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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화성시 육일리·장외리, 머슴살이 현장 찾은 이민호·전봉영·조경희씨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육일리 547번지, 이민호씨가 머슴살이를 하던 폐가 앞에 선 선감학원 출신 세 사람. 왼쪽부터 조경희·이민호·전봉영씨다. 고경태 기자

선감학원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최악의 아동 인권침해 사건으로 꼽힌다. 어린이날이 있는 가정의 달인 5월에 그 역사는 더 아프게 다가온다. 한겨레는 선감학원 피해생존자 3명을 만났다. 이들의 공통점은 선감학원을 나와 민가에서 머슴 일을 했다는 것이다. 선감학원에서 탈출한 이들이 머슴살이를 강요당하는 추가 인권침해를 당한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선감학원이 원생을 머슴으로 팔았다는 의혹도 있다. 선감학원 피해생존자가 머슴살이에 대해 언론에 증언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와, 아직도 집이 그대로 있어요.”

이민호(67)씨가 감개무량한 표정을 지으며 마루에 털썩 앉았다.

“이곳엔 아무것도 없네요. 근처에 있던 저수지도 사라졌어요.”

전봉영(66)씨가 집터를 배경으로 차렷 자세를 하고 사진을 찍었다.

“여긴 식당이 들어섰네. 주인집 자식들이 다른 데서 노래방을 한다고 했는데.”

조경희(66)씨는 지나가는 마을 사람들을 붙잡고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이민호씨가 자신이 머슴살이를 하던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육일리 547번지 폐가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고경태 기자

세 사람은 다 선감학원 출신이다. 어린 시절 경기도가 운영하는 외딴섬 선감도의 아동수용시설에 갇혀 강제노역과 굶주림, 매질, 성폭행을 견뎌냈다. 이씨는 6년6개월, 전씨는 5년, 조씨는 4년6개월간 선감학원에 있었다.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의 일이다. 이들은 서울시립아동보호소 또는 보육원을 통해 선감학원으로 흘러왔다. 부모의 얼굴은 모른다. 이름과 생일도 시설에서 정해줬다. 이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10대 중후반 나이에 선감학원에서 나와 농어촌 가정집으로 갔다는 것이다. 입양이라도 됐던 것일까, 자립 생활을 한 것일까. 아니다. 그들은 ‘머슴’이었다.

“목련꽃 나무가 아직도 있네.”

지난달 11일 오후, 이씨는 자신이 ‘머슴’으로 기거했던 경기 화성시 송산면 육일리 547번지의 폐가 앞에서 봄꽃을 휴대폰 카메라에 담았다. 전씨가 살았던 곳은 바로 그 맞은편이었다. 육일리를 함께 둘러본 셋은 뒤이어 조씨가 살았던 화성시 서신면 장외리 522번지로 이동했다. 이들은 이날 오전 선감학원 아동피해대책협의회의 주선으로 옛 선감학원 터인 경기 안산시 단원구 선감동 선감역사박물관에서 출발해 이후 각자 머슴 생활을 한 육일리와 장외리 마을을 찾았다. 모두 반경 15㎞ 안에 있다. 그곳을 떠난 뒤 처음으로 찾는 현장이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2022, 2024년 두 차례 낸 ‘선감학원 아동인권침해 사건’ 보고서에는 ‘머슴’에 관한 기록과 증언이 나온다. 선감학원을 탈출한 아이들이 주민들에게 잡혀 머슴살이를 했다는 것이다. 선감학원이 주민들에게 돈을 받고 원생을 머슴으로 팔았다는 의혹도 있다. 조씨는 어느 날 선감학원 훈육 선생이 불러서 나갔더니 선감도 인근 어도(어섬) 주민이 배를 대놓고 기다렸다고 한다. 이씨와 전씨는 선감학원을 나와 제대로 일자리를 찾지 못하다가 머슴살이를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이들은 ‘머슴’도 아니었다. 머슴의 사전적 의미는 ‘주로 농가에 고용돼 그 집의 농사일과 잡일을 해주고 대가를 받는 사내’다. 세 사내는 대가를 받지 못했다. 어쩌면 노예였다. 그 노예 생활을 견디게 한 건 국가였다. 당시 경기도가 운영한 아동수용시설인 선감학원에서 지낼 바에는 차라리 농가에서 머슴을 하는 게 백배 나았기 때문이다. 머슴 생활도 고달팠지만 선감학원에서보다 덜 맞았고 밥도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전봉영씨가 자신이 머슴살이를 했던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육일리 옛 집터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고경태 기자

이씨가 당시 머슴의 일과를 떠올렸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짚을 작두로 썰고 쌀겨와 콩깍지 등을 섞어 소죽을 끓여야 했어요. 연탄이나 석유 대신 나무를 땔 때라, 지게 지고 산에 가서 나무를 한가득 져 와야 했는데, 그게 가장 힘들었어요. 종일 일을 하다 보면 해가 떨어져요.” 이렇게 3년을 일했지만 돈은 받지 못했다. 이씨는 화성시 송산면 육일리에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선감학원 출신 아이들이 7명 있었다고 했다.

조씨는 15살 때부터 어섬(화성 송산면 고포리)과 장외리에서 9년 일했다. “(어섬에선) 낮에 펄에 나가 소라와 게를 잡고, 밤에는 굴 양식장에서 따온 굴을 깠어요. 그 뒤 장외리에 가서는 목수인 주인한테 일을 배우면서 꽤 맞았어요. 어느 날은 지하수를 파다 수렁에 발을 헛디뎌 경운기 벨트에 손가락이 잘렸는데, 봉합수술은 생각도 못 하고 제가 직접 오토바이를 몰고 남은 손가락을 마저 자르러 동네 의원에 찾아간 적도 있어요. 거기서 5년을 일했네요.”

이씨와 조씨가 긴 머슴 생활을 견딘 결정적 이유 중 하나는 주인집에서 호적을 만들어준다는 말에 솔깃했기 때문이다. 남들처럼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싶었고, 결혼하려면 취직을 해야 했으며, 취직하려면 호적이 있어야 했다. 그렇게 이씨와 조씨의 호적은 주인집인 육일리와 장외리의 주소지로 만들어졌다. 전씨는 이마저 포기하고 6개월 만에 도망갔다. “하루에 100원만 줘도 그냥 계속 일했을 거예요. 호적 만들어준다는 말도 믿기 어려웠고요.”

조경희씨가 자신이 머슴살이를 했던 화성시 서신면 장외리 522번지 앞에서 과거를 회상하고 있다. 고경태 기자

그럼에도 머슴 생활은 선감학원 때보다는 나았다. 선감학원에서는 매일 매시간 탈출을 꿈꿨다. 전씨와 이씨는 선감학원에서 어설프게 도망치다가 잡힌 경험이 있다. 잡히지 않고 기어코 바다에 몸을 던진 아이들은 밀물에 주검이 되어 떠밀려 오곤 했다. 세 사람 다 친구들 주검을 가마니에 싸 근처 뒷산에 묻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 뒷산은 지난달 30일 경기도가 67기의 유해를 수습한 안산시 단원구 선감동 산 37-1 공동묘역이다.

전씨와 이씨, 조씨는 친구들처럼 죽지 않고 버텨 오늘까지 왔다. 선감학원 출신 중에는 성공한 축이다. 조씨는 머슴 생활을 청산하고 가구 공장과 갈비 식당 주방장, 화물차 운전을 거쳐 인천에서 시내버스 운전을 하며 자리 잡았다. 전씨는 육일리에서 도망 나온 뒤 구두닦이를 하다가 인천세무서에서 숙직과 구두닦이, 청소일을 하는 정식 공무원이 됐다. 이씨는 서울에 와 유명 주방 제품을 만드는 회사에 취업했다. 이후 아남전자에서 과장으로 승진해 일하며 집도 사고 결혼도 했다. 억척스러웠고 운도 좋았다. 세 사람은 현재 선감학원 아동피해대책협의회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며 매달 후원금도 낸다.

안산시 단원구 선감동 선감역사박물관에 가면 선감학원의 역사를 설명하는 그림을 만날 수 있다. 선감역사박물관

선감학원 사건 피해자 지원센터 상담실장으로 일하며 이들을 상담했던 이향림 선감학원 아동피해대책협의회 사무국장은 “이분들은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외상 후 성장’을 한 경우다. 꾸준히 일을 해왔기 때문에 누구보다 사회적 연결망 등 자원이 많다”고 했다. 머슴 생활에 관해서는 “선감학원에서는 취침 점호를 할 때마다 곡괭이로 폭행을 당하고 알몸으로 자면서 성폭행을 당하기도 했는데, 이씨의 경우 주인집 작은아들과 한방에서 자면서 그래도 사람대접을 받았다”며 “돈 한푼 못 받으며 고된 머슴 생활을 했지만, 역설적으로 정서적인 치유를 받기도 한 셈”이라고 말했다.

머슴 생활을 했던 현장을 둘러보며 선감학원 시절의 악몽에 대해선 말을 아꼈던 이들은 마지막으로 선감학원의 5월에 관해 가볍게 이야기를 나눴다. 선감학원 원생들은 대부분 생일이 5월5일이거나 5월29일이다. 하나는 어린이날이고, 또 하나는 선감학원 개원기념일이라 그날을 생일로 정한 것이다. 실제 전씨의 생일은 5월5일이다. 조씨는 5월25일, 이씨는 9월15일인데, 선감학원 이전의 보육원에서 정해줬다. 세 사람이 어린이날에 대한 기억을 각기 달리 말했다.

“5일엔 밥을 좀 더 준 거 같은데… 29일엔 사탕을 줬어.”(전봉영)

“밥을 더 먹었다고? 대통령 하사품으로 과자를 받은 것 같기도 하고.”(이민호)

“밥을 더 주기는… 그날 하루 안 때렸으면 그게 고마운 거였지.”(조경희)

지난달 30일 67기의 유해가 수습됐다고 발표된 안산시 단원구 선감동 산 37-1 공동묘역. 이날 경기도는 현장에서 공개설명회를 열고 발굴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정용일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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