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한겨레21, ‘청탁 정황’ 명씨 카톡 입수
2022년 8월31일 윤석열 당시 대통령이 경남 창원시 진해구 부산신항 한진물류터미널을 방문해 부산신항 시설을 둘러본 뒤 제7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현대로템은 2005년 이후 코레일의 케이티엑스(KTX) 고속철도 차량 입찰에 단독 응찰해왔다. 이에 업계 안팎에선 이 회사의 독점적 지위로 인해 수주 가격이 높아진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코레일과 에스알(SR)의 동력분산식 고속철도 차량 제작·정비 사업에 경쟁입찰 체제가 도입됐다. 현대로템은 코레일에서 발주하는 7100억원대 고속철도 차량 사업과 에스알의 1조860억원대 입찰을 놓고 ‘우진산전-탈고 컨소시엄’과 경쟁하는 처지가 됐다. 경남 창원에 공장이 있는 현대로템이 김영선 당시 국민의힘 의원(창원 의창)과 김 전 의원의 핵심 측근이자 이 지역 정가의 숨은 ‘실세’인 명태균씨에게 청탁을 넣은 배경이다.

한겨레21이 단독 입수한 명씨의 카카오톡 대화 기록과 피시(PC) 저장 자료를 보면 2022년 10월11일 오후 6시30분 ‘이용배’(현대로템 대표이사) 명의로 여의도의 한 고급 중식당이 예약돼 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용배 대표가 명씨 및 김영선 전 의원과 함께 저녁을 먹은 날이다. 명씨는 이날 아침 자신의 지인에게 ‘로템 대표이사를 만난다’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이후 현대로템은 명씨에게 구체적인 청탁 작업을 한다. 여의도 중식당 만찬 엿새 뒤인 2022년 10월17일 현대로템의 채아무개 상무는 명씨에게 ‘국내 고속철도 현안’이라는 제목의 문건을 전송하며 “꼭 좀 부탁드립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 문건엔 11월 예정인 코레일의 ‘EMU-320’ 동력분산식 고속철도 차량 136량 입찰 공고에 ‘우진산전-탈고’가 참여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주장이 담겨 있다. 국민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업체의 진입 시도를 막아야 하며 전세계 동력분산식 고속철도 제작기술 보유 국가는 모두 자국 시장을 보호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현재 코레일의 입찰평가 방식으로는 품질·적기개통을 담보하기가 불가하다고 했다.

현대로템의 채아무개 상무가 2022년 10월17일 명씨에게 보낸 ‘국내 고속철도 현안’이라는 제목의 문건.

그러면서 ‘건의사항’으로 “현재 코레일이 경쟁입찰 방식을 두고 감사원에 사전 컨설팅”을 하고 있다며 사전 컨설팅 결과에 따라 경쟁사의 입찰 제한 여부가 결정되므로 “감사원 현장 실사 및 이해관계자 적극적 의견 청취 필요”라고 적었다. 현대로템으로서는 감사원의 사전 컨설팅을 통해 경쟁사의 입찰을 제한하자는 판단이 나오는 것이 최상의 시나리오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문건의 흥미로운 점은 마지막에 적힌 세가지 참고사항이다. 첫째, 문건에 담겨 있는 감사원에 대한 ‘건의사항’이 이미 “제7차 8월31일 민생현안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현대로템 대표이사(이용배)가 건의했던 사안”이라고 적어둔 것이다. 창원에서 열린 제7차 민생현안 비상경제대책회의는 윤석열 당시 대통령이 주최했는데, 이때 이용배 대표이사가 대통령에게 직접 건의한 사안이라는 사실을 명기한 것으로 보인다.

두번째는 당시 나희승 코레일 사장을 콕 집어 “전 정권 임명권자”라고 명시한 것이다. 나희승 대표가 문재인 정부 때 임명된 인사라는 점이 이번 경쟁입찰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을 적시한 것으로 보인다. 공교롭게도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2022년 12월, 한달 전 발생한 오봉역 사고 등의 책임을 물어 나 대표 해임을 건의했고, 윤석열 당시 대통령은 2023년 3월3일 이를 재가했다.

세번째는 당시 우진산전 부회장이 전 철도기술연구원장 출신이고 고속철도 연구개발의 핵심인물이므로 “핵심기술 유출이 우려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외국 회사와 컨소시엄을 하는 우진산전이 사업을 수주하면 국내 고속철도 기술이 유출될 수 있다는 취지다.

하지만 감사원은 우진산전의 입찰 참가를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컨설팅 결과를 2022년 12월께 코레일에 전했다. 이로 인해 진행된 경쟁입찰에 현대로템과 우진산전이 모두 참여했다.


하지만 최종 결과는 현대로템의 압승이었다. 현대로템은 2023년 3월20일 코레일의 7100억원대 케이티엑스 동력분산식 고속철도 차량 EMU-320 제작·정비 사업을 수주했다. 우진산전은 1차 기술점수 평가 기준선인 85점을 넘기지 못하고 79.3점을 받았고, 현대로템은 89.81점을 받았다. 채 상무는 이날 즉각 명씨에게 ‘은혜를 잊지 않겠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고, 하루 뒤엔 이용배 대표 명의의 난 화분이 김영선 의원실에 도착했다.

현대로템은 계속 승승장구했다. 그다음 달인 4월21일에도 코레일이 대주주인 에스알의 1조860억원 규모 동력분산식 고속열차 EMU-320 차량 제작·정비 사업 수주에 성공한다. 우진산전-탈고 컨소시엄은 1차 기술점수 평가에서 84.2점에 그쳐 역시 85점을 넘지 못했다. 현대로템은 87.8점이었다. 사흘 뒤인 4월24일 이용배 대표는 명씨에게 감사 메시지와 함께 난을 보냈다.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원 철도전문위원은 “현대로템이 다른 업체에 앞서 있다는 평가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번 경우처럼 특정 업체의 기술점수가 85점보다 낮았던 사례는 드문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철도업계의 한 관계자도 “우진산전과 탈고가 합작했음에도 기술점수 평가에서 미달해 탈락한 점은 의아하다”고 말했다.

비록 감사원을 겨냥한 로비에는 실패했지만, 현대로템이 명씨에게 보낸 10월17일 문건은 현대로템의 차량산업 수주에 대한 당위성을 설파하는 데 계속 활용된 것으로 보인다. 김영선 의원실이 현대로템 문건을 바탕으로 11월22일 보고용 문서를 작성했고, 명씨는 이를 받아 카카오톡으로 김영선 전 의원에게 보냈다. 김 전 의원은 11월24일 윤석열 당시 대통령의 현대로템 창원공장 방문에 동행했다.

현대로템이 감사원에 의견을 제출하는 과정에 명씨가 힘을 보탰다는 정황도 있다. 현대로템은 2022년 10월 감사원에 직접 ‘EMU-320 고속철도차량 입찰조건 및 평가기준에 대한 의견서’를 제출했다. 21쪽에 이르는 이 문서엔 역시 우진산전과 탈고의 국내 입찰 자격 제한을 주장하는 내용이 담겼다. 명씨는 10월28일 이 ‘의견서’를 현대로템에서 받아 김 전 의원에게 전달하고 지원 방안을 논의했다. 이후 채 상무는 11월7일 “감사원에서 의견 청취하겠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11월9일(수) 감사원에 들어가 잘 설명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명씨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등 진행 상황을 계속 공유한다.

당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이었던 김 전 의원은 실제로 현대로템을 돕기 위한 활동을 벌였다. 같은 해 11월12일 명씨에게 문자를 통해 “철도 차량이 2019년부터 실적이나 기술 자금 이행 등의 요건 없이 계획서만으로 평가 기준을 설정해서 낙찰했다. 그래서 그런 (기존과 다른 평가) 기준을 넣어야 한다는 의견서를 기재위에 공공기관이 평가 기준으로 제시하는 질의를 만드는 중”이라며 “로뎀(로템)에서 감사에 대응하는 데 도움이 될지 명 본부장에게 보내고, 명 본부장 판단에 따라 로템에 보낼지 결정하도록”이라고 했다.

한겨레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49892 [속보] 민주, 오후 1시50분 ‘지귀연 룸살롱 접대’ 의혹 사진 공개 new 랭크뉴스 2025.05.19
49891 “네가 유퀴즈서 무슨 말을 해?”…故 오요안나, MBC서 ‘괴롭힘 받았다’ 판단 new 랭크뉴스 2025.05.19
49890 金엔 "변명" 李엔 "거기까지"…대선 TV토론 신스틸러 권영국 new 랭크뉴스 2025.05.19
49889 공수처 검사 최장 8개월 만에 임명 재가···‘인력난’은 여전 new 랭크뉴스 2025.05.19
49888 “SKT 가입자인증키 2696만건 유출... IMEI는 확인 불가” 랭크뉴스 2025.05.19
49887 SPC삼립 시흥 제빵공장서 50대 근로자 사망…컨베이어 벨트 윤활 작업 중 사고 랭크뉴스 2025.05.19
49886 민주 "지귀연 판사 룸살롱 의혹 사진 오후 1시50분 공개" 랭크뉴스 2025.05.19
49885 국제기구 '계엄때 뭐했나' 묻자 인권위, "윤 방어권 보장 권고" 랭크뉴스 2025.05.19
49884 [속보] 지귀연 "소주 사주는 사람도 없다"…李 "당에서 처리할 것" 랭크뉴스 2025.05.19
49883 민주 “지귀연 룸살롱 의혹 사진 오후 1시 50분 공개” 랭크뉴스 2025.05.19
49882 제 토론 소감은요?…다음 토론은 금요일(23일) [이런뉴스] 랭크뉴스 2025.05.19
49881 [속보] 민주 "지귀연 판사 룸살롱 의혹 사진 오후 1시50분 공개" 랭크뉴스 2025.05.19
49880 SKT 가입자식별키 2696만 건 해킹 유출‥개인정보 임시 관리서버도 감염 랭크뉴스 2025.05.19
49879 TV토론 뒤 대선 후보 SNS 보니… "얼굴 빨갰던 건", "더 나은 국민 삶 고민" 랭크뉴스 2025.05.19
49878 [단독] '손흥민 협박' 남성 과거 동종 전과… "입막음 대가 6500만원 요구" 랭크뉴스 2025.05.19
49877 ‘尹 내란 재판장’ 지귀연 부장판사 “민주당이 제기한 ‘접대 의혹’ 사실 아냐” 랭크뉴스 2025.05.19
49876 홍준표 설득하러 하와이 찾은 국힘 김대식 “오지 말란다고 안 가면 진정성 부족” 랭크뉴스 2025.05.19
49875 경찰, 대선 대비 경계 강화···“미아역 흉기 난동 김성진은 사이코패스” 랭크뉴스 2025.05.19
49874 청주서 80대 흉기 찔려 심정지…경찰 용의자 추적 중 랭크뉴스 2025.05.19
49873 새벽 동탄호수공원서 ‘5명에 흉기 위협’ 난동 중국교포 붙잡혀 랭크뉴스 2025.0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