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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날인 15일 서울 성동구 서울방송고에서 등교하는 학생들을 맞이하는 교사가 카네이션과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요즘 교사들은 스승의날이 반갑지 않다고 한다. 학교들은 스승의날 행사를 축소·폐지하거나 아예 문을 닫고 있다. 이날 서울의 경우 초등학교 1곳, 중학교 16곳, 고등학교 14곳 등 총 31곳이 재량휴업을 실시했다. 지난해(24곳)보다 늘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교사 입장에선 선물을 받아도 기분 나쁘지 않게 돌려줄 방법을 고민해야 하고, 받지 않으면 괜히 마음 상하다보니 휴업하는 편이 마음 편할 것”이라고 했다.

학교에 나온 교사도 떨떠름하긴 마찬가지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오늘도 교실에서 큰 소리로 욕설을 퍼붓는 아이와 씨름을 하고 나니 스승의날이고 뭐고 쉬고 싶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교사는 “모르는 번호로 ‘N년 전 제자’라고 밝힌 학생이 문자메시지로 연락을 했는데, 누군지 몰라서 미안한 마음보다 내 번호를 어떻게 안 건지가 더 궁금했다”고 했다.

급기야는 스승의날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15일 초등학교 교사 커뮤니티 인디스쿨에는 “우리도 이제 스승의날 없애고 다른 대체제를 찾을 때가 되지 않았나요?”라는 글이 올라왔다. 이어 공감하는 취지의 댓글이 수십개 달렸다. “축하받기보다는 인간으로서 보호받고 싶다”, “스승 대신 교사의 날로 꼬집어 지정하고 권리를 하나씩 찾아가자” 등의 내용이었다. 비슷한 취지로 “스승의날 대신 7월18일 혹은 9월4일을 교사들을 위한 날로 지정하자”는 글도 올라왔다. 2023년 7월18일은 서울 서이초에서 교사가 사망한 날, 같은 해 9월4일은 그의 49재를 기리며 전국 교사들이 연가를 내고 집회를 연 날이다.

스승의 날인 15일 오전 경기 수원시 팔달구 매향중학교에서 학생들이 스승의날 기념 등굣길 레드카펫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올해로 4회째를 맞은 이번 행사는 학생회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해 선생님들의 헌신과 노고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뉴스1

교사들은 매년 더해가는 업무 강도, 늘어가는 학부모 민원, 상대적으로 낮은 연봉·처우 등은 그대로 둔 채 단 하루 ‘허울뿐인 존경’을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난 2023년 국민 청원 게시판에서 스승의날 폐지를 요구한 한 교사는 “스승 대접 대신 학생들을 교육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다.

스승의날인 15일 서울 성동구 서울방송고에서 등교하는 학생들을 맞이하는 교사가 카네이션과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그들이 말하는 교육 환경에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소가 포함돼있다. 지난해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가 공개한 저연차(초등교사 9호봉, 비담임 기준) 교사 급여명세서에 따르면 월 실수령액은 230만 9160원이다. 같은 해 최저임금 9860원을 월 급여로 환산한 금액(206만 740원)에 비해 약 24만원 많을 뿐이다.

더 우울한 건 교권 추락의 현실이다. 지난해 교사들이 교권 침해를 신고하며 각 교육청에서 열린 교권보호위원회(교보위)는 총 4234건이었다. 심의 내용 중엔 지도불응(29.3%), 명예훼손(24.6%), 뿐만 아니라 상해·폭행(12.2%), 성적 굴욕감을 주는 행위(7.7%), 불법 촬영·녹음(2.9%) 등 심각한 수준의 내용도 포함됐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가 발표한 전국 유치원, 초·중·고, 대학 교원 5591명 대상 설문조사에서 교사들이 꼽은 주요 이탈 원인은 ‘교권 침해’(40.9%), ‘사회적 인식 저하’(26.7%), ‘업무 강도 대비 낮은 보수’(25.1%) 순이었다.

더이상 스승의날은 낭만적이지 않다. 서이초 사건 이후 2년이 흘렀고 이른 바 ‘교권 보호 5법’도 만들어졌지만, 교사들의 사기 저하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올해 스승의날은 선생님들의 고민이 무엇인지, 이런 선생님들에게서 우리 아이들은 어떤 교육을 받게 될 지 한 번 더 고민하는 날이 됐으면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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