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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면에 태양광 패널이 붙어있는 인천 송도의 힐스테이트 레이크송도 아파트 건물. 김지혜 기자


“이사를 가더라도 가능하면 ‘제로에너지 아파트’에 살고 싶어요. 관리비가 부담이 적어요. 근처 주상복합아파트와 비교하면 거의 절반 수준이에요.”

인천 송도의 아파트 힐스테이트 레이크송도에서 만난 주민 이세영씨(43)는 인근 같은 평수의 다른 아파트보다 관리비를 10만원 가량 덜 낸다. ‘반값 관리비’의 비결은 ‘제로에너지건축물(ZEB) 5등급 인증’에 있다. 이 아파트는 2019년 고층아파트로선 국내 최초로 ZEB 5등급 인증을 받아 에너지의 20% 이상을 스스로 생산한다. 옥상과 벽면에 설치된 태양광 패널로 전기를 생산하고, 고단열·고효율 설비로 에너지 소비를 줄여 23.37% 에너지 자립률을 달성했다.

이처럼 ‘꿈의 아파트’처럼 보이는 제로에너지 건축물이 최근 건설업계에서는 논란이 되고 있다. 정부가 다음달 30일부터 30가구 이상의 민간 공동주택를 신축 할 때 에너지 자립률 13~17% 확보를 위한 설비를 설계에 의무적으로 반영하도록 규정을 개정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공공 건축물에 한해서만 ZEB 5등급 인증이 의무였지만, 민간이 짓는 아파트에도 5등급 수준에 준하는 설계 기준이 요구된다.

건설업계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태양광·단열 설비 등으로 공사비 증가는 불가피하고, 분양가 상승 가능성도 높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근시안적인 ‘분양가 상승’ 논란을 넘어 ZEB 설계·인증이 향후 아파트의 자산 가치를 입증하는 중요한 척도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주민들은 저렴한 관리비에 ‘대만족’인데···소극적인 건설사

힐스테이트 레이크송도 단지 초입에 설치된 태양광 발전 현황 전광판. 김지혜 기자


‘고층형 ZEB 1호’ 힐스테이트 레이크송도 단지 초입에는 ‘태양광 발전 현황’ 전광판이 놓여있다. 지난 15일 오후 4시 기준 단지에서 생산한 태양광 에너지는 1437kWh, 저감한 탄소량이 609kgCO2였다. 태양광 패널로 생산한 전기는 실시간으로 주민들이 사용한다. 관리사무소에 따르면 지난달 이 단지에서 생산된 전기는 총 76.98MWh에 달했다. 600세대 규모의 서울의 구축 아파트의 봄철 월간 전기 소비량을 훌쩍 뛰어넘는 양이다.

ZEB의 강점은 저렴한 관리비다. 주민 이씨는 “34평 기준 지난달 관리비가 20만원 정도 나왔다”면서 “바다 근처인데도 단열이 잘 돼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엔 에어컨을 많이 틀어도 전기요금이 적게 나온다”고 말했다.

레이크송도의 지난 3월 관리비는 K-apt공동주택관리 정보시스템을 보면, 연식과 세대수가 비슷한 근방의 A아파트의 70% 수준이었다. 전용면적 1㎡ 당 전기요금이 279원, 합계 관리비는 1278원 더 저렴했다. 전용면적 84㎡ 기준으로 레이크송도 주민이 1년에 약 120~130만원가량을 덜 내는 셈이다. 시공사인 현대건설은 “해당 단지는 인천 공동주택 평균 대비 전기 51%, 난방 43% 절감 효과를 거둘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ZEB 아파트는 극히 드물다. 국토교통부는 ZEB 인증제도가 시행된 2017년 이후 예비·본인증을 받은 공동주택이 총 151건이라고 밝혔다. 이중 일반적인 아파트로 인식되는 고층 건물이 본인증까지 완료한 사례는 레이크송도를 비롯해 경기 화성시의 e편한세상 남양뉴타운, 경기 과천시의 과천리오포레데시앙, 인천 검단 힐스테이트 웰카운티, 인천검단 LH26단지 등 단 다섯 곳에 불과하다.

건설사들은 최소한의 기준만 지키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번 규정 개정으로 정부가 의무화하는 것은 민간 아파트의 ‘ZEB 5등급 인증(에너지 자립률 20~40%)’이 아니라 ‘ZEB 5등급 인증에 준하는 최소한의 설계 기준(에너지 자립률 13~17%)’이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공사비 부담이 크다보니 건설사 대부분은 굳이 ZEB 인증까지 받기보단 의무화되는 최소 기준만 지키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건설사들이 소극적인 이유는 부담되는 공사비와 적은 인센티브에 있다. 정부도 추후 에너지 비용을 줄이더라도 당장 ZEB 5등급 설계 기준에 맞추려면 주택 건설비용이 가구당 약 130만원(84㎡ 세대 기준) 높아질 것으로 추정한 바 있다.

건설사들은 공사비가 오른 걸 감안하면 인센티브가 적다고 불만이다. 앞서 레이크송도는 ZEB ‘인증’ 시에만 주어지는 용적률 상향·세제감면 등의 인센티브를 활용해 추가 공사비를 충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토부 관계자는 “이번에 의무화하는 기준은 인증보다 완화된 수준이기 때문에 인증과 동일한 인센티브를 부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분양가 논란’을 넘어 ‘자산가치의 새 기준’으로

전문가들은 장기적 시각으로 보면 건물의 에너지 효율, 나아가 에너지 생산성이 향후에는 중요한 자산가치 평가 기준으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높다고 입을 모은다.

해외에서는 이미 건물 성능이 부동산 가치 평가의 핵심 지표로 작동하고 있다. 미국의 녹색건물 인증제도인 LEED나, 유럽의 건축물 에너지 평가제도 EPC가 대표적이다. 이같은 환경 인증을 받은 건물은 그렇지 않은 건물보다 7~10% 높은 임대료와 매매가가 책정되며, 투자기관들도 ESG 기준 충족을 위해 이같은 건물에 우선 투자하는 추세다.

박덕준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 제로에너지빌딩 센터장은 “ZEB 설계 의무화를 단순히 분양가 상승 요인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부동산의 자산가치를 땅값뿐 아니라 건축물의 성능으로 평가하는 변화의 시작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변화가 건설사들에게 앞으로 새로운 사업 기회를 열어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과거에는 건설사들이 준공 후에 건물에서 손을 떼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면, 이제는 신재생에너지 설비 운영·유지 관리 서비스, 에너지 성능 컨설팅 등 ‘운영 기반 사업 모델’로의 전환이 가능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ZEB 인증 활성화를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ZEB 인증받은 아파트에 대출 금리를 인하하는 등의 ‘녹색금융’이 활성화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인센티브가 강화되어야 건설업계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박 센터장은 “다만 기술력이 중요한 ZEB 인증에서 중소 건설사들이 소외될 가능성이 높아, 인력 양성·매뉴얼 교육 등 정부의 컨설팅 제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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