지구대는 사전등록 정보를 바탕으로 자주 실종되는 치매환자를 정리해 관리하는데, 오래된 지문이나 얼굴 사진 등을 최신 상태로 바꿔놓는 게 좋다. 배회감지기는 위치정보시스템(GPS) 기반으로 치매 환자가 설정 권역을 벗어나면 알려주는 기기로, 이를 활용하면 평균 11시간인 실종 치매 환자 발견 시간이 55분까지 줄어든다. 치매안심센터 등을 통해 신청하면 장기요양보험으로 이용료를 지원받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 지원과 함께 사회적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최호진 교수는 “배회 대책으로 환자의 이동을 억제하는 건 최후의 수단이 돼야 한다”며 “평소 환자 상태를 관찰해 신체·정신적 요구를 미리 해소하고, 주변 환경을 정비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허준수 숭실대 교수(사회복지학)는 “보호자 없이 혼자 사는 가구는 정보가 없어 배회감지기를 신청도 못 하는 경우가 있다”며 “지역사회에 누가 치매 증상이 있는지 알고,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어떻게 안전한 환경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할 때”라고 말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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