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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훈 대기자
“이제부터 진짜 대한민국”(이재명), “새롭게 대한민국”(김문수), “새로운 시대 새로운 대통령”(이준석). 차창 밖 슬로건 대로라면 정치 권력의 독선에 지칠 대로 지친 국민 마음이 좀 나아질 기대가 생겨야 하겠다. 그런데 어쩐지 민주주의의 축제이자 꽃이라는 선거, 그것도 나라 지도자 선거가 그리 신명 나는 분위기는 전혀 아닌 듯싶다. 당장의 관심이야 누가 되느냐겠지만, 모두가 나아질 거라는 설레임보다는 예측 불가인 대선 이후의 나라 걱정이 더 큰 까닭이다.

신명도 기대도 찾기 힘든 대선은
‘그날’에의 갈망 38년간의 좌절 탓
정당 민주화와 제왕권력 분산 등
‘그날’이 오게 할 비전들 제시해야

6·3 대선은 직선제를 쟁취한 1987년 민주화 이후, 38년 만의 아홉 번째 투표다. 일제강점기보다 더 긴 시간이 흘렀다. 내 손으로 대통령을 뽑으면 모든 게 좋아지리라는 열망과 간구, 에너지를 담은 당시 6월 광장의 노래는 ‘그날이 오면’이었다. “짧았던 내 젊음도, 그 아픈 추억도, 피맺힌 그 기다림도 헛된 꿈이 아니었으리. 그날이 오면….” 그런데 이 곡과 ‘사계’ ‘오월의 노래’ 등을 만들었던 문승현은 그 20년 뒤 인터뷰에서 이같이 되뇌었다. “신문도, 방송도 일절 보지 않는다. 세상이 싫어서. 독재 정권 사라지고 대통령을 우리 손으로 뽑으면 세상이 좀 나아질 줄 알았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여전히 행복하지도 않고, 다들 매일 저렇게 싸우고만 있을까. 매일 똑같은 세상도, 똑같은 옛날얘기 반복도 다 싫고 지겨워져서요.” 다시 18년 뒤인 지금, 그의 생각은 변했을까.

민주주의를 가장 단순히, 좁게 정의하면 “집권당이 선거에서 패할 수 있는 체제”(아담 쉐보르스키 뉴욕대 명예교수), 또는 “권력을 잡기 위한 엘리트들 팀 간의 선거 경쟁 체제”(조지프 슘페터)다. 이런 민주주의 입구의 정의라면 우린 1987년 이후엔 민주주의다. 그런데 동시에 결코 민주주의가 아니다. 선거 패배 대가의 최소화, 소수 배려, 대화·숙의·타협을 통한 모든 갈등의 평화적 해결, 국민 우선의 민주적 태도, 경제 성장과 민주화의 병행 등 더욱 본질적인 민주주의의 진화가 전무했다. 8차례 투표로도 달라진 체감이 없다. 그러니 갈수록 재원 수치조차 없는 포퓰리즘만 극성이다. 도통 달라지지 않으니 선거 불복이 일상이다. 신기루일 뿐인 지지도 좇아 후보란의 이름만 바꿔 끼우며 호객해대니 선거에 무슨 신바람이 나겠는가.

‘그날’에의 체념은 최근엔 아예 1987년 이전으로 되돌아가는 절망이 됐다. 새벽 3시, 한 시간 만에 서류 32건 내라는 대선후보 등록 공고로 특정인을 꽃가마 태우려던 국민의힘 지도부는 극한의 반(反)민주 사례로 남게 됐다. 심야 계엄에 이어 이 심야의 작란(作亂)이 성공했다면, 다음 날 당원들이 투표로 저지하지 못했다면, 이준석 후보의 말마따나 “더 이상 고쳐 쓸 수도 없는 당”이었다.

대법원 옥죄기에 핏발 선 민주당의 사법부 겁박이야말로 더욱 우려스러운 공포다. 대법관 특검, 탄핵안은 물론 “재판관들 앉는 법대(法臺) 높이도 낮추자”니 ‘21세기 로베스피에르’가 따로 없다. 집권하면 행정·입법 장악에 이어 삼권분립 와해에 대한 두려움만 자초할 뿐이다. 자기 생각이 모두 도덕적 선이라 우기다, 드디어 진짜 그리 믿는 듯하다. “믿는 사람은 심판받지 않는다”란 종교의 원리를 거꾸로 악용하는 광적 집단마비의 의심마저 든다. “선거로 선출됐어도 입법·행정·사법 권한을 한쪽이 다 갖게 되면 그건 반드시 폭정으로 향한다”(제임스 매디슨), “한 사람 손에 쥐어진 권력은 반드시 부패한다”(몽테스키외)라는 게 민주주의 아버지들의 수백 년 전의 우려. 민주주의·진보를 팔며 살아온 자칭 21세기의 민주당에서 이게 현실이 되려 한다.

절망적 위기 속의 한 가지 위로라면 쉐보르스키 교수의 결론이다. “민주주의 진전은 반드시 실망의 시기를 거친다. 선거와, 그리고 소득·인권 등 각종 불평등 완화에의 과도한 기대가 낳은 실망을 자각하는 단계다. 민주화 이후 불가피한 이 국면을 건너 모든 민주적 제도들이 제대로 작동하는 문턱을 넘어서면 그 사회엔 진정한 민주주의가 뿌리내린다.” 이번 대선은 그렇게 민주화 38년에 대한 처참한 실망의 끝에서 치러진다. 바닥이니 희망에의 기로이기도 하다.

이재명·김문수 후보는 1987년과 연이 닿아 있다. 60세의 이 후보는 그 세태 속 사법연수원에서 인권변호사의 길을 택했다. 73세의 김 후보야 당시 민주화 운동의 핵심 주역이었다. 그러니 대한민국엔 왜 ‘그날’이 오지 않는지에 대한 성찰과 해법을 함께 내놓아야 할 세대다. 어제 처음 이재명·김문수 후보가 언급한 4년 연임제 등 권력 분산의 정신 만큼은 모두가 절대 피해 가선 안 된다.

민주화 이후 세대의 첫 주자이자 ‘대통령 힘빼기’가 으뜸 공약인 후보가 개혁신당 이준석. 이재명·김문수, 그리고 민주당·국민의힘의 시대적 책임을 매섭게 추궁할 그의 역할이 더욱 소중해졌다. “당내 민주주의조차 못 해내는 거대 정당이 과연 ‘그날’을 어찌 가져올 건가.” 남은 14일. 이준석 후보에게 기대한다. 가장 싸가지 없게, 이 두 정당들의 모순과 기득권을 파괴해 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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