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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명권자 따라 10대 2 갈린 이재명 판결
이념 성향 따라 4대 4 나뉜 이진숙 탄핵
'재판 독립 = 無비판'이라 착각 말길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14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을 하고 있다. 조 대법원장과 대법관 전원은 이날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사법부의 대선개입 의혹 진상규명 청문회'에 출석하지 않았다. 뉴스1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을 복기해보자. 대법관 12명 중 10명이 유죄(파기환송), 2명이 무죄(상고 기각) 의견이었다. ‘초고속 재판’ 논란에 묻혔지만, 가벼이 볼 사안이 아니다. 왜 만장일치가 아니냐고 따지자는 게 아니다. 판사 한 명 한 명이 독립적 헌법기관이니 다른 의견이 나오는 건 당연하다. 그게 민주주의다.

문제는 임명권자에 따라 정확히 갈린 판결이다. 유죄 의견을 낸 10명은 모두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한 반면, 전 정부에서 임명된 2명은 무죄 의견을 냈다. 윤 전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은 반이재명,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은 친이재명 판결을 한 셈이다. 무리한 속도전에 견제구를 던진 것도 이들 2명뿐이었다. 이게 공교로운 일이라 믿는 바보는 없을 것이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8대 0 만장일치 결론을 이끌어내며 박수를 받은 헌법재판소지만, 앞서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탄핵심판에서는 4대 4로 갈렸다. 중도·보수 성향 재판관은 모두 기각, 진보 성향 재판관은 전원 인용 의견을 냈다. 이 또한 우연으로 포장될 수 없다.

이념 성향에 따라 어느 정도 다름이 용인될 수 있는 판결이 있다. 동성애, 이민권, 낙태권처럼 가치 충돌 사안이 그렇다. 며칠 전 미 연방대법원이 트랜스젠더를 군 복무에서 배제하는 행정명령을 정지시킨 하급법원 판단을 뒤엎고 트럼프 정부 손을 들어준 게 그렇다. 보수와 진보 대법관 6대 3 구도가 낳은 결과다.

하지만 ‘이재명 판결’이나 ‘이진숙 탄핵’은 이념과는 단 1도 연관 없다. 이재명과 이진숙 이름을 가린 블라인드 재판이라 해보자. 하나는 대선 후보의 발언이 허위사실 공표냐 아니냐, 피선거권을 박탈할 정도의 중대한 범죄냐 아니냐를 따지는 재판이다. 보수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진보는 너그러워야 할 이유가 있는가. 다른 하나는 방통위 ‘2인 의결’이 파면할 정도의 중대한 법률 위반이냐 아니냐의 판단이다. 헌법과 법률이 아닌, 이념이나 소신이 개입할 여지가 있겠는가.

노르웨이 법학자 한스 페터 그라베르는 ‘정의를 배반한 판사들’에서 장기간 연구를 토대로 이런 결론에 도달한다. 권위주의 체제에서 전반적으로 판사들은 권력자 관점에 순응하며, 때로는 권력자의 도구가 돼 법치주의를 해체하는 데 가담한다고. “대개 판사와 권력자는 동일한 사회집단에 속하며, 정권에 맞서려는 판사는 종종 사회적 지위와 경력을 잃을 위험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분석이다. 하마터면 현재 한국 사법부 얘기라고 착각할 뻔했다.

‘판결에 승복해야 한다’ ‘사법부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는 말을 우리는 정언명령처럼 받들어왔다. 대중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기자들은 더더욱 그래야 한다고 배웠다. 판사가 잘못된 판결을 내리지 않아서가 아니다. 최후의 보루인 사법부 판단이 존중받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 갈등을 해결하는 수단이 더는 없어서다. 스포츠 선수들이 심판 결정을 따르지 않는다면 경기가 유지될 수 있겠는가.

하나 ‘재판 독립’을 방패막 삼아 정치 판결을 하는 건 전혀 다른 얘기다. 이런 ‘물증’들이 차곡차곡 쌓이니 이재명 후보 재판을 2년 2개월이나 끈 1심 재판부도, 9일 만에 해치운 대법원도, 윤 전 대통령을 구속에서 풀어준 부장판사도 모두 다 사법이 아닌 정치를 하고 있다는 ‘심증’ 또한 쌓인다.

민주당의 과도한 사법부 때리기 혹은 길들이기는 폭도들의 서울서부지법 난입만큼이나 강하게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렇다고 정치 판결에 면죄부를 줘도 좋다는 뜻은 아니다. 법관들은 자신의 재판에 대해 어떤 평가, 어떤 비판도 받지 않는 것이 재판 독립이라 여기지 마시라. 진정한 사법부 독립은 자신의 재판에 대해 온전한 책임을 질 때라야 가능하다. 승복하고 존중하라는 말, 이래서는 더는 자신 있게 말하기 힘들 것 같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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