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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앙에서 1,000km 거리인데…'폭삭' 무너진 방콕 건물

지난 3월 28일, 미얀마 만달레이 서쪽에서 규모 7.7의 강진이 발생했습니다.

진앙에서 1,000km 이상 떨어진 태국 방콕에서도 수십 초간 흔들림이 느껴졌습니다. 고층 건물이 흔들리고, 수영장 물이 넘치는 등 미얀마 강진의 여파가 고스란히 전달됐습니다. 상당수 고층 건물의 벽면에 금이 가고, 급히 대피하던 시민들의 부상이 잇따랐습니다. 특파원과 가족이 살고 있는 집도 여러 곳에 균열이 발생했고, 벽면 거울이 깨져 쏟아지는 피해를 입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날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방콕에서 건설 중이던 30층 규모의 건물이 폭삭 주저앉는 장면이었습니다. 관광명소로도 유명한 '짜뚜짝 시장' 건너편 신축 중이던 건물 한 동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린 겁니다. 붕괴 직전 건물이 흔들리고 크레인이 쓰러지는 모습을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던 시민들과 주변 노동자들은 갑작스러운 붕괴에 혼비백산 대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3월 28일 미얀마 강진 여파로 신축 중이던 태국 감사원 건물이 붕괴됐다. 사고 당일 저녁 모습으로, 잔해더미가 산을 이루고 있다.(KBS 촬영)

취재진은 미얀마 상황에 대한 기사를 작성하고 뉴스 생중계를 위해 현장으로 이동했습니다. 주변 수백 미터가 통제된 가운데, 구조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습니다. 100명 가까운 노동자들이 미처 대피하지 못한 채 건물 잔해 더미에 깔려버린 비극의 현장이었습니다.

[연관 기사]미얀마에 7.7 강진…방콕에서도 고층 빌딩 ‘와르르’(2025년 3월 28일 KBS뉴스9)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213251

지난 14일, 태국 당국은 50일 가까이 이어진 수색 작업을 종료했습니다. 모두 92명이 숨졌고, 9명이 다쳤으며 4명은 찾지 못한 채 실종 상태로 남게 됐습니다.

■ 왜 이 건물만?…끊이지 않은 부실 공사 의혹

붕괴된 건물은 신축 중이던 태국 감사원 건물로, 2020년 착공됐습니다. 중국 국영기업 중국철로총공사(CREC) 계열 건설회사인 '중철 10국'의 태국 현지 법인과 '이탈리안-타이 개발(ITD)'이란 곳이 합작해 짓고 있던 곳입니다. 수주 금액 21억 4천만 밧, 908억 원 규모였습니다.

신축 중이던 태국 감사원 건물의 붕괴 전 모습. 중국 국영기업 계열 건설회사의 태국 법인과 태국업체인 ‘이탈리안-타이 개발(ITD)’가 합작해 짓고 있었다.(사진출처 : 태국 카오솟)

"왜 이 건물만 무너졌을까?"
사고 이후 누구나 가졌던 의문입니다. 방콕의 지반이 약하고, 별다른 도시계획 없이 우후죽순 고층 건물이 잇따라 들어서고…. 여러 짐작이 가능했지만 그것도 오래된 건물이 아닌, 골조 공사가 거의 마무리된 신축 건물이 힘없이 무너진 이유를 누구도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오직 한 가지, 부실 공사 때문일 거라는 추측만 만연할 뿐이었습니다.

실제로 사고 직후 시공사 관계자들이 현장 사무소 등에서 서류를 빼돌리려다 태국 당국에 적발됐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달 초 공개된 붕괴 현장 내부 모습. (사진 출처 : 태국 카오솟)

■ 설계부터 감리까지 '엉망'…"총체적 부실 공사"

현지 시각 15일, 태국 당국이 중간 조사 결과를 내놨습니다.
예상대로, 직접적인 원인은 지진이었지만 '어이없는 붕괴'를 야기한 건 부실 공사였습니다.

태국 당국이 발표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엘리베이터가 오르내리는 축과 건물의 중심을 잡는 축이 서로 다른 곳에서 균형을 이뤄야 하는데 건물 가장자리에 몰려 있었고, 진동 직후 축에서 먼 곳부터 뒤틀림이 시작돼 사실상 건물이 수직으로 꺾이는 형태로 붕괴.

▲ 현장의 콘크리트와 시멘트 샘플을 테스트한 결과 강도가 표준 측정치를 충족하지 못했고, 현장에서 회수된 일부 철근 역시 설계 지침을 지키지 않았음.

▲ 건축 관련 문서에 기재된 전문 엔지니어의 서명이 위조되었음.

방콕 형사법원은 이번 사고와 관련해 모두 17명에 대해 업무상 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했습니다. 설계 업체 6명, 시공 관련 업체 6명, 감리 업체 5명입니다.
설계-시공-감리에 이르는 그야말로 '총체적인 부실 공사'였음을 말해주는 대목입니다.

‘이탈리안-타이 개발(ITD)’의 쁘렘차이 회장이 16일 아침 휠체어를 타고 경찰서에 들어서고 있다.(사진출처 : 방콕포스트)

■ 휠체어 타고 경찰 출석한 시공사 대표…알고 보니?

체포영장이 발부된 피의자 중 눈에 띄는 인물이 있습니다. 중국 기업과 합작해 건물을 짓고 있던 시공사 '이탈리안-타이 개발'의 대표, 올해 71살의 쁘렘차이 까르나수타 회장입니다. '이탈리안-타이 개발'은 30여 개 계열사를 가진 재벌 그룹으로, 방콕 수완나품 공항 건설에 참여했습니다.

쁘렘차이 회장, 2018년 3년 2개월의 형을 선고받고 2021년 출소한 인물입니다. 당시 감옥에 간 이유, 기가 찹니다. 2018년 2월, 쁘렘차이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퉁야이 나레수안 국립공원'을 방문해 총을 이용한 불법 사냥을 하고, 사냥으로 잡은 흑표범을 요리해 먹었습니다. 태국에서 흑표범은 멸종위기종. 쁘렘차이는 현장에서 운전기사, 요리사와 사냥 가이드와 함께 체포됐습니다.

[연관 기사][특파원 리포트] 죽은 흑표범…태국 재벌을 심판하다(2021년 12월 10일)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5345369

상상을 초월하는 범죄로 3년 넘게 감옥에 갇혀 있던 인물이 석방된 뒤 자신의 회사로 돌아갔고, 태국의 감사원이라는 국가 핵심 시설의 시공을 맡은 겁니다.

태국 당국의 조사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경쟁 입찰을 통해 공사를 수주했다고는 하지만, 또 다른 비리의 연결 고리가 드러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방콕 건물 붕괴의 희생자 대부분은 미얀마인입니다.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국경 건너 태국으로 와 막노동을 하며 힘겨운 삶을 이어가다 하루아침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미얀마는 비극의 나라입니다. 50여 년의 군부 독재를 물리치고 민주화의 싹을 피우던 시기, 2021년 군부의 쿠데타로 또 한 번 무너졌습니다. 군부의 폭압과 공포 정치에 6천 명 이상이 희생됐습니다. 군부를 몰아내려는 반군의 저항이 이어지며 미얀마는 현재 내전 중입니다.
이 미얀마에 '100년 만의 강진'이라는 시련이 또 덮쳤습니다. 3천 8백여 명이 숨졌다는 게 군부 발표지만 만 명이 넘을 거라는 국제기구의 관측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군부 정권은 지진 피해 수습을 위해 휴전하겠다고 해놓고 지진 이후 반군 지역에 대해 370여 차례 공습을 가했고 3백 명 이상이 숨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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