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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형의 클로즈업
영화 ‘승부’ 속 한겨레신문. 화면 갈무리

최근 개봉해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한국 영화 ‘승부’, ‘야당’, ‘거룩한 밤: 데몬 헌터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바로 종이신문 한겨레가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한겨레는 일간지 가운데 유독 실명으로 스크린에 자주 등장하는 소품입니다. 진실보다 시청률이나 조회수에 집착하는 미디어의 폐해를 그린 ‘특종: 량첸살인기’(2015), 아이엠에프(IMF) 구제금융 요청 당시의 한국 사회를 복기한 ‘국가부도의 날’(2018) 등 가볍지 않은 주제 의식을 지닌 영화들에서 한겨레신문은 자주 호출됐습니다. 올해 최고 흥행작 ‘야당’에서는 부패한 대권 주자의 아들이 부패한 검사에게 심각한 표정으로 건네는 신문이 한겨레였죠.

영화 ‘국가부도의 날’ 속 한겨레신문. 화면 갈무리

국수 조훈현과 제자 이창호의 대결을 통해 어른의 성장담을 품위 있게 그려내 호평받은 ‘승부’에서 한겨레는 소품이 아닌 조연으로 격상됐습니다. ‘바둑의 신’인 두 인물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승부’에는 신문과 방송 자료가 자주 등장합니다. 한겨레는 이 영화에 3번 등장합니다. 첫 등장은 제29기 최고위전 최종국이 열리던 1990년 2월 예상 외로 제자에게 쫓기던 조훈현(이병헌)이 경기 중간 점심 시간에 초조한 마음을 가리기 위해 펼치는 신문입니다. 그 다음날 조훈현의 집에 배달된 한겨레신문 1면에는 ‘반집이 가른 승부, 바둑계 돌풍’이라는 커다란 제목과 함께 이창호(유아인)의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실렸죠. 그리고 몇년 뒤 조훈현이 이창호에게 연패를 당하던 때 ‘반집에 무너진 ‘영원한 제국’’이라는 쓰디쓴 제목이 박혀있는 1면 기사가 전보다 여유 있고 당당해진 이창호의 사진과 함께 실렸습니다.

영화 ‘승부’ 속 한겨레신문. 화면 갈무리

영화 ‘승부’ 속 한겨레신문. 화면 갈무리

소품이 아니라 영화적 표현으로 한겨레를 선택한 이유를 제작사 ‘영화사 월광’에 물었습니다. 첫번째 이유는 일간지 가운데 ‘한글 전용 가로쓰기’를 가장 먼저 실천한 신문이었기 때문입니다. 월광 관계자는 “요즘 관객들이 당시 뉴스를 한눈에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글과 가로쓰기로 보여주는 게 필요했다”면서 “1990년대 초까지 다른 신문들은 세로쓰기를 했고, 바둑의 승이나 패를 한자로 썼기 때문에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한겨레를 담고 싶었다”고 답했습니다.

두번째 이유는 이렇습니다. “어린 제자가 나이든 스승을 이긴 사건은 반란이고 새로운 시대의 도래인데, 당시 언론계에서 한겨레가 위치한 지점과도 맞닿아있다는 게 김형주 감독과 제작진의 견해였다.” 그 이야기를 듣고 다시 영화를 보니 조훈현 국수의 세계대회 제패 뉴스에는 세로쓰기 신문이 나오다 이창호의 부상에 발맞춰 한겨레신문도 등장했더군요.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 속 한겨레신문. 화면 갈무리

한겨레신문이 캐릭터로 등장한 영화는 또 있습니다. 결혼에 대한 새로운 세대의 감수성을 보여주며 흥행에 성공했던 2002년 개봉작 ‘결혼은 미친 짓이다’입니다. 대학강사인 준영(감우성)은 “오후 3시 대학로 케이에프시(KFC) 앞에서 한겨레신문을 말아쥐고 서 있을 것”이라는 상대방의 요청을 받고 소개팅에 나가죠. 당시 초록색 제호가 눈에 띄도록 말아쥔 그의 옆에 똑같이 한겨레신문을 말아쥔 남성이 서 있습니다. 대략난감한 표정으로 버티던 옆 남자가 신문을 던져버리고 자리를 떠나자 연희(엄정화)가 준영에게 다가옵니다. 그렇게 이들의 연애가 시작되죠.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 속 한겨레신문. 화면 갈무리

당시 한국 영화의 새로운 흐름을 주도했던 제작사 싸이더스 대표였던 차승재 동국대 영상대학원 교수는 먼저 ‘봄날은 간다’를 만들었을 때의 에피소드부터 꺼냈습니다. “촬영 현장에서 거리에 다니던 택시를 섭외해 이영애씨가 택시 타는 장면을 찍었던 적이 있다. 개봉하고 나서 택시 문짝에 한 보수신문 광고가 붙어있는 걸 알게 됐고, 그 신문과 친하냐는 질문을 들었다. 미장센의 중요성을 새삼 확인한 것이다.(웃음) ‘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시나리오에 신문 이름이 적혀있지는 않았는데, 유하 감독이 한겨레신문으로 하자고 했고, 나 역시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누구나 종이신문을 읽던 2000년대 초 친구와 애인을 기다리는 젊은이들로 바글대던 대학로 케이에프시 앞과 어울리는 건 역시 한겨레신문이었겠죠?

영화 ‘특종: 량첸살인기’ 속 한겨레신문. 화면 갈무리

이제 길거리에서 신문을 말아쥔 사람은 한달에 1명 만나기도 힘든 시대가 됐습니다. 그래도 대중과 호흡하는 매체들이 여전히 한겨레를 호명하고 있다는 사실이 반갑습니다. 더 잘하라는 격려로 알아듣겠습니다. 5월15일, 오늘은 37년 전인 1988년 한겨레를 창간한 날입니다.

영화 ‘특종: 량첸살인기’ 속 한겨레신문. 화면 갈무리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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