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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의 목소리
커피 로스팅 장면. 필자 제공


정동혁 | 커피 매장 ‘아마토르’ 운영

저는 서울 변두리에서 커피를 볶아 판매하는 작은 커피 매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갓 볶은 커피가 뿜어내는 향이 많은 이들을 미소 짓게 하듯, 저 또한 평범한 직장인일 때 우연히 마신 커피의 달콤한 향기에 매료되었습니다. 커피 소비의 대부분이 인스턴트커피일 정도로 원두커피 시장이 미약하던 20여년 전부터 취미로 커피를 판매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지금은 초등학생들까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즐기고, 커피머신이 필수 혼수로 인식될 정도로 원두커피 시장이 양적으로 성장한 시대입니다. 저 또한 매장 내 커피 판매를 넘어 전국의 카페, 회사, 소매 소비자들에게까지 독자적 브랜드를 내세워 커피를 팔고 있습니다. 소위 ‘덕업일치’의 행복을 누리고 있는 셈입니다.

지난 20여년 동안 커피를 좋아하는 마음은 한결같았습니다. 그러나 자영업자로서 커피 판매는 녹록지 않았습니다. 많은 위기가 있었습니다. 창업 초기에는 에스프레소 방식이 아닌 다양한 산지의 커피를 직접 추출해 드리는 필터 커피를 판매하여 매장을 운영했습니다. 커피 소비자들이 급격히 늘어나던 시기였으나 골목마다 경쟁 업체도 우후죽순 생겨났습니다. 커피 원두를 사용해줄 도매 회사 거래처를 확보하는 쪽으로 사업 방향을 조정해나갔습니다.

커피 원두 판매 사업에 집중하고 있을 때 또 다른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큰 금액을 거래 업체로부터 받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재판에서는 결국 승소했으나 그 거래 업체는 이미 여러 업체에 사기를 친 상태여서 자산 자체가 없었습니다. 미수금의 타격 이상으로 정신적 충격이 매우 컸습니다. 일부 도매 거래처에만 의지한 것 같다는 자성 속에서 다양한 거래처를 확보해나갔습니다. 소비자에게 커피를 직접 판매하는 소매 유통망을 구축하였고, 이를 통해 커피 원두 소매가 매출에서 가장 큰 부분이 되었습니다.

필자는 커피를 소매로 전국의 고객들에게 판매하고 있다. 필자 제공

코로나19의 확산, 임대료 인상 문제, 매장 내 화재, 믿었던 사람들과의 불화 등 수많은 고충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 위기의 시간을 웃으며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잘 버텨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1년 사이 2배 가까이 상승한 커피 원재료 가격은 차원이 다른 무게로 저를 짓누릅니다. 전세계적으로 커피는 석유 다음으로 교역량이 많은 품목입니다. 뉴욕선물거래소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는데, 최근 기후변화로 인한 공급 부족, 코로나19 이후 증가한 물류비, 수요 증가 등의 복합적 이유로 원두 가격이 급등했습니다. 재배지는 줄어들고 소비량은 매해 증가하므로 앞으로도 지속적 상승이 예측됩니다. 오랜 단골들을 생각하여 서서히 매장의 이윤을 줄여나갔지만, 올해 3월에는 한참 손해를 볼 정도로 원두 가격이 상승해 어쩔 수 없이 판매가를 소폭 인상하였습니다. 지난해부터는 직원을 쓰지 못하고 아내와 둘이 매장을 운영해왔는데 앞으로도 직원 채용은 엄두가 안 납니다. 아침 8시30분부터 밤 9시까지 일주일 내내 카페를 운영하면서, 더 많은 시간 커피를 볶고 포장하며 추가 인상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커피산업 전체가 휘청거리는 초입에 자영업자들이 있는지라, 요즘은 우스갯소리로 오늘이 맛있는 커피를 저렴하게 마시는 마지막 날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산지의 가뭄 피해와 기후재난으로 인한 원재료 가격 상승 문제는 제 커피 인생에서 가장 큰 위기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제한된 자원과 시간으로 묘수를 찾아야 하는 가장 큰 ‘도전’이 되었습니다. 아직은 뾰족한 수가 없지만, 커피산업 속에서 버텨왔던 지난 경험에 기대어보며 ‘태도’의 문제를 먼저 떠올립니다.

필자가 매장에서 향을 확인하며 로스팅하고 있다. 필자 제공

‘시드 투 컵’(Seed to Cup)이란 말은 씨앗에서 컵까지, 즉 커피나무의 열매인 커피체리 속 씨앗이 커피 한잔으로 소비자에게 전해지기까지 일련의 과정을 일컫는 말입니다. 단 30초면 에스프레소 커피 한잔을 만들 수 있지만, 그 한잔을 전하기 위해서는 커피 생산자, 유통업자, 로스터, 바리스타 등 수많은 전문가의 열정과 집약된 노력이 필요합니다. 제 역할을 이런 순환 과정의 중 일부로 인식하며, 제 커피를 마시는 분들과 그 커피를 가능하게 한 모든 환경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커피를 볶으려 합니다. 한잔의 향기에서 씨앗 하나가 느끼는 날씨를 상상하고 일상 속에서 작은 기후변화 캠페인들을 실천해가려 합니다. 커피 맛을 갓 알게 된 중학교 3학년 아들이 제 태도와 행동을 통해 제가 반했던 커피의 매력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삶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email protected]으로 보내주세요.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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