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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포커스]


체코 신규 원전 예정부지인 두코바니 전경. 사진=대우건설


사업비 26조원 규모로 추정되는 체코 신규 원전 사업이 최종계약을 코앞에 두고 급제동이 걸렸다. 한국과의 수주 경쟁에서 탈락한 프랑스전력공사(EDF)의 가처분 신청을 체코 법원이 받아들여 최종계약을 하루 앞둔 지난 5월 6일 일시 중단됐다.

체코 원전 최종 계약 연기는 정부 대표단이 계약식 참석을 위해 현지 출장을 가던 중 알려졌다. 표면적인 이유는 경쟁사였던 EDF의 이의제기 때문이지만 계엄 사태 이후 한덕수 권한대행, 최상목 부총리 등 줄사퇴로 컨트롤타워가 부재한 ‘대대대행 체제’에서 외교력도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부 간 거래(G2G) 구조를 기반으로 하는 원전 수출 특성상 정상급 외교와 정책 연속성이 필수적인데 조기 대선 국면에서 정권교체 가능성에 정책 연속성이 변수로 부각되고 있다. 컨트롤타워 부재 상황에서 막판 변수가 터지며 최종 계약 무산 가능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원전 계약 하루 전 체코 법원 ‘급제동’


한국수력원자력과 체코 발주사는 5월 7일 프라하에서 양국 정부 고위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두코바니 신규 원전 2기 건설 계약 서명식을 열 예정이었다.

하지만 체코 브르노 지방법원이 5월 6일(현지 시간) EDF가 제기한 행정소송의 정식 결과가 나올 때까지 한수원과 발주사인 체코전력공사(CEZ) 자회사 간 최종 계약 서명을 중지해야 한다는 가처분 결정을 내리면서 사실상 ‘올스톱’ 된 것이다.

한수원은 지난해 7월 가격 경쟁력과 공사 기간 준수 능력 등의 강점을 앞세워 미국 웨스팅하우스와 EDF를 제치고 두코바니 원전 2기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사업비는 26조원으로 추산된다.

한수원이 주도하는 컨소시엄에는 한전기술, 한전KPS, 한전원자력연료 등 한국전력 그룹 계열사와 민간업체 두산에너빌리티, 대우건설 등이 참여한다. 체코 원전은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이후 16년 만의 신규 원전 수출이자 유럽 원전시장 첫 진출 사례로 주목받았다.

체코 법원의 가처분 결정 소식이 전해진 시각 황주호 한수원 사장은 체코에 도착한 상태였으며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신규 원전 2기 건설 계약 체결식 참석을 위해 프라하로 향하는 비행기에 탑승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 시장으로의 첫 진출인 만큼 대규모 특사단도 꾸렸다. 현지로 떠난 정부·국회 합동 대표단은 경제 부처 장차관급 인사와 국회의원들로 구성됐다.

정부 측에서는 대통령 특사단으로 임명된 안덕근 산업부 장관,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 등, 국회에서는 이철규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위원장(국민의힘), 박성민·강승규·박상웅 의원(국민의힘), 허성무 의원(더불어민주당) 등이 특별방문단으로 동행했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5월 7일(현지 시간) 체코 프라하 총리실에서 페트르 피알라 총리와 한·체코 원전산업 협력 약정 체결식에서 약정서에 서명한 후 발언하고 있다. 사진=산업통상자원부


“무산 가능성은 제로”…체코 총선은 변수로


전문가들은 이번 가처분 인용 결정으로 최종계약 자체가 무산될 일은 없다고 보고 있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최종계약이 일시 중단된 데에는 한국 측 잘못이 없고 한국 정부 대표단을 초청했던 체코 정부 측도 상당히 미안해하고 있다”며 “EDF가 체코의 경쟁당국인 경쟁보호청(UOHS)에 제소한 내용도 새로운 내용이나 문제 제기가 없고 체코 정부도 최종계약 마무리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고 있는 만큼 최종계약이 무산될 가능성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덕근 장관도 현지 기자간담회에서 계약 성사에는 문제가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원전 업계에서는 수개월 후로 계약이 연기될 가능성을 제기한다.

법원의 제동으로 신규 원전 건설 공식 계약은 지연됐지만 체코 정부는 5월 8일 CEZ와 한수원의 두코바니 신규 원전 2기 계약을 사전 승인했다. 본안 판결까지 신규 원전 건설 계약 서명을 할 수 없다는 현지 지방법원 가처분 결정이 취소되는 즉시 신속하게 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사전 승인 조치를 한 것이다.

CEZ 측은 법원의 가처분 결정에 신속히 최고행정법원에 항고장을 접수해 입찰 과정의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할 방침이다. 업계에서는 사업이 장기간 지연될 경우 손실 금액이 수천억원 단위로 커질 수 있어 최고행정법원이 사건을 신속히 심리해 결론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하고 있다.

다만 가처분 명령이 해제되더라도 본안소송이 남아 있어 최종 계약 시점이 불투명하다. 오는 10월 체코 총선도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총선을 앞두고 원전 계약 문제가 정치 쟁점으로 부상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체코 정부는 이번 원전 건설 사업에 자국 기업 비율을 30%로 시작해 최종적으로 60%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 체코 측이 언급한 30%의 현지화율에는 두산에너빌리티의 체코 현지 자회사인 두산스코다파워가 공급하는 터빈 등 주기기까지 포함된다. 당초 체코 측이 희망했던 60%보다 크게 낮은 수준이다.

하지만 체코 야당인 긍정당(ANO)은 원전 프로젝트에 자국 기업 참여 보장 비율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나아가 다음 내각에서 계약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번 신규 원전 건설 사업은 체코 당국 입장에서도 사업비 26조원 규모의 초대형 국책 프로젝트인 만큼 계약이 지연될 경우 정부와 산업계에 미칠 정치, 경제적 영향이 막대하다. 체코는 2033년까지 탈석탄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어 원전 건설이 급하다.

국가에너지계획에 따르면 2050년까지 원전 비중을 36~50%로, 재생에너지는 43~56%까지 확대한다는 목표다. 두코바니 원전은 올해 3월 최종계약, 2029년 착공, 2036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는 만큼 시간이 많지 않다.

황주호 사장은 체코의 에너지 전환 일정과 국가적 수요에 비춰 이번 사업이 계속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고 현지 간담회에서 강조했다. 황 사장은 “체코도 역시 탄소중립을 위해 석탄 발전소를 일정 기한 내에 폐쇄해야 하는 만큼 전력을 대체하기 위한 시간이 별로 없다”며 “원전 사업은 체코의 국가적인 공익을 위해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한수원은 신속한 납기와 가성비를 뜻하는 ‘온 타임 온 버짓(On time On budget)’ 경쟁력을 앞세운 만큼 최종계약을 자신하고 있다. 이번에 가처분 제동을 건 EDF는 지난 25년간 프랑스 내 신규 원전 1기만을 완공했다. 해당 프로젝트는 계획 대비 12년 지연됐고 예산은 4배 초과됐다. 과거 핀란드, 프랑스, 영국 등에서도 반복적으로 공사 지연과 예산 초과 문제를 일으킨 바 있다.

3월 25일(현지 시간) 체코 플젠 두산스코다파워에서 페트르 파벨 체코 대통령과 손승우 두산에너빌리티 파워서비스BG장이 증기터빈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두산에너빌리티


유럽 안방 넘보는 K원전에 잇단 견제구…프랑스 몽니


EDF의 몽니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EDF는 지난해 7월 한수원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자 체코 경쟁 당국인 반독점사무소(UOHS)에 이의를 제기했다. UOHS가 이의 제기를 최종 기각하자 이번엔 UOHS를 상대로 법적 소송에 나섰다. 체코 법원의 이날 결정은 한수원과 CEZ의 최종 서명을 일단 막기 위해 EDF가 낸 가처분 신청이 서명식 하루 전 인용된 것이다.

프랑스의 발목 잡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프랑스 출신인 스테판 세주르네 유럽연합(EU) 산업전략 담당 수석 부집행위원장이 체코 산업통상장관에게 서한을 보내 한수원과의 원전 계약 절차를 중단하라고 압박했다.

EDF는 또 한수원이 EU의 역외보조금규정(FSR)을 위반했다며 EU 집행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한 상태다. EU가 2023년 7월 도입한 FSR은 EU 바깥 기업이 정부나 공공기관에서 과도한 보조금을 받고 역내 기업 인수합병이나 공공입찰에 참여하면 불공정 경쟁으로 간주하고 규제하는 규정이다.

EU는 직권조사 결과 불공정 보조금을 받았다고 판단하면 인수합병·공공입찰 참여를 제한할 수 있다. EDF는 한국 정부가 한수원에 실질적으로 보조금을 지급해 경쟁을 왜곡할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한수원은 FSR을 어겼다는 EDF의 주장에 대해 정부로부터 어떤 보조금도 받지 않았고 체코 원전 입찰은 2022년 3월 개시돼 FSR 적용 대상도 아니라고 반박한 바 있다. 원전업계에선 EDF가 FSR 카드를 꺼내든 것은 체코 원전 이후 K원전의 유럽 진출을 견제하려는 의도로 해석하고 있다.

최성민 KAIST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는 “체코 원전 수주를 계기로 한국 원전의 가격 경쟁력과 빠른 납기, 시공 능력 등 강점이 부각되면 향후 유럽 시장 내 원전 사업 수주전에서 경쟁에 밀릴 수 있기 때문에 한국 원전의 유럽시장 진출을 견제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경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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