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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시민들이 상영작 예고 영상을 살펴보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 영화 산업은 ‘멀티플렉스’의 등장으로 크게 성장했었다. 멀티플렉스는 한 건물이나 시설 안에 여러 개의 상영관(스크린)을 갖춘 복합 영화관을 이른다. 1998년 11개 상영관을 갖춘 CGV강변이 개관하면서 본격적인 멀티플렉스 시대가 열렸다. 노후화된 단관 극장에서 한두 작품만 볼 수 있는 게 아니라 여러 신식 상영관에서 다양한 영화를 쾌적하게 관람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같은 변화는 영화가 한국 관객들의 일상에 깊숙이 파고든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다.

그런데 30여 년이 흐른 오늘날의 현실은 전혀 다르다. 관객의 일상에서 극장은 점점 소외되어 가고 있다. 극장과 한국 영화의 전성기를 이끈 멀티플렉스는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 마련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최근 들려온 멀티플렉스 간의 합병 소식은 이를 잘 보여준다. 멀티플렉스 2위 롯데시네마, 3위 메가박스를 각각 운영하는 롯데컬처웍스와 메가박스중앙은 합병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양사는 지난 5월 8일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번 합병은 영화 시장 환경이 극도로 악화된 상황에서 진행되는 만큼 그 위기감이 여실히 반영되어 있다. 2, 3위마저 생존 활로를 찾으려면 반드시 힘을 합쳐야만 하는 것이 한국 영화 산업의 현주소인 셈이다. 그렇다면 이를 기점으로 과연 멀티플렉스의 시대는 다시 열릴 수 있을까? 한국 영화 산업은 되살아날 수 있을까?

K무비 성장 발판이 된 멀티플렉스그동안 멀티플렉스는 K무비의 발전과 확산에도 크게 기여해 왔다. 고화질 스크린, 웅장한 사운드를 갖춘 상영관 덕분에 관객들은 영화를 더욱 생생하게 즐길 수 있었다. 같은 건물 안에서 음식점이나 쇼핑몰과 같은 편의시설도 함께 이용할 수 있었다. 그 편리함과 감동을 느끼기 위해 극장을 자주 찾아가다 보니 한국 관객의 영화 보는 안목은 나날이 높아졌다. 그리고 감독들은 이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할 수밖에 없었다. 상업성과 작품성을 골고루 갖춘 K무비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그러다 보니 멀티플렉스를 비롯한 극장은 오늘날까지도 한국 영화 시장의 중심축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 영화 매출에서 극장 매출 비중은 60~70%에 달한다. 개별 영화가 아무리 주문형비디오(VOD) 형식으로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통해 유통된다 하더라도 극장 매출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사실상 한국 영화 시장이 버틸 수 없는 구조이다.

하지만 국내 극장 매출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2019년 1조9140억원에 달했던 극장 매출은 2024년 기준 37.6% 감소해 1조1945억원에 그쳤다. 코로나19 확산, 개봉 지연, 티켓값 인상 등 여러 요인이 맞물려 나타난 결과이다. 관객 수도 2019년의 절반 수준으로 급감했다. 2019년 2억2668만 명이었던 관객 수는 지난해 1억2313만 명으로 감소했다. 올해엔 상황이 더욱 악화되어 관객 1억 명조차 달성하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합병을 결정한 2, 3위 멀티플렉스 역시 최근 부진을 면치 못했었다. 지난해 롯데시네마는 3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두는 데 그쳤고 메가박스는 134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각각 10개, 6개 지점이 문을 닫기도 했다.

양사는 이번 합병을 기점으로 분위기를 전환시킨다는 방침이다. 우선 두 곳의 스크린 수가 합쳐지면 규모 면에서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양사의 스크린 수(롯데시네마 915개, 메가박스 767개)를 더하면 총 1682개로 1위인 CJ CGV(1346개)보다 많다. 시장 전체로 봤을 때도 3강 체제에서 2강 체제로 바뀌면 보다 효율적이다. 그동안 3사는 많은 마케팅 비용 등을 쓰며 출혈 경쟁을 이어왔다. 이번 합병은 중복 비용을 줄이고 과도한 경쟁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극장 사업에 대한 재정비뿐 아니라 영화 투자·배급 부문에서도 시너지를 낼 전망이다. 롯데컬처웍스는 롯데시네마 이외에도 투자·배급사인 롯데엔터테인먼트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메가박스중앙도 메가박스뿐 아니라 투자·배급사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를 계열사로 두고 있다. 롯데엔터테인먼트는 ‘신과 함께’ 시리즈,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는 ‘범죄도시’ 시리즈 등으로 큰 사랑을 받기도 했다. 합병을 계기로 더욱 다양한 한국 영화들에 대한 투자·배급이 이뤄질 수 있다.

OTT, 관세 위협에도 생존하려면물론 앞으로도 극장과 한국 영화 산업은 크고 작은 위험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OTT로 인해 관객들의 콘텐츠 감상 패러다임은 완전히 바뀌었고 높아진 극장 티켓값에 대한 심리적 저항은 여전히 강한 편이다. 게다가 넷플릭스 등 OTT와의 경쟁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심지어 토종 OTT 쿠팡플레이는 국내 최초로 무료 회원제를 도입하기로 하는 등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기존 쿠팡플레이는 월정액을 내야 하는 쿠팡 멤버십 와우 회원에게만 무료로 제공됐다. 하지만 다음 달부턴 쿠팡 일반 회원도 무료로 쿠팡플레이를 볼 수 있게 됐다. 무료로 보는 대신 광고를 시청해야 하긴 하지만 콘텐츠 이용료 부담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많은 이용자들이 몰릴 전망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영화 관세’를 언급한 것도 위험 요인 중 하나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해외에서 제작된 모든 영화에 100%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5월 4일(현지 시간) 발표했다. 물론 실제 이 계획이 실행될지, 정확히 몇 %가 부과될지는 지켜봐야 한다. 하지만 한국 영화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 영화의 해외 수출액 중 미국 수출액 비중은 15% 정도이다. 이 정도면 큰 비중까진 아니다. 하지만 이미 시장이 침체되어 있는 상황에서 관세 부담까지 가중되면 고통이 더욱 커질 수 있다. 나아가 K무비가 글로벌 영화 시장의 중심지인 미국에 진출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극장과 한국 영화가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지 않은가. 시시각각 급변하는 상황을 면밀히 예의주시하고 다양한 아이디어와 생존 방안을 찾아간다면 위기를 조금씩 극복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앞서 그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들도 있다. 멀티플렉스는 극장이라는 공간 자체가 갖고 있는 본질적 의미에 주목해 특별관을 대대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스크린의 특성과 화질에 따라 4D관, 아이맥스, 스크린엑스 등으로 나눠 다양한 버전으로 영화를 즐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를 통해 관객은 집에선 미처 다 누릴 수 없는 압도적인 시각적 체험과 감동을 커다란 스크린으로 느낄 수 있다.

극장을 영화만을 위한 공간에 국한하지 않고 여러 문화콘텐츠를 즐기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진화시킨 것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요즘 극장에선 영화뿐 아니라 K팝 공연 라이브 실황, 오페라, 뮤지컬, 스포츠 중계 등 각양각색의 콘텐츠를 감상할 수 있다. 미술, 철학 등 각종 강연 프로그램도 열어 호평을 받고 있다.

세계 최초의 영화는 1895년에 나온 뤼미에르 형제의 ‘열차의 도착’이란 작품이다. 이 영화는 한 카페에서 상영됐다. 당시 작품을 본 관객 중 누군가는 달려오는 기차 영상에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고 일부는 겁을 먹고 밖으로 뛰쳐나가기도 했다고 한다. 오늘날 극장이 갖는 의미도 여기에 있다. 관객은 하나의 공간 안에서 대형 스크린을 바라보며 때론 커다란 감동을, 때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을, 때론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 분위기와 순간을 다른 관객들과 공유하는 집단적 체험을 하게 된다. 이 같은 소중한 기억이 있기에 영화는 더욱 특별하게 각인되고 체화된다. 앞으로도 멀티플렉스를 중심으로 극장이 부단한 노력을 해나간다면 관객들도 그 감동을 다시 만끽하러 돌아오지 않을까 희망을 가져본다.

김희경 인제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영화평론가 [email protected]

한경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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