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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탕과 온탕 사이"

요즘 원·달러 환율이 이렇습니다. 단적으로 어제(15일) 하루에만 1달러 가격은 25원 넘게 움직였습니다.

한국은행 집계 결과, 지난달 원·달러 환율은 하루 평균 9.7원 오르내렸습니다. 2022년 11월 이후 가장 큰 변동성입니다.

미국 때문입니다.

지난달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이른바 '2+2 통상 협의' 의제에 환율이 포함된 게 기름을 부었습니다.

미국이 환율 논의를 하자니 보통 일이 아닌 건 분명한데, 안건이 오리무중입니다.

무역 적자 때문에 '약달러'를 원하는지, 달러가 얼마나 약하길 원하는지, 원한다면 어떻게 달러를 약하게 만들 생각인지 모든 게 베일에 감춰져 있습니다.

KBS는 블룸버그의 두 전문가에게 의견을 물었습니다.

아시아 외환시장 전문가인 스티븐 추 블룸버그 인텔리전스 수석 전략가와 한국 거시경제 전문가 권효성 수석 이코노미스트입니다.

[연관 기사] 중국은 왜 ‘한국 국채’에 눈독 들일까 (2025.05.06)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246015


■ "2018년과 2025년은 다르다"

먼저, 미국과 중국의 무역 합의는 어떻게 볼까.

스티븐 추 수석 전략가는 2018년 트럼프 1기 당시의 미·중 무역 전쟁을 언급했습니다.

당시 관세 전쟁과 환율의 상관관계는 이랬습니다.

미국이 중국에 관세를 매길 때마다 중국 위안화와 한국 원화 등 아시아 통화 전반이 약해졌습니다. 협상이 진전되면 위안화 주도로 원화 등도 다시 강해졌습니다.

그러나 이번엔 정반대라고 추 수석은 말했습니다.

"시장이 트럼프 행정부 또는 미국의 정책에 질린 것 같습니다. 시장은 미국의 지위와 달러의 신뢰성 자체에 의문을 갖기 시작했어요. '앞으로도 미국 달러가 믿을만한 자산인가? 아닐 수도 있겠다'라는 거죠."


영국, 그리고 중국과 이어진 무역 합의도 추 수석은 "합의보다 '휴전'에 가까웠다"고 해석했습니다.

세계 투자자들이 미국 국채 등 달러 자산을 내다 팔기 시작했고, 미국이 급하게 협상에 들어간 점을 두고 한 말입니다.

그러면서 최근 합의 소식이 나오자 '미국이 생각보다 극단적이지 않다'는 안도감이 퍼졌고, 그 덕에 다시 달러가 강해진다는 설명입니다.

협상 하기에 따라 관세가 취소 또는 인하될 수 있다는 '호재' 신호가 나왔는데도 오히려 원·달러 환율이 다시 1,400원 대로 올라선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겁니다.

■ 제2의 플라자 합의? "불가능''

미국은 왜 한국에 환율을 협의하자고 했을까.

추 수석의 분석도 "무역 적자' 때문"입니다. 많은 전문가의 분석과 다르지 않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시아 국가들이 자국 통화를 약세로 유지하기 때문에 미국이 이들에 대해 무역 적자를 보고 있다는 겁니다.

'제2의 플라자 합의'에 대한 우려도 그래서 나오고 있는데, 추 수석과 권효성 수석 모두 " 그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단언했습니다.

무엇보다 그때와 지금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겁니다.

플라자 합의는 1985년. 프랑스와 독일, 영국과 일본만 합의에 참여했습니다. 이들 네 나라면 세계 외환 시장 질서를 짜기에 충분했습니다. 미국과 같은 자유주의 진영이어서 얘기도 잘 통했습니다.

이번엔 미국이 스스로 밝힌 협상국만 약 60개국입니다. 하루에 한 국가씩 협상해도 두 달은 걸립니다.

추 수석은 "환율 자체는 미국 입장에서 협상 카드"이고 "부수적인 문제"라고 했습니다. "환율을 일종의 관세 부과를 위한 '협박'으로 쓰고 있긴 하지만, 한국이 미국에 대한 투자나 수입 확대를 한다면 미국도 어느 정도 만족할 것"이라는 겁니다.

권효성 수석도 "지금은 국제 금융시장에서 다른 플레이어들의 역할도 커졌고, 정부가 외환 시장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과거보다 많이 줄어서 인위적으로 끌고 가기 어려운 환경"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미국의 기축통화 역할을 위협할 수도 있기 때문에, "어디까지 압박해야 하고, 어디까지 달러를 절하시켜야 하는 것인지에 상당히 고민이 많을 것"이라고도 말했습니다.

"중국 쿠션 삼아 한국 움직일 수도"

권 수석은 색다른 분석도 내놨습니다.

중국과 타이완 등을 일종의 쿠션 삼아 원·달러 환율을 움직일 가능성도 있다는 예측입니다.

"중국과 타이완은 정부, 중앙은행에서 통화를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국가들과의 협상 과정에서 이들 통화를 어느 정도 약세 쪽으로 가도록 협의하게 되면 한국 통화는 그에 연동돼 약세로 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국의 원화는 아시아 외환 시장에서 이른바 '프락시 통화', 즉 대체 통화로 여겨집니다. 위안화나 대만달러가 움직이면 원화도 같은 방향으로 따라서 움직인다는 겁니다.

타이완의 대만달러 시장은 거래량이 많지 않아서, 시장 참여자들은 원화에도 눈을 돌리게 됩니다. 이달 초, 대만달러 가치가 급등했을 때 한국 원화도 같이 급등했던 때도 이 때문이었습니다.

[연관 기사] 미·영 무역 합의가 원·달러 환율 움직였나 (2025.05.10)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250034

■ "1달러에 1,250원이 적정"

추 수석은 "미국이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건 아시아 통화가 급격하게 떨어질 때"라며, "환율이 오르든 내리든 점진적이고 질서 있는 흐름이라면 미국이 한국을 비난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을 감안한 원·달러 환율은 얼마가 적당할까요?

"저희 내부 모델에 따르면 원·달러의 적정 환율은 약 1,250원 수준입니다. 원화는 아시아 내에서 가장 저평가된 통화 중 하나입니다."

지난달에 찍었던 연고점 1,487원보다 230원가량 낮은 수준입니다. 추 수석은 "(이 수치를 낸 모델은) 굉장히 단순한 회귀분석 모델이고, 기본적인 거시경제 지표인 인플레이션 차이, 금리 차이, 교역과 투자 등"을 고려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국내 분석가들이 1,300원대를 전망하는 것과는 차이가 컸는데, "더 중장기적 전망"이라는 게 추 수석 설명입니다.

미국 달러를 믿을 수 있느냐는 시장의 의문이 생긴 이상, 정부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달러는 약해지고 원화는 강해지는 게 자연스럽고, 이는 명확한 흐름이라고 덧붙였습니다.


■ "코리아 디스카운트, 좀비기업 퇴출이 답"

최근 한국의 정치 상황은 어떻게 보는 줄도 물었습니다.

추 수석은 "물론 환율이나 주가에 일정 부분 '디스카운트'는 남아 있지만, 시장이 어느 정도 해당 이슈를 소화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태국 사례를 들며, "아시아 전반에서 반복돼 온 흐름을 보면 정치적 불확실성은 대부분 짧은 기간에 그친다"고 설명했습니다. 몇 년마다 정치적인 혼란이나 군부 개입이 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가는 등 결국 해결될 거란 인식이 깔려 있다고 본다는 겁니다. "정치적 이슈로 인한 시장 약세는 오히려 투자자들에게 진입 기회가 될 수도 있다"라고도 덧붙였습니다.

권효성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보다 장기적으로 한국 주식 시장에 대해 조언했습니다.

"실제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고 생각해요. 한국 코스피의 PER(주가수익비율)은 다른 선진국이나 신흥국에 비해 낮지만, 명목 GDP 대비 코스피 시가총액은 매우 높은 수준이에요. 그 차이가 어디서 오냐를 고민해 보면, 결국 한국 주식 시장에 '좀비 기업'들이 너무 많아서 그렇다고 봅니다."

권 수석은 이어 " '밸류업'을 위해서 중요한 것은 창조적 파괴"라며 "한국에선 창조도 어렵지만 더 어려운 것은 파괴"라고 말했습니다. "코스피 시장에 들어가고 나면 퇴출이 너무 어렵다"는 겁니다. 결국 생산성 있는 기업들에 선택과 집중을 하기 위해서 구조조정 또는 좀비기업 퇴출을 통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 미·중 사이 낀 한국, 필요한 전략은?

7월, 이른바 '줄라이(July) 패키지'를 목표로 미국과 협상하고 있는 한국의 전략도 물었습니다. 권 수석은 "결국 우리가 수출을 줄이는 건 어렵다고 생각한다"며 " 수입을 늘리는 방안을 고려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1기 때부터 지속적으로 무역적자를 강조하고 있는 점을 보면 유효한 전략일 수도 있죠. 권 수석은 "LNG 수입을 더 많이 한다든지, 사우디처럼 항공기 등 수입을 생각할 수 있겠고, 이를 통해서 무역 적자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스티븐 추 수석 전략가는 중국 사례를 들며 " 너무 많이 양보하면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중국은 관세를 125% 이상으로는 올리지 않고 거기서 멈춰서, 더는 대응하는 대신 내부에 집중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왜냐하면 중국은 시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장 전체가 미국에 대한 의문을 던지고 있고, 굳이 많은 걸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경기 부양에 집중해, 금리를 내리는 등의 정책을 썼다는 설명입니다. 추 수석은 "물론 미국은 중국이 협상을 원한다고 말하겠지만, 우리는 이번엔 미국이 더 협상을 원하고 있다는 걸 보고 있다"라고도 말했습니다.

미국의 스콧 베센트 장관은 지난달 2+2 협의 이후에 한국에서 좋은 안을 제시했다고 발언한 데 이어, 최근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한 자리에서도 "한국이 좋은 제안(good proposal)을 가져왔다"고 거듭 말했습니다.

두 전문가의 조언을 토대로 이해한다면, 미국이 오히려 성과를 과시하며 협상을 재촉하고 있는 것처럼도 읽힙니다.

이 말이 맞다면, 급한 건 미국이지 한국이 아닙니다. 달러가 급할 뿐 원화는 안 급하단 말이기도 합니다.

물론, 협상의 끝은 아무도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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