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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 청소년 우울증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올해 고등학교에 들어간 A양은 등교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지 않아 마음앓이를 하고 있다. 지난해 중학교에서 다른 아이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했던 기억이 아직까지 악몽처럼 남아 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에선 전처럼 괴로운 일이 벌어지진 않았지만 마음속에서 과거의 아픔을 극복하지 못한 공포와 불안이 이어지고 있다고 A양은 고백했다. 하지만 자식이 어떻게든 꾸준히 학교에 가길 바라는 부모님은 “학교에서 공부만 하고 오면 된다”며 A양을 강하게 내몬다. 자신이 이해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더 억울해진 A양은 “혼자만 남겨진 기분이 들어 외롭고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는 상황이 답답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정신건강의학과 관련 질환으로 병원을 찾는 아동·청소년이 계속해서 늘고 있다. 여러 정신건강 질환 가운데서도 우울증은 대표적으로 빠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를 보면 19세 이하 우울증 환자는 2019년 4만9299명에서 2023년 7만6350명으로 54.9% 증가했다. 김재원 서울대어린이병원 소아정신과 교수는 “한국의 소아·청소년이 어릴 때부터 스트레스에 많이 노출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면서 “소아우울증의 원인은 60%가 학업 스트레스, 가족·또래관계 등 환경적 요인이며, 나머지 40%는 유전적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19세 이하 우울증 4년 만에 54.9% ↑

60%는 학업과 가족·또래 관계 탓


짜증·예민·신체 통증·어지러움 표출

초기 신호 보일 때 아이와 대화해야


어릴 적 발병, 성인기 위험도 2.78배

“항우울제 치료 부작용? 이득이 크다”


우울증은 우울감과 의욕 저하 등이 주요 증상으로 나타나며 다양한 인지·정신적 증상 외에 신체적 증상까지 동반한다. 아동·청소년에게도 우울증은 발생할 수 있는데, 또래관계의 어려움이나 SNS 사용 등 연령대 특성을 반영한 원인이 질환 유발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또래관계에선 친구와의 갈등이나 학교폭력 등이 우울증을 일으키는 중요한 위험요인이 될 수 있다. 다른 또래관계에 문제가 있더라도 꾸준히 교류하는 좋은 친구 한두 명과의 관계가 건강하게 유지되면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 최근에는 SNS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청소년도 늘고 있는데, 온라인상의 간접적인 관계 역시 우울증이나 자해·자살 위험까지 높이는 잘못된 정보에 노출될 가능성이나 상대적 박탈감을 키울 수 있다.

아동과 청소년의 우울증은 성인과 비슷하게 식욕 저하, 불면증, 집중력 저하 같은 증상을 보인다. 특히 공부에 집중이 안 된다고 호소하거나 이전에 즐기던 활동에 대한 흥미나 의욕이 사라지는 경우도 흔히 발견된다. 우울한 상태를 자각하지 못할 때는 우울감 대신 짜증이나 예민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개인적인 성향에 따라 말과 행동에서 우울증의 신호가 잘 표현되는 경우도 있지만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 사례도 많다. 잠에 드는 시간이 현저히 늦어지거나 머리, 배, 다리 등 신체 부위가 아프다고 하는 경우도 있으며 어지럼증을 자주 호소하는 등의 모습이 나타난다. 유재현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쉽게 피로해하고 사소한 결정도 내리기 어려워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러한 신호가 시작될 때 아이에게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고 스트레스 상황에 대해 물어봐주는 게 도움이 된다”며 “부모가 관찰한 사실 그대로와 함께 걱정되는 마음 그대로를 표현하는 것도 좋다”고 조언했다.

아동·청소년기에 우울증을 경험하면 성인이 된 뒤에도 우울증을 겪을 위험도가 2.78배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고, 방치했다가는 만성 우울증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또한 병원을 찾았을 때 이미 우울증이 상당히 진행된 경우도 흔하다. 심각한 우울증은 약물치료와 적극적 인지행동치료를 동반해도 증상이 진단기준 이하로 줄어드는 비율이 50~60% 수준에 그칠 정도로 치료가 어렵다. 우울증 신호를 가능하면 빨리 발견해 적극적으로 치료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기적인 검사는 어린 시기의 우울증을 일찍 발견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미국에서는 12~18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연 1회 우울증 선별 검사를 권장하고 있다. 국내에선 초등학교 1·4학년,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정서행동 특성검사를 시행하고는 있으나 심리 및 정신건강 상태를 폭넓게 진단할 수 있는 정기 검사로는 다소 부족한 면도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가정에서도 할 수 있는 ‘우울검사(PHQ-9)’ 등의 평가 도구 등을 활용하면 위기 징후를 좀 더 빨리 알아챌 수 있다.

치료는 항우울제를 통한 약물치료를 먼저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항우울제에 반응하는 환자는 60% 정도로, 치료 시작 8~12주쯤에 치료 반응이 잘 나타나는지 평가한 뒤 지속할지를 결정한다. 약물치료에 반응이 있으면 같은 용량으로 6개월 정도 치료를 지속하다가 이후부턴 치료 중단을 목표로 점차 용량을 줄여나간다. 만약 반응이 없다면 약제 종류를 바꾸고 인지행동치료를 병행하게 된다. 김재원 교수는 “항우울제를 장기 복용할 경우 부작용으로 자살 생각이 증가하는 것을 많이 우려하지만, 연구에 따르면 장기 복용으로 인한 자살 생각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증가하지 않는다”면서 “항우울제 치료 이득이 훨씬 크다”고 설명했다.

아동·청소년은 감정을 표현하거나 조절하는 능력이 미숙한 경우가 많아 놀이치료나 정서조절훈련을 병행하기도 한다. 또한 치료에 동참하는 보호자의 역할이 중요하므로 가족 치료를 함께 실시할 때도 있다. 우울증 외에 신체질환이 있다면 치료 과정을 견딜 수 있도록 신체적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즐겁게 할 수 있는 운동이나 취미를 혼자서 계획·실천하도록 돕는 행동활성화 치료를 함께할 수도 있다.

우울증을 치료·관리하는 과정에선 환자가 심하지 않은 우울증만으로도 자해 또는 자살 생각을 할 위험이 높아지므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특히 양육자의 심리적 지지와 도움이 중요하다. 아이를 잘 이해하도록 우울증의 특성을 잘 인지하고 마음과 몸이 건강해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치료에 큰 도움이 된다. 다만 환자 입장에선 어른이 전하는 충고나 조언을 바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을 때도 많다. 유재현 교수는 “먼저 아이들 입장에선 지금의 정서적 고통이 힘들다는 것과 어떤 문제는 해결이 쉽지 않다는 것, 그 자체를 양육자들이 수용하고 인정하는 단계를 거쳐야 한다”며 “편안한 관계의 형성은 이후 아이들이 부모님의 해결책을 받아들일 가능성을 높인다”고 조언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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